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현미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라는데.. -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이덕희
얼마 전 의과대학 동기가 카톡 하나를 보내왔어요 . 제가 얼마 전에 세상에 내놓은 책에 나온 현미 이야기를 읽고 열심히 현미를 먹고 있다고 감상문까지 보내준 고마운 친구였죠 . 그런데 링크해놓은 이 글을 보고 나니 자기는 지금 너무 혼란스럽다고 제 생각은 어떠냐고 묻더군요 . 클릭을 해보니 바로 “현미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다”라는 글로 이어지더군요 .
사실 그 카톡을 받기 며칠 전에 학교 근처에 있는 대형 서점 한 곳을 들렀어요 . 갑자기 몇 군데 선물 줄 곳이 생겨서 머플러로 얼굴을 절반쯤 가리고 제 책을 제가 사러 갔죠 . 건강서적 코너로 가서 도대체 내 책은 어느 구석에 쳐 박혀 있나를 둘러보다 보니 요즘 잘 팔린다는 건강서적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곳이 눈에 띄더군요 . 어떤 책들이 그렇게 잘 팔리는가 ? 궁금해서 그 코너에 진열된 책들을 쭉 훑어보는데 내용은 일단 차지하고라서도 책들의 제목들이 매우 자극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 죽인다 , 살린다 , 속지 마라 , 거짓말 , 배신 , 반란 ..
그걸 보니 아 ~ 건강에 대하여 쓴 책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제목을 달아야 팔리는구나 .. 싶었어요 . 갑자기 “ 호메시스 ” 라는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전문가나 의사들도 모르는 단어를 대중을 위한 건강서적의 제목으로 사용하고는 많은 사람들이 읽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제가 어리석게 생각되더군요 . 그리고 나서 며칠 후 친구로부터 받은 글이 또 다시 “현미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다”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을 단 글이었어요 .
일단 누가 그 글을 썼는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글쓴이는 나름 재야의 유명인사더군요 . 약초연구자로 되어 있고 같이 나와있는 사진이 무공이 아주 높은 도사 같았어요 . 그 글에서는 반복해서 어떻게 현미의 독성이 서서히 건강을 망치는가를 몇몇 극단적인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일반인들이 현미에 대하여 충분한 공포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적어 놓았더군요 . 다음은 그 글을 읽은 저의 소감입니다 .
먼저 밝혀야 할 사실은 진짜 현미 안에는 독이 들어 있어요 . 그렇기 때문에 그 글의 제목 중 일부인 “ 현미는 독약이다 ” 는 말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 그런데 현미뿐만이 아니예요 . 많은 식물성식품들이 독을 가지고 있죠 . 바로 식물성 식품 안에 포함된 많은 파이토케미칼들의 본질이 독이거든요 . 발암성분이기도 하구요 . 그러나 식품 속에 포함된 이러한 파이토케미칼들은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 아니라 천천히 살리는 독약일 가능성이 큽니다 . 아니 ~ 이게 무슨 말도 되지 않는 말장난인가 싶으신가요 ?? 제가 책에 적었듯이 이것이 바로 호메시스의 기본 개념입니다
일단 , 다양한 파이토케미칼들이 많이 포함된 채소와 과일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대하여서는 다들 이의가 없으시죠 ? 책에 보다 자세히 나오긴 하지만 다시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파이토케미칼들은 이 지구상에서 그다지 도움도 되지 않는 우리 인간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라고 식물들이 살신성인의 자세로 만들어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 파이토케미칼들은 식물이 자신을 공격하는 다른 생명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성분들이거든요 . 일차적으로는 자신들의 번식과 성장에 방해가 되는 다른 생명체를 죽이거나 병들게 하는데 초점을 맞춰서 만들어진 독들이죠 .
그러나 , 중요한 것은 파이토케미칼의 경우 식물과 그 식물을 먹으면서 생존한 동물간의 기나긴 상호과정을 통하여 동물들은 그러한 성분들을 오히려 우리 인체에 유리한 스트레스 , 즉 호메시스를 자극하는 신호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파이토케미칼들 , 즉 독이 든 식물성 식품들을 음식으로 먹으면 건강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을 하는 것이구요 . 물론 현 시점에도 이러한 파이토케미칼의 양이 엄청나게 많아지면 당연히 독으로 작용합니다 . 그러나 우리가 음식을 통하여는 그렇게나 많은 양을 먹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 바로 독도 적절하게 사용하면 약이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입니다 .
그런데 인간들이 현재 먹는 자연식품 중 현미를 포함한 곡류는 인간들이 진화과정 중에 가장 늦게 만난 식품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곡류 안의 파이토케미칼들은 과일이나 식물류의 파이토케미칼들보다 적응이 덜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 여기서 적응이 덜 되었다는 것은 약으로 작용할 수 있는 안전한 양의 범위가 좀 더 좁고 독성이 좀 더 일찍부터 나타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 그 글에서 우리 조상들이 이러한 현미의 독성에 대하여 우려를 했고 피했다는 부분이 있는데 다소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
그러나 현 시점 , 인간들은 1 만년 이상 각종 곡류에 노출이 되면서 생존을 해왔습니다 . 제가 책에서 생명체의 후성유전학적인 적응이 생존에 매우 중요함을 여러 곳에서 강조한 바 있는데요 1 만년 정도의 세월이면 일상생활 속에서 먹는 현미 속의 파이토케미칼 양 정도야 충분히 인간이 적응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지금 발표되고 있는 논문들을 보면 통곡물을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많이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들이 대부분입니다 .
그 글에서 우리 조상은 아무도 현미를 먹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끼니마다 각종 산해진미로 가득 찬 수라상을 즐긴 임금들은 백미만을 즐겼다고 하지만 먹고 살기 바쁜 백성들이 그 많은 시간을 들여서 굳이 현미를 백미로 도정해서 먹기는 힘들었을 듯 해요 . 서구에서 통밀가루에서 백밀가루를 먹기 시작한 시점이 19 세기 후반 제분업이 들어온 다음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마 아시아권에서 백미를 주로 먹기 시작한 것도 도정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점 이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 진실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임금 중에 가장 장수한 영조는 다른 임금들과는 달리 오히려 일반 백성들이 주로 먹던 현미와 잡곡과 같은 거친 음식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 이렇게 적다 보니 갑자기 고귀한 왕족의 후손들은 현미에 충분히 적응되지 않아서 지금도 현미를 먹으면 독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막 들었어요 . 전주 이씨 , 개성 왕씨를 비롯하여 고구려 , 백제 , 신라 왕족의 후손들 .. 조심하세요 ^^
그리고 피틴산 (phytic acid) 이야기도 이어서 할께요 . 피틴산도 일종의 파이토케미칼인데요 그 글에서 피틴산은 여러가지 필수미네랄을 흡착하여 몸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현미를 먹으면 빈혈이 오고 골다공증이 온다고 적혀져 있습니다 . 일단 피틴산이 필수미네랄의 소화흡수를 방해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 그런데 이 피틴산은 현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그렇게 좋다는 아마씨 , 우리가 늘 먹는 들깨 , 통깨 , 그리고 콩류 등 기본적으로 다양한 곡류에 상당히 포함되어 있는 성분입니다 .
기본적인 영양소섭취조차 힘들었던 , 먹을 것이 매우 부족했던 시절이나 아직까지 그런 환경에 처해있는 나라에서는 이러한 피틴산이 많이 든 식품들인 곡류를 많이 먹으면 가뜩이나 부족한 필수미네랄의 흡수를 막아 여러 가지 질병들을 일으킬 수 있을 겁니다 . 하지만 최소한 먹을 것의 부족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 곡류에 든 피틴산 때문에 필수 미네랄의 결핍이 올 것이 염려되어 통곡물을 먹지 않는 것은 전형적인 소탐대실 , 교각살우의 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실제로 서구국가에서 시행된 연구결과들을 보면 통곡물을 먹었다고 해서 미네랄 결핍이 오는 것은 아닌 것을 볼 수 있죠 ,. 그래도 이 문제가 계속 찝찝하다면 발아시키거나 발효시켜서 먹는 방법을 선택하면 되겠죠 . 현미는 발아현미로 먹고 콩류는 발효시킨 된장이나 청국장으로 먹고 . 이 과정 속에서 피틴산은 분해가 되어버립니다 .
그리고 제가 “ 호메시스 ” 에서 몸밖으로 배출되기 힘든, 우리가 일상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지용성 화학물질들을 대변배출 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식품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 중 현미의 중요성을 강조해놓기는 했지만 어떤 경우든 현미는 잘 씹어야만 그 가치를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기 때문에 잘 씹기가 힘든 사람들은 현미가 가진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을 수도 있고 그럴 경우 현미를 대체하는 다른 식품도 가능하다고 보죠 . 꼭 이것만이 정답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
최종적으로 “현미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다”이라는 글을 본 저의 소감을 요약하자면 현재 먹는 것과 관련된 많은 논란이 그렇듯이 이 역시 “Half-truth is often a great lie” 라는 말로 결론 내릴 수 있을 듯 합니다 .
경북의대 예방의학교실 이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