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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주세요 배낚시

[조행후기]
2009.03.23 16:54

낚으려면 낚여야.....

조회 수 4508 댓글 12
  오늘이 바로 그 날. 낚시정보 사이트에 올라오는 해상일기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로 그날이다.
몇 주일을 두고 우리를 그토록 우울하게 만들던 바다가 모처럼 금, 토, 이틀간은 잔잔해지리란 예보가 올라온다. 2009년 3월21일. 1물. 고저 차 2M39. 서해 먼 바다 파고 1~1.5미터. 만조, 오후 1시경.
이 정도면 약간의 너울은 있겠지만 아주 축복받은 날이다.

  같이 나갈 일행들과 카풀 약속을 챙기고 낚시장비 점검을 시작한다. 벌써 몇 십 년째 되풀이하는 작업이지만 항상 서툴고 새로운 느낌이다.
전동 릴을 꺼내 손으로 돌려 본 후 어쩐지 부드럽지 않은 것 같아 그리스를 뿌려본다. 너무 과하게 뿌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등등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구명동의를 살펴보고 입고 나갈 옷가지까지, 그리고 약간의 간식꺼리도 모두 챙겨 넣는다. 그러다보면 짐은 항상 불어나게 마련이고, 힘들게 가져갔던 장비 중에는 한 번도 쓰지 않고 그냥 바닷물에 적신 채 돌아와 이제는 녹이 슨 것들도 나온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써 보아야지하며 다시 구겨  넣게 마련이다.
잠을 청해 보려고 자리에 누워 보지만 어차피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아 꾸린 짐을 다시 한 번 펼쳐서 점검해본다. 그렇게 챙겼지만 결국 배터리는 깜빡 잊고 나왔다.

  이 어부지리 사이트에서 낚시의 스승으로 모시는 주야조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서해의 3월은 소위 영등철로 우럭 낚시꾼에게는 잔인한 계절이란다. 서해 선상낚시 장르에서는 생소한 용어, 영등(靈登)철이다. 주로 갯바위 낚시에서 자주 쓰는 용어로 이 시기에는 영등할머니가 바람을 몰고 온다며 바람할머니라 부르는데 풍신<風神>의 도움으로 감성돔낚시시즌이 된다.
또한 1년 중 백중사리(1년 중 가장 큰 사리)와 함께 조수간만의 차이가 가장 큰 시기가 바로 이때다. <주야조사님 글에서 일부 인용.>
  따라서 높은 파도와 사리 물때를 피해야하는 서해안의 우럭 낚시에는 아주 불리한 시기로 꼽힌다. 더군다나 해수의 온도도 아직은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섭씨 5도 안팎으로 우럭의 활동은 극도로 제한되는 시기다.
  이 시기에 어쩌다 올라오는 우럭의 사진을 보면 모두 배가 홀쭉해진 모습이어서 불쌍해 보이는데 못 먹어서인지 아니면 이제 막 산란이 끝났는지는 알 길 없다.
이렇게 추운 계절에 우럭들은 산란할까? 우럭들이 약해진 체력을 보강하려면 아무래도 식탐이 심해질 테니까 낚시하기에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위안하며 자기 최면을 걸어 본다.
내가 낚이기 시작 한 것.

  신진도 인근의 많은 낚싯배들은 선장마다 독특한 습성이 있어 꾼들의 취향에 따라 선택의 폭이 갈린다. 우리 일행이 즐겨 찾는 배의 선장 역시 약간 독특한 습관이 있다. 물론 선장 본인은 아니라고 펄쩍 뛰지만 단골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배의 특정 부위에 자리 잡은 분들이 가끔 쏠쏠하게 재미 보는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자리가 정해져 있는 걸 보면 아마 낚시꾼의 습성이나 장비의 차이에 따른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바다는 잔잔하고 바람도 별로 없다. 입수 신호가 떨어지자 잠시 후 여기저기서 전동 릴 돌아가는 소리가 윙윙거린다. 아마 낚시 포인트에 제대로 들어 선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굴비처럼 훌쭉한 모양이지만 어쨌든 우럭을 잡아내는 중이다. 그런데 안타깝게 우리 쪽은 건너뛴다.
‘다음에는 우리차례가 되겠지.’ 서너 번 기다려도 어찌된 일인지 우리 쪽은 영 소식이 없다. 약간 초조해지지만 어쩔 방법이 없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한 마리 잡아내도 흡족한 느낌보다는 선장의 습관 때문에 나만, 아니 우리 쪽만 손해 본다는 생각이 자꾸 앞선다.
낚시라는 마물에 내가 계속 낚이는 중이다.

  항구에 돌아오기 무섭게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 어땠어요?’ 함께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못 나오신 회원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조황부터 묻는다.
‘으응, 괜찮았어요. 그런데 갈치가 여기 중부해상까지 올라왔는지 한 마리 낚였네요.’
 전화기가 조용한 걸 보니 저쪽에서 약간 놀란 모양이다.
사실은 오늘의 수확이 너무 빈약해 시장에서 물 좋은 갈치 한 박스를 구입하여 함께 나누었는데 이런 내막을 모르고 전화하신 분들이야 부러워할 수밖에........
‘갈치가 낚였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다 때려치우고 쫓아 나서는 건데..........>
또 한 사람 낚이는 중이다.

  즐거움을 낚으려면 내가 먼저 낚여서 이런저런 핑계 없이 따라나서야, 잡던 못 잡던 날씨가 좋았던 나빴던 어쨌든 간에 후회가 없을 것 같다.
Comment '12'
  • profile
    민평기 2009.03.24 00:36
    늦은 시각, 좀 멍하게 읽어내려가다가 정신이 번쩍들었습니다.
    서해에서 갈치 나온 거로 알고요ㅎㅎ
    보이스피싱 이런 거는 말고, 보통은 낚이면 재밌는 일이 생기지 않나요!
    즐감하고 갑니다~~
  • ?
    맑은샘 2009.03.24 02:50
    ㅎㅎㅎ. 어부지리님께서 제일 먼저 낚이셨군요.
    하긴 살다보면 이리저리 낚이며 엮이며 살아가게 마련 아닐까요?
    금년에는 또 얼마나 자주 낚이며 살려는지.......
  • ?
    매실사랑 2009.03.24 08:34
    저 역시 갈치 한마리가 된듯한 기분이 듭니다.ㅎㅎ
  • ?
    어흥이 2009.03.24 08:44
    ^^ 아주 공감가는 말씀 이십니다
    추천한표꾸~욱 누르기 위해 여지껏 미뤗던 회원가입 하고 글 올려 봅니다...
    낚시는 물론이거니와 한평생살이가 기대와 낚임과 실망과의 연속에서
    작은 기쁨을 누리는것 아닐런지요?? 우리네 서민 삶이라는것이......
    어느 누구나 삶의끝은 모두 같은데 ㅡ.ㅡ;;
    그려러니.. 하며 순응하는 삶을 즐기는 모든이에게 조용히 박수를 쳐 봅니다^^
  • ?
    맑은샘 2009.03.24 09:07
    두 분 더 낚이셨네.ㅋㅋㅋ. 민평기님 대신 신입회원 가입을 축하 드리구요-
    세상살이...그러려니, 그렇죠? 제일 좋은 방법이더군요.
    그러려니....
  • ?
    자연바람 2009.03.24 10:58
    낚인사람 여럿이군요.. 저두 낚였는데.. 맑은 샘님 낚시재주가 엄청 좋으심.. 단지 물고 올라온것이 사람 이라는것 빼면....
  • ?
    괴태 2009.03.24 16:32
    그런마음이 나혼자인줄알았는데 여러조사님도 같은 마음이군요
    잘나오면 내가잘앉고 잘하고 안나오면 선장이 배를 잘안되주고 ~~~
    그래서 마음을 이제는 비웠어요
    나오면 좋고 안나오면 ???
    생각을 바꾸니 별크게 후회는 없네요
  • ?
    맑은샘 2009.03.24 17:45
    자연바람님, 괴태님, 안녕하세요?
    아무래도 내 탓! 보다는 네 탓!!!이 더 편한 세상인 모양입니다.
    그러려니 하고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것이 편해지더군요.
  • ?
    왜이랴 2009.03.25 07:42
    맑은샘님! 저두 깜짝 놀랐어요...
    서해에서 갈치가 한마리 낚였다고 해서요.ㅎㅎㅎ
    조황이 우러기보다 다른 조사님들이 더 많이 낚인것 같아여~~~
  • ?
    바다와나 2009.03.26 01:03
    낚시인의 마음을 너무 생동감있게 표현해 주셔서 마음이 탁트이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5-6년전에 안흥에서 우럭낚시가서 풀치수준의 갈치를 잡았던 기억이 있네요. 미꾸리가 몇번인가 날카롭게 잘려 올라와서 챔질타이밍을 많이 늦추었더니 3마리 정도 잡았습니다. 단 한번의 경헙이었으니 특별한 일이 었겠지만 그런일도 있더군요.
  • profile
    주야조사 2009.03.27 20:37
    바다를 사랑하시는 마음 잘 읽고 갑니다.
    늘 건안하시옵고 건필하시옵길....
  • ?
    맑은샘 2009.03.28 09:44
    영등철에 관한 주야님의 글 일부를 무단 인용해서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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