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일을 두고 우리를 그토록 우울하게 만들던 바다가 모처럼 금, 토, 이틀간은 잔잔해지리란 예보가 올라온다. 2009년 3월21일. 1물. 고저 차 2M39. 서해 먼 바다 파고 1~1.5미터. 만조, 오후 1시경.
이 정도면 약간의 너울은 있겠지만 아주 축복받은 날이다.
같이 나갈 일행들과 카풀 약속을 챙기고 낚시장비 점검을 시작한다. 벌써 몇 십 년째 되풀이하는 작업이지만 항상 서툴고 새로운 느낌이다.
전동 릴을 꺼내 손으로 돌려 본 후 어쩐지 부드럽지 않은 것 같아 그리스를 뿌려본다. 너무 과하게 뿌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등등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구명동의를 살펴보고 입고 나갈 옷가지까지, 그리고 약간의 간식꺼리도 모두 챙겨 넣는다. 그러다보면 짐은 항상 불어나게 마련이고, 힘들게 가져갔던 장비 중에는 한 번도 쓰지 않고 그냥 바닷물에 적신 채 돌아와 이제는 녹이 슨 것들도 나온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써 보아야지하며 다시 구겨 넣게 마련이다.
잠을 청해 보려고 자리에 누워 보지만 어차피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아 꾸린 짐을 다시 한 번 펼쳐서 점검해본다. 그렇게 챙겼지만 결국 배터리는 깜빡 잊고 나왔다.
이 어부지리 사이트에서 낚시의 스승으로 모시는 주야조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서해의 3월은 소위 영등철로 우럭 낚시꾼에게는 잔인한 계절이란다. 서해 선상낚시 장르에서는 생소한 용어, 영등(靈登)철이다. 주로 갯바위 낚시에서 자주 쓰는 용어로 이 시기에는 영등할머니가 바람을 몰고 온다며 바람할머니라 부르는데 풍신<風神>의 도움으로 감성돔낚시시즌이 된다.
또한 1년 중 백중사리(1년 중 가장 큰 사리)와 함께 조수간만의 차이가 가장 큰 시기가 바로 이때다. <주야조사님 글에서 일부 인용.>
따라서 높은 파도와 사리 물때를 피해야하는 서해안의 우럭 낚시에는 아주 불리한 시기로 꼽힌다. 더군다나 해수의 온도도 아직은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섭씨 5도 안팎으로 우럭의 활동은 극도로 제한되는 시기다.
이 시기에 어쩌다 올라오는 우럭의 사진을 보면 모두 배가 홀쭉해진 모습이어서 불쌍해 보이는데 못 먹어서인지 아니면 이제 막 산란이 끝났는지는 알 길 없다.
이렇게 추운 계절에 우럭들은 산란할까? 우럭들이 약해진 체력을 보강하려면 아무래도 식탐이 심해질 테니까 낚시하기에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위안하며 자기 최면을 걸어 본다.
내가 낚이기 시작 한 것.
신진도 인근의 많은 낚싯배들은 선장마다 독특한 습성이 있어 꾼들의 취향에 따라 선택의 폭이 갈린다. 우리 일행이 즐겨 찾는 배의 선장 역시 약간 독특한 습관이 있다. 물론 선장 본인은 아니라고 펄쩍 뛰지만 단골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배의 특정 부위에 자리 잡은 분들이 가끔 쏠쏠하게 재미 보는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자리가 정해져 있는 걸 보면 아마 낚시꾼의 습성이나 장비의 차이에 따른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바다는 잔잔하고 바람도 별로 없다. 입수 신호가 떨어지자 잠시 후 여기저기서 전동 릴 돌아가는 소리가 윙윙거린다. 아마 낚시 포인트에 제대로 들어 선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굴비처럼 훌쭉한 모양이지만 어쨌든 우럭을 잡아내는 중이다. 그런데 안타깝게 우리 쪽은 건너뛴다.
‘다음에는 우리차례가 되겠지.’ 서너 번 기다려도 어찌된 일인지 우리 쪽은 영 소식이 없다. 약간 초조해지지만 어쩔 방법이 없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한 마리 잡아내도 흡족한 느낌보다는 선장의 습관 때문에 나만, 아니 우리 쪽만 손해 본다는 생각이 자꾸 앞선다.
낚시라는 마물에 내가 계속 낚이는 중이다.
항구에 돌아오기 무섭게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 어땠어요?’ 함께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못 나오신 회원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조황부터 묻는다.
‘으응, 괜찮았어요. 그런데 갈치가 여기 중부해상까지 올라왔는지 한 마리 낚였네요.’
전화기가 조용한 걸 보니 저쪽에서 약간 놀란 모양이다.
사실은 오늘의 수확이 너무 빈약해 시장에서 물 좋은 갈치 한 박스를 구입하여 함께 나누었는데 이런 내막을 모르고 전화하신 분들이야 부러워할 수밖에........
‘갈치가 낚였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다 때려치우고 쫓아 나서는 건데..........>
또 한 사람 낚이는 중이다.
즐거움을 낚으려면 내가 먼저 낚여서 이런저런 핑계 없이 따라나서야, 잡던 못 잡던 날씨가 좋았던 나빴던 어쨌든 간에 후회가 없을 것 같다.
서해에서 갈치 나온 거로 알고요ㅎㅎ
보이스피싱 이런 거는 말고, 보통은 낚이면 재밌는 일이 생기지 않나요!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