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안뜰의 연못을 서성대다가 엄마의 반짇고리에서 꺼낸 바늘을 불에 달구어 낚싯바늘처럼 만들고 댓가지에 묶은 후 밥풀을 달아 던졌더니 철없는 금붕어가 물고 늘어지더군요. 끌려나온 금붕어는 숨이 넘어가느라 팔딱거리고 나는 엄마의 따끔한 회초리에 놀라 팔짝팔짝 뛰었답니다.
‘너 담에 커서 뭐가 되려고 집에서 기르는 짐승까지 이렇게 못살게 굴어!’
-엄마! 이렇게 재미있는데 난들 어떻게 해요!--50년대-
물에 술을 탔는지 술에 물을 탔는지 어쨌든 재미없는 강의를 빼먹고 열심히 다니던 낚시터에서 몇 번 만나 낯익은 중후한 표정의 신사가 뭐하는 젊은이냐고 말을 붙이시기에 마침 강의가 휴강이라 놀러 나왔다고 했더니 매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십디다.
알고 보니 2년 후에 마주치게 될 대학병원의 원장님이셨습니다.
그 사건으로 평일에 수업 빼먹던 낚시는 막을 내렸고 대신 주말이 되면 원장님 비서가 교실로 뻔질나게 점검 나오더군요. ‘이번 주말 낚시는 어디가 좋을지 빨리 신고하라고.’ 대학병원에 낚시동호회가 결성되어 강화도 쪽으로 참 열심히도 다녔지요. 1960년도 추억입니다. 그때는 한국에서 아주 근사한 대나무 낚싯대가 생산되면서 낚싯대의 원조 격인 일본제품의 인기를 누르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원장님도 근무 시간에 낚시 나왔다가 들킨 것이 챙피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어떻한단 말입니까?--60년대-
강원도 철원 쪽 비무장지대 안에는 물 반, 고기 반이라는 학 저수지가 있습니다. 첫 부임지에서 연대장의 고민을 무사히 해결해주었더니 국회의장석 군단장 전용 그리고 사단장님 전용 낚시 좌대까지 모두 내 차지로 변했습니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이니까요.
우리부대 관할이 아니었기에 가끔 보안관계로 투덜거리는 경비초소에는 상비약품 몇 알 던져주는 것으로 밑밥을 뿌렸습니다. 때 묻지 않은 비무장지대의 붕어가 만드는 찌 올림은 우주선발사 로켓보다 더 장관이었답니다.
휴전선에서 북한군과 머리를 맞댄, 남들이 보기엔 위험한 군대생활이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재미난 걸 내가 어떻게 그만 둘 수 있겠습니까!--60년대 중반-
토요일 오후 진료를 끝내면 병원 앞에서 기다려주던 친구의 차를 타고 새로 뚫린 영동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지요. 70년대 초라 열악한 도로환경이었기에 가로등도 없었습니다. 마주치는 차도 드믄 밤길을 달리다가 속도가 떨어지면 고갯길을 오르겠거니, 차가 다시 기운을 차리면 이제 내리막길이구나! 낄낄거리며 밤새 달렸답니다.
동해바다의 참가자미며 방어 등등을 cooler 가득히 담아 올라왔더니 너무 무거워 멜빵끈은 끊어지고 어깨에는 그만 퍼런 멍이 들었습니다. 마누라가 문 열고 나오더니 도끼눈을 하고 소리 지릅디다.
‘새끼가 홍역으로 열꽃이 피었는데 낚시가 말이 되냐고!!!’
그 후, 낚시 갈 때마다 홍역소리만 나오면 목이 저절로 자라대가리처럼 기어들어가는 수난을 겪어야했습니다.
-여보! 그래도 재미있는 걸 어떻게 해요!--70년대 초반-
아이들 모두 분가시키고 나서 배운 견지낚시의 묘미는 드디어 마누라도 강물 속으로 끌어 들였답니다. 아이들이 모두 짐싸고 나가자 집안에 유일하게 남은 남자 하나라도 붙잡아두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모양입니다.^^
조각배에 몸을 싣고 마누라 견지낚시에 열심히 미끼를 달아주고 아양을 떨었더니 눈치, 적비, 그리고 멍짜까지 곧잘 낚아내며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더군요.
어느 날 미끼 끼어 바치라는 호령이 뜸한 것 같아 곁눈질로 슬쩍 보았더니 돋보기 낀 눈으로 구더기 엉덩이에 낚시를 꽂느라 한참 골머리 앓는 중이더군요! 요즈음 이 사이트에 인기리에 연재되는 어느 분의 집 이야기처럼 드디어 고기가 마누라를 낚은 것입니다.
-마누라! 거 봐! 재미있잖아!--90년대 중반-
낚시 가기 전날, 아무리 잠을 청해도 머리는 점점 맑아지고 눈만 말똥거리기에 거실에 나와 짐을 다시 풀고 낚싯대를 꺼내 다시 만져보았습니다. 전에 쓰던우럭 대 보다 무려 50cm나 더 길고 강해서 약간 부담스럽지만 탄력은 좋은 것 같더군요. 댓가지 꺾어 만든 낚싯대에서 탄소섬유 제품을 거쳐 드디어 명품 낚싯대를 소유한 순간에 잠이 온다면 낚싯꾼이 아니지요.
어쨌든 한숨도 못자고 집 나서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마누라가 잠결에 눈 을 뜨더니 한심하다는 듯 입맛을 다시더군요.
-아직도 재미있는 걸 어떻게 하라고!
엔진 소리 잦아드는 낌새를 비몽사몽간에도 용케 알아채고 비틀거리며 나와 3단 채비에 미꾸라지와 오징어 채, 그리고 요상한 차림의 루어까지 꿰어서 준비를 마치니 첫 입수 신호가 떨어집니다.
톡톡 토도독. 생각보다 바닥 읽기가 편하다고 느끼는데 무언가 휙 치고 나갑니다. 그렇습니다. 첫 입질이 들어온 거죠. 다이와 500MT를 중간 속도로 reeling하니까 지나가던 사무장이 한마디 거듭니다. ‘어제 이 낚싯대로 주야조사님과 고문님이 오셔서 겁나게 잡아버렸어라! 근데 이름을 왜 한문으로 썼슈?’
무섭게 파고드는 첫 고기 입질에 마음이 부풀어 지난 밤 한 잠 못잔 피로가 멀리 사라집니다. 얼른 들어올려 새로 장만한 흰색과 푸른색이 아주 잘 어울리는 cooler에 던져 넣으려는데 사무장이 카메라를 들이밀더군요. 그럴 사정이 좀 있어 찎지말라고 피해도-
‘배에서 처음 올라오는 고기가 꼬랑지 걸려 올라오는 건 정말 첨 봤슈. 이건 기념으로 찍어야 혀.’
혹시 멍청한 낚시꾼이 놓친 우럭을 끝까지 쫓아가 꼬리를 꿰어 올리는 기특한 낚싯대 보신 분, 계신가요?
그딴 소리 그만두고 그날 얼마나 잡았는지, 그게 궁금하다고요? 낚시가게에서 뻥치는 조황, ‘집에 가서 드실 만큼 잡았지요.’
우리 집뿐만 아니라 이웃의 서너 집에도 횟감으로 한 두어 마리씩 나누고도 행복이 남을 만큼 넉넉했답니다.
등을 가르고 소금 살짝 뿌린 후 채반 가득히 반그늘에 널어놓고 선풍기 바람까지 쏘였더니 갑자기 부자 된 기분이 들더군요. 드디어 할머니가 입에 달고 다니던 홍역소리도 사라졌답니다.
덤으로 주인보다 더 똑똑한 명품낚싯대 만난 덕분에 낚시가 점점 더 재미있어지니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할까요?
-하여간 아직도 재미있는 걸 어쩌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