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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하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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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테마낚시 28 - 동해 열기낚시

11월 이후 북서 계절풍이 발달하면 바다 상황은 낚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갑자기 기온이 급강하한다든지, 저기압이 몰려들어 비가 온다든지 하여도 바다 상황은 좋지 않아 출조가 불가능해질 때가 많다. 특히 주의보가 떨어지면 배낚시는 아예 불가능해진다. 2주 연속 주말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출조를 못할 상황이 되자, 친구와 나는 곰곰이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제주와 남해, 서해, 동해 북부 모두 출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유일하게 동해 남부 포항 울산 권은 바다가 잠잠해진 것 같아 보였다.

안타깝게도 바다 낚시꾼이나 선장들은 우리나라 기상청의 예보보다는 일본 기상청의 예보를 훨씬 더 신뢰한다. 우리 기상청의 바다 예보는 비가 온다든지, 맑다든지 하는 날씨를 오전 오후로 나누고, 파고, 풍속, 풍향을 알려준다. 예컨대 12월 15일 오전 맑음, 풍향, 북-북동,  풍속(m/s) 10-14, 파고(m) 2-4 등의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기상청 바다 예보 자료는 6시간마다 3일 후까지의 바다 상황을, 지도에 색깔별로 나타내어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이 자료를 보면 풍향과 파고를 한 눈에 알 수 있고, 바다 상황이 변화해 나가는 과정도 알 수 있어 어느 지역에는 어느 정도의 바람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초보자들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어선이나 낚싯배 선장들은 일본 기상청 자료를 바탕으로 출조 여부를 결정한다. 많은 낚싯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친절하게도 일본 해상 예보를 링크해 놓아 낚시꾼들도 쉽게 그 자료를 접할 수 있다. 그림이니 일본말 하나도 몰라도 볼 수 있게 되어 있고 3일 후의 상황까지 알려주니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한국 예보보다 일본 해상 예보가 훨씬 정확했다.



주렁주렁 달려올라오는 열기. 아직 씨알이 잘다.


금요일 오전 일본 해상 예보를 보니, 토요일 종일 동해 남부권은 거의 파도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한국 기상청 자료는 파고가 높게 예보되고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요즘 포항 신항만 쪽에서 출조하는 대양호란 배가 양호한 조황을 올리고 있어 그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다 상황이 어떠냐고 물었다. 선장은 약간 목소리를 높이며 하는 말이 ‘포항 앞바다가 장판이다, 이렇게 잠잠하다, 그런데 내일 예비 특보가 떨어졌다’며 기상청을 성토한다. 그도 그럴 것이 주말이면 낚싯배는 대목인데, 바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예보가 나오면 예약해 놓은 손님들마저 취소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선장은 아마도 내일 출조할 수 잇을 것이라며 예약을 하라고 한다. 물론 해야지. 제주도 서해도 출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출조할 수 있는 곳은 감포나 포항 등의 동해 남부권 밖에 없으니까.

토요일 오전 한 시. 친구 집에서 합류해 서울에서 포항으로 향한다. 경부, 영동 고속국도, 중부내륙고속국도, 대구를 지나 대구포항고속국도를 타고 가다가 새로 생긴 흥해 쪽 고속국도를 타면 바로 포항 신항만에 도착한다. 약 380km. 새벽이니 4시간 만에 주파한다. 배가 7시에 출항하니 시간이 두 시간이나 남아돈다. 너무 일찍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 아침 식사할만한 곳이 없다. 친구와 나는 포항 죽도시장으로 다시 차를 몬다.

낚시도 여행의 일종이다. 여행이라면 모름지기 잘 먹어야 하는 법. 맛있는 음식점은 재래시장 주위에 몰려 있게 마련이다. 낯선 곳에 가서 맛있는 식당을 찾는 요령이 있다. 첫째 방법.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한다. 그것은 세상살이의 경험이 없는 초보자나 할 짓이다. 둘째 방법. 주변의 약방이나 서점에 가서 박카스나 신문을 사면서 물어본다. 대개 약사나 서점 주인은 그 지역의 토박이이면서 유지들이 많아 그들의 정보는 아주 정확하다. 그런데 새벽이나 한 밤중 같을 때는 어떡하나? 그럴 때는 기사식당이나 재래시장에 가면 된다. 재래시장에 가면 덤으로 다른 구경거리도 있다.    
새벽 다섯 시를 조금 넘겼는데도 죽도 시장은 활기에 가득 차 있다. 고등어, 문어, 대게, 도루묵 등 싱싱한 고기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친구가 말한다. ‘저거 한 박스 사 놓을까?’ 나는 단호히 거절한다. 오늘은 분명 많이 잡는다. ‘잡아서 가자.’
7천 원하는 포항 죽도시장의 소머리곰탕은 새벽 출출한 속을 달래기에는 그지없이 좋았다.  친구에게 ‘삶의 혜안(慧眼)이란 바로 이런 것이야’ 라고 말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친구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임이 뻔하기 때문이다.



열기 채비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멸치. 너 황당하니? 나도 황당하다.


열서너 명이 정원일 것 같은 배에 탄 낚시객은 7명뿐이다. 선장이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하면서 좀 투덜거린다. 예보 때문에 취소한 손님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낚시객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이다. 줄엉킴이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포항 앞바다에서 북쪽으로 15분 쯤 나갔을까. 해안으로 보경사를 품고 있는 내연산이 보인다. 칠포 앞바다다. 젊은 선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수심과 바다밑 상황과 낚시 요령을 알려준다. 예컨대, ‘1m 높이의 어초입니다. 수심은 30m입니다. 바닥에 닿으면 1m 올리시고 입질이 오면 조금씩 올리세요’, ‘자연초입니다. 바닥을 노리세요’ 등이다. 선장의 멘트는 정확했다. 선장의 말대로 하자 10개 바늘에서 7마리, 8마리가 연거푸 올라온다. 열기 낚시는 줄을 태워야 한다. 바늘 열 개에 새우를 달고 입질이 오면 조금씩 감는다. 그러면 낚싯대에서 계속 어신이 온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어신이 잦아들면 서서히 감는 게 열기낚시의 요령이다. 열기는 주로 어초 위에 몰려있고 한 마리가 잡히면 따라 올라오는 습성이 있기에 그것을 잘 이용해야 다수확을 노릴 수 있다.

바다 상황도 좋고 입질도 좋은데 딱 하나 아직 열기 씨알이 잘다. 그것이야 어쩔 도리가 없다. 부지런히 낚시를 한다. 미끼 달고 내리고 입질이 오면 조금씩 올렸다가 어느 정도 차면 올리고, 고기 떼고 미끼 달고. 이 단순한 반복이 낚시꾼을 몰입하게 한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음이 몰입이고, 그 몰입이 세상사에 지친 뇌를 쉬게 한다. 그 순간에는 돈도 명예도 사랑도 없다.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했던가. 말장난이지만 바다와 내가 일체가 된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회를 친다. 고기가 작기에 가위로 대가리와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껍질을 벗긴 다음 뼈 채로 회를 뜬다. 이른바 ‘열기 뼈회’. 울산에서 왔다는 꾼들과 동석하여 소주잔을 주고받는다. 서울에서 오밤중에 400km를 운전하여 왔다는 말을 듣고 그들은 돌아갈 길을 걱정해 준다. ‘쉬엄쉬엄 가이소. 하루 자고 가시든지요.’



이날 잡은 열기 조과.


오후 2시, 배는 철수 준비를 한다. 선장은 단호하게 이제부터는 고기가 안 나온다. 4시 이후에나 입질이 온다고 한다. 젊은 선장은 확신에 차 있다. 마음에 드는 선장이다. 대부분의 낚싯배 선장들은 멘트를 하지 않는다. 부저가 한 번 울리면 내리고 두 번 울리면 올리는 식이다. 그런데 이 선장은 초지일관 바다 상황을 설명하고 안내한다. 낚싯배가 서비스업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자기 직업을 정확히 이해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만나면 즐겁다.

낚시가 끝나고 쿨러들을 모아 기념 사진을 찍는다. 이런! 전국구인 우리가 제일 적게 잡았다. 동네 꾼들은 거의 쿨러를 채운 것이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었다. 미끼 때문이었다. 우리가 크릴새우를 쓴 반면 다른 꾼들은 보다 단단한 민물 새우나 오징어채를 달았기에 미끼를 갈지 않고 낚시를 해서 더 좋은 조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항상 현지꾼들이 원정꾼들에 비해 조과가 좋게 마련이다.
이제 천리 길을 달려가야 한다. 또 아득하다. 가야할 길이 멀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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