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통해 서해 연안 섬들의 아름다움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바다에서 바라보는 동해와 남해 연안의 아름다움이야 이미 눈에 담아두었다지만,
쉬이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서해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다소 엉뚱한 이 결과는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섬 연안투어와 낚시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하였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어느새 겨울로 접어든지 오래여서,
서해에서는 먼바다로 나간 침선에서나 조황을 기대할 수 있는 계절이 되어버렸습니다.
적당한 씨알의 몇 마리도 필요하고 회 맛도 잊어버릴 참이어서,
때마침 기획된 동호회의 남해 출조에 따라 나서게 되었습니다.
선상도 한동안 루어에만 매달리다 보니 남해의 채비구성까지 까마득하게 잊혀져 버려,
년 전에 구했던 채비랑 도구들을 끄집어 내다보니 빠진 게 뭔지도 헷갈립니다.
동호회 출조가 좋은 게 뭐겠습니까?
부족한 것 얻어 쓸 생각으로 되는대로 챙겨봅니다.
조금 여유시간을 가지고 약속 장소인 비봉으로 갔음에도 벌써 많은 분들이 와 있습니다.
그만큼 기대가 큰 때문이겠지요.
회원들이 모두 차에 오르자 타조님의 강의가 시작됩니다.
거문도 열기낚시의 특징과 주의할 점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역시 끊임없이 연구하는 조사다웁게
상세하고도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짚어주는 설명이 일품이십니다.
세시간 넘는 버스 이동과 배를 갈아타고 다시 이동해야 하는 몇 시간이
그리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반가운 얼굴들이 있고, 웃고 떠들다 보면 몇 시간 거리야 지척입니다.
피곤하다면 주위의 소음이 거친들 잠 속으로 빠지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문도항은 여전히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때로는 대박으로, 때로는 빈작으로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지만,
한번도 아쉬움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는 포근함이 있습니다.
여수에서 조금 늦게 출항한 배는 잔잔한 바다 위를 빠른 속도지만 미끄러지듯 달린 탓에
중간에 깨지도 않고 거문도에 도착합니다.
이제 아침식사를 마치고 바로 출항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거문도로 들어 올 때만 해도 잔잔한 바다가,
일순간에 하얀 이빨 같은 백파가 여기 저기서 솟구치는 험한 모습으로 돌변해 있습니다.
뱃전 위로는 선수에서 부딪쳐 부서진 파도가 거친 바람에 실린 소나기처럼 덤벼듭니다.
결국 목적한 곳으로는 가지 못하고 파도가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여기저기 일어나는 백파가 쉼 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힘든 조행이 되겠구나 싶지만,
배 속도가 잦아드는 것을 느끼자 조건반사처럼 일어나 자동으로 채비 준비에 들어갑니다.
어쩔 수 없는 꾼입니다.
처음에는 거문도 가게에서 자작한듯한 12단 열기채비를 먼저 써 볼 요량입니다.
아직껏 열기채비라고는 7단 이상 써본 적이 없던 터라
12개 바늘에 미끼를 다는 데에도 한참의 시간이 드는 느낌입니다.
드디어 첫 입수.
바닥에 닿고는 잠시 후 투둑거리는 느낌이 전해옵니다.
너댓마리 달렸다 싶은 즈음에 몇 바퀴 천천히 감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입질, 그리고 정적.
더 덤빌 놈이 없나?” 하고 채비를 올립니다. 불과 몇 분 사이입니다.
수면에 비치는 줄줄이 빨간 열기들.
12개 바늘에 모조리 매달렸지만, 안타깝게도 씨알이 자그마한 게 고만고만한 것들입니다.
다 풀어 주자니 거친 바다가 낚시 여건을 그리 호사스럽게 바꿔줄 것 같지도 않고,
가져가자니 정리할 일이 귀찮을 듯합니다.
해서 반만 가져가기로 합니다.
손바닥에 손가락 한마디 모자라면 바다로, 아니면 쿨러 행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더 걸립니다.
살려주자니 입을 찢지 않아야 하니 조심스러워져서 시간이 더 걸립니다.
연속 세 번을 12바늘에 모두 매달다 보니,
새우미끼를 쓰는 것조차 번거로워 미끼를 모두 오징어로 바꾸어 답니다.
역시 줄줄이 달려드는 고만고만한 크기의 열기들.
마릿수로 채우다 보니, 이건 아니다 싶어 채비를 바꾸기로 합니다.
크기로 승부를 할 생각입니다.
20호 바늘을 40cm 간격으로 매단 7단짜리 상용채비로 바꾸고
오징어 미끼도 조금 크게 매답니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입질은 해대지만 제대로 삼키지는 못합니다.
기다립니다.
다문다문 조금 씨알이 되는 놈들이 두엇 매달리고 가끔 쏨뱅이도 매달립니다.
잔챙이가 달려있지 않으니 조금 큰 놈들이 매달릴 기회가 생긴 탓입니다.
마릿수로는 확 줄어버렸지만, 그래도 번거로움이 덜하니 되었다 자족해버립니다.
바람이 조금 잦아드는 듯하고 파도가 낮아지니 선장의 이동하겠다는 방송이 나옵니다.
이동 시간이 조금 길어집니다.
졸며 깨며 실려온 느낌으로 30분 가까이 달려온듯합니다.
채비를 내리자 마자 덜컥하는 느낌.
바닥에 걸렸나 줄을 당겨 보았는데, 아닙니다.
채비를 올려보니 20cm 훨 넘는 열기 네 마리가 매달려 있습니다.
이놈들이 한번에 덤비니 흡사 우럭 대짜가 매달린 듯 잡아당겼나 봅니다.
여기저기 낚시대가 깊이 휘어지는 모습에 즐거워하는 표정들은
씨알들이 이전보다는 많이 굵어진 탓입니다.
그러다 3짜는 됨직한 열기와 쏨뱅이도 얼굴을 비춥니다.
역시 채비를 바꾸길 잘했다 싶습니다.
아침에 잡았던 잔챙이 열기를 한쪽으로 정리할 생각으로 쿨러를 여니,
이미 한참 깊숙한 곳에 숨어버렸고, 계속 올라오는 열기로 정리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아침의 거친 파도에 다들 걱정을 했었는데, 역시 조황이 되니 멀미하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파도가 조금 심하다 싶으면 멀미로 고생하던 우왕 회장님도
회까지 뜨는 수고를 하면서도 멀미를 않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예전 기억이 납니다.
당시 30리터 쿨러가 넘쳐 작은 스티로폼박스와 비닐봉지에 담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오늘도 욕심을 부리자면 충분히 가능할 듯싶지만,
크기로 승부하기로 했으니 그대로 밀고 갑니다.
그럼에도 60리터 쿨러의 반을 채우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밥 먹을 시간마저 부족합니다.
언제 입질이 끊길지 모르는 일이라 식사하러 가지를 못하니 사무장이 컵라면 배달을 해줍니다.
이런 고마울 데가. 입질 오는 것 봐가며 한끼를 때웁니다.
오후 들어 계속 허기지다 했더니 밥을 말아서 먹는 것을 잊은 탓입니다.
어쩌겠습니까, 고기 욕심 탓인걸요.
오후 들어서는 주위에서 조금씩 얻은 미끼로 변화를 줘봅니다.
새로 달았을 때는 미꾸라지 조각이,
시간이 좀 흐른 후에는 오징어가 효과가 괜찮은 듯싶습니다.
부지런히 갈아줄 수 있다면, 미꾸라지를 써도 좋을 것 같은데,
저의 경우에는 가져오는 번거로움에 일부러 사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후 늦어가면서는 선미 쪽으로 입질이 집중되어 배 중간쯤,
나의 우측 한자리 이전부터 입질이 멈춥니다.
뭐 이만큼만 해도 충분히 잡았으니 더 욕심부릴 일도 아닌데다,
그래도 가끔씩 씨알 되는 놈들이 올라와 주니 감지덕지입니다.
서울까지 오늘 내 가자면 이제 귀항해야 할 시간인데도,
선미로 이어지는 조황에 선뜻 배를 돌리지도 못하고,
이제 한번만 더 담궈보겠다는 방송이 몇 차례 이어집니다.
요 몇 일 기상 탓으로 조황이 부진하다가 오늘에야 조황이 보이니
선장입장에서도 놓치기 아까웠던 이유도 있겠습니다.
맛난 게장으로 저녁을 하고 비봉으로 돌아오니 12시가 다 되어갑니다.
그래도 도로가 막히지 않아 불편하지 않게 푹 잔 탓에 피곤이 쏟아지지는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장비만 세척을 하고,
고기는 내일 정리할 생각으로 빙장을 하다 보니 한숨이 나옵니다.
"너무 많이 잡았나?"
역시 연구하시는 조사님께는 뭔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존경하는 타조님, 우왕님 그리고 나에겐 늘 상록수 - 한사랑님....
그리운 이름들이네요..
무상천님, 유려한 글 잘 보고 갑니다.(글 속의 거문도 여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