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포로 떠난 민어낚시 여유(旅游)
지인 중에 단청같이 은은한 마쵸맨 최 달밤님(anioni)이 있습니다.
작년 초에 한턱 쏜다고 하여 함께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제법 큰 민어 가격을 물어보니 35만 원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반토막도 파느냐고 물으니 판다고 하여 몸통 반을 잘라 뒷부분을 샀습니다.
당연히 부레도 반을 잘라 주더군요.
2층에 올라가서 회와 맑은탕을 부탁하였지요.
두툼하게 썰어 한 접시 가득 나온 민어회 그 옆에 마치 소곱창처럼 생긴 부레까지...
먼저 시원한 소주 한잔 들이켜고 초장에 찍어 한점 입에 넣으니 쫀득쫀득하면서 부드러운 느낌,
약간 단맛이 나면서 고소함이 혀를 자극하는 원초적 깊은 맛,
부레는 특유의 쫄깃하고 이 역시 씹을수록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맛에 탄복을 하였지요.
저녁이라 시장한 탓도 있겠지만 민어가 이처럼 맛있고 비싸며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민어 맑은탕은 또 어떤가요.
뽀얀 국물, 담백하면서 비린내가 전혀 나질 않고 입안에 맴돌 여유를 줄 겨를이
없을 정도로 소주를 부르며, 후후~후루룩!~ 먹는 즐거움의 행복감까지 가는 극치를 보여줬던 기억이 선연합니다.
이런 민어는 여름철 기운이 없고 피곤해지며 위장 기능이 떨어진 술꾼들 또는 남녀노소에 이르기까지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며, 소화 흡수력이 좋아 여름 보양식으로 최고로 쳐 준다고 하네요.
조선시대 국조보감에 보면 여기서도 민어 관련 기록이 나옵니다.
숙종께서 그 당시로선 80세로 무척 장수한 문신 송시열(宋時烈)에게 축하하며 특별 하사한 물품들의 기록이 있는데,
옷감과 함께 먹을 것도 보냈지만 민어(民魚二十尾)를 보낸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예나 지금이나 민어는
귀한 대접을 받는 어종으로 자리 잡고 있네요.
특히 그 당시부터 여름철 보양식으로 민어탕은 일품(一品), 도미탕은 二品, 보신탕은 三品으로
이 역시 특미로 즐겨 찾았다고 합니다.
* * *
이런 귀한 민어를 직접 낚아보고 싶고, 낚으면 집사람에게 또 은혜 입은 지인들과 민어탕이라도 함께 하고파
발해(渤海)님과 한 달 전 만남에서 함께 출조키로 했죠.
여기저기 탐독한 채비며 실전에 관련한 정보를 얻고 준비하여 7월30날 드디어 격포항에 도착했습니다.
한식경 달렸을까.. 세마포를 쓴 얌전한 신부같이 뿌연 연무속에 위도가 보입니다.
채비를 내리라고 합니다.
서서히 바닥을 더듬으며 준비된 포인트를 따라 멀리 가보자는 선장님의 멘트에 기대와 설렘이 시작됩니다.
채비는 매점에서 판매하는 기성 채비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민어낚시 채비구성의 예를 들면 (채비 기둥줄 : 24호 나이론줄)
ㅇ---------------------110cm--------------------------ㅇ8ㅇ-----------30cm----------ㅇ◀
(8자 도래) (구슬=도래=구슬) 핀도래(봉돌)
* 낚싯대 : 흔히 주꾸미나 광어 루어 때 사용하는 라이트 지깅대.
* 릴 : 베이트 릴.
* 바늘 : 세이코 농어바늘 22호 또는 우럭바늘 24호.
* 원줄 : 합사 3호.
* 미끼 : 선사에서 제공하는 생새우(중하)
간간히 작은 우럭이나 노래미가 나올 뿐, 민어의 기척은 없습니다.
선장님은 부지런히 포인트를 옮겨가며 샅샅이 훑어보지만 귀한 보체(寶體)답게 쉬 용안을 보여주질 않고 애를 태웁니다.
갑자기 발해님의 초릿대가 사정없이 곤두박질치며 활처럼 휘어집니다.
"형님, 뜰채요~"
순간, 옆에 있던 저는 반사적으로 뜰채를 움켜쥐고 초조하게 이 민어 녀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입이 마르고 손이 떨립니다.
" 아우님, 아우님, 어때! 민어 맞어?"
등치에 걸맞지 않게 검게 그을린 얼굴에서 땀을 쏟으면서 끙끙대며 릴링하는 모습이 귀엽습니다...ㅎㅎㅎ
"민어 큰 놈 맞는 거 같은데요."
근데 아뿔싸...
은빛의 기다란 민어가 아니고 검고 둥그런 광어가 올라오는 것입니다...실망!~
그래도 이 시간 이게 어딥니까.. 축하를 해 주었습니다.
이곳에 어제 70짜리 민어 두어 마리가 출몰한 지역이라는
선장님의 방송 안내에 따라 또다시 긴장 모드로 들어갑니다.
저도 입질이 옵니다. 하나 둘 셋, 여유를 주며 물고 돌아서는 순간의 제물걸림으로 챔질,
너무 긴장한 탓에 센 챔질로 초릿대가 부러져 나갑니다.
80짜리 민어라고 판단한 이 민어녀석이 아닌 60cm 가까운 대형 장대입니다.
아!~~~~
숨겨온 시원한 막걸리 한 병을 나눠 마시며 숨고르기를 합니다.
" 형님, 광어회 뜰까요?"
막걸리 병채 쭈욱 들이키더니 안주 생각이 나는 모양입니다.
"아냐, 좀 있다 먹어야지... 지금은 민어 낚자구~"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칼질, 두툼하게 썰어 놓았는데도 양이 제법 됩니다.
배 전체에 광고를 하고 함께 나누는 이 싱싱한 어회맛,
어느 분이 조용히 가져온 물병(?)의 생명수가 종이컵에 따라진 순간,
햇볕에 찬란히 반사되어 우리를 감흥 시킵니다.
이 순간은 그 동안의 건조한 삶을 내려놓고 풋풋한 한 장의 흑백 사진처럼 행복한 추억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바다 위에서는 오늘은 우리들의 잠겨있는 마음을 잠금해제 시키는 날,
* * *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네요.
아직 여타 할 민어는 소식이 없지만 1호에서는 서너 마리 포획했다는 무전이 들어옵니다.
오늘이 3물이니 물색도 좋고 바람도 순풍이라 낚시하게엔 그만입니다.
긴장이 느슨해집니다.
무덥고 강열한 햇볕에 갈증이 납니다.
선사에서 준비한 얼린 생수 및 캔커피 보다 우리는 역시 텁텁한 미주(米酎)가 최고지요.
시원해서 두어 잔의 목 넘김이 너무 좋습니다.
이번엔 꼬불쳐 놓은 진짜 포인트로 간다고 방송합니다...^^
왕등도 쪽입니다.
헛기침 한번 크게하고, 채비 정렬을 한 다음, 준비운동까지...ㅎㅎㅎ
* 경계심이 많아 입질이 예민하다.
* 물색이 맑으면 배에서부터 조금 멀리 원투 하라.
* 중썰물이 되는 시점에 약간 뻘물이 발생하는 때가 먹이 활동이 활발하니 타이밍을 맞춰라.
* 파도가 좀 있는 날이 입질이 잦다.
* 입질 순간, 빠른 챔질보다 물고 돌아서는 제물걸림의 챔질도 충분하니 기다려라. 등등등.
* 채비 끌림이 심하니 바늘을 자주 교체하고, 생새우 미끼도 자주 갈아줘라.
탐독한 선배님들의 주옥같은 말씀을 염불 외듯 되뇝니다..^^
좌현에서 연거푸 50짜리 민어를 걸어 올립니다.
긴장, 긴장... 그러나 우리가 앉은 우현에서는 무반응.
그런 가운게 해경 형사 기동대가 접근하여 10여 분간을 다시 검문합니다.
출항전에 분명 주민증까지 걷고 인원확인까지 했는데,
연안에서 이렇게까지 이중으로 인검할 이유가 있을까...
<탁상행정, 위에서 지시하니까... 그래 더운데 수고가 많소이다....>
* * *
긴장 모드 고리가 검문으로 풀려 버리니 맥이 빠지고 잠이 쏟아집니다.
선실에 가서 잠을 청합니다.
덥지만 꿀맛 잠입니다..
민어의 시즌은 좀 이른듯 합니다.
표층수온이 조금 내려가는 8~9월이 아마도 핫시즌일 듯하여 다음으로 기약하고
이제 채비며 방법도 좀 익혔으니 조금 더 기다렸다가 다시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다음날 일요일 저녁,
가까이 사는 처남 식구들 불러 댓마리 우럭 회를 가늘게 썰어 물회를 만들고,
지난번 여수에서 잡은 문어를 해동시켜 데치고,
냉동실에 잠자는 백합조개를 깨워 다져서 계란찜을 만들어 놓으니
완전 임금님 밥상입니다.
* * *
천부적인 어획 본능(저는 분명 아님을 밝혀두지만)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역시 나이가 들면 물 밑을 읽거나
대상어들과 교감하는 감각과 타이밍이 느리고 둔해지는 것 같습니다.
홀리는 내 미끼의 유연한 액션과 그런 공간 지각능력은 역시 파릇파릇한 젊음이 최고!~
그렇다고 낚싯대를 놓는다면 그 순간, 밥숟갈도 놓아야지요.
바다는 우리들의 영원한 아뜨리에이며, 내 호흡이고 심장이니까....
아직 새벽은 열리지 않으나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격포항은 파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캄캄한 새벽 4시 정도인 이 시간에도 배들은 불을 환하게 켜고 일부는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낚시객은 젊음의 바다, 파이팅의 바다를 꿈꾸는 루어낚시답게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더군요.
두분의 선장님들과 인연은 참 오래되었습니다. 왼쪽은 단 둘이 함께 떠난 발해님,
복성스럽고 서분서분한 두 분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늘 민어의 공략에 앞서 설렘의 다짐 파이팅을 외칩니다.
위도(蝟島)는 섬의 형상이 마치 고슴도치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위도의 북쪽으로 향하는 곳에 날렵하고 용맹스러운 물수리, 참수리를 닮은 '수리바위'가 힘찬 날갯짓으로
당징이라도 비상할듯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고 있습니다.
이 수리바위에는 바닥지형이 잘 발달되어 A급 갯바위 포인트로 부시리, 감성돔, 농어, 우럭 등이
많이 잡힌다고 이곳을 잘 아는 동승 사무장님이 안내합니다.
생동하는 대 자연의 이 아름답고 경이로움...
잔잔한 물결, 고즈넉함으로 채색된 수채화 같은 바다의 아침을 맞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고 시(詩)가 되는 절경들을 난간에 기대어 관조하는 몽환의 망연(罔然)은
우리 낚시꾼만이 누리는 행복이요, 미학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건너편에 위도가 보입니다.
등대에 내려앉은 불타는 태양을 놓칠 수 없어 낚싯대를 접고 뱃머리에 올라가 핸폰 카메라로 촬영에 몰두합니다.
성화같이 타 오는 듯한 태양는 서서히 여름 한낮을 기세좋게 작렬, 오늘도 바다를 팔팔 끓일 것입니다.
7시 반 정도 되었을까... 발해님의 초릿대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순간 큰 덩치로 끙끙대며 릴링하는 모습, 우리는 숨 죽이며 뜰채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지요.
아뿔싸!~~ 중짜쯤 되는 광어였습니다.
실망반 기쁨반으로 올린 광어를 "광어는 아침에 먹어야 맛있지요." 하며 손수 칼질을 합니다.
산란이 끝난 광어는 허벅지게 새살이 돋아 지방함량이 높아서 그런지 쫄깃하면서도 고소합니다.
한마리 회를 뜨고 전체 분들을 다 불러 한점씩 하라고 했습니다.
옥수 물병(?)을 들고 온 몇분의 기발함으로 인하여 건조한 목축임이 황홀지경입니다.
역시 이런 싱싱한 회에는 하늘이 내린 맑은 로옥주(露玉酒)가 우리 정서에 딱 맞는 최고지요.
연무가 드리워진 왕등도가 보입니다.
1990년대 후반, 제가 기억하기론 일간스포츠나 일반신문에 매주 목요일이면 낚시객 모집을 하던
출조점(한남,서강,삼각지,신용산등)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곳이 바로 이곳 왕등도였지요.
2000년 서해대교가 개통하기 전에 국도를 통해 왕복하며 모집하던 소위 말하는 서해 '우럭벨트'라고
불리우던 안흥의 옹도-외연도-고군산열도-왕등도 중에 가장 보고(寶庫)였던 이 왕등도를 만나니
감회가 새로워지더군요.
제가 몇번 가 본 기억으로는 무박2일 격포까지 편도 6시간 소요에 교통비, 식사비(조식,중식,석식),미끼,뱃삯포함
12만원 정도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 당시 왕등도까지는 먼거리에 포함되는 원해였지요.
세월호 사건 이후 해양경찰청이 해체되고 국민안전처의 한 본부로 격하되었지요.
그 전의 해경보다 능률과 사기는 독자적 체제를 가지고 있던 때와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새벽에 주민등록증을 다 거두고 해경의 인검까지 마치고 출항하였는데, 먼 바다도 아닌 왕등도 안쪽 근해에서
또 형사 기동대선이 접근이 용이토록 낚싯대를 거두라고 하고 10여 분간 인명부를 점검합니다.
부근 모든 낚시선까지 이렇게 이중으로 확인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형적인 관료주의...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드디어 오후 들어 민어가 올라왔습니다.
민어(民魚)는 옛날에 민초들도 쉽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잡히고 흔해서 서민 밥상에 단골이 될 정도로
서민들과 가까운 생선이라고 하여 백성민(民)字를 따서 民魚라고 했는데, 요즘은 이 대중어(大衆魚)의
개체수가 급감하여 이제는 서민들이 섣불리 맛보기 어려운 값비싼 어종의 보체(寶體)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이런 민어를 직접 낚아 허약해진 집사람의 보신용으로 진상을 약속하고 떠난 저는,
낚는 능력의 어복(漁福)이 아니라도 좋으니 저절도 물고 올라오는 횡수(橫數)의 魚福이라도
그토록 원했건만, 서글프게 다른 분이 낚은 이 민어의 모습만 구경하고 '꽝민어'로 집에 왔습니다. ㅎㅎㅎ
날씨가 무덥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늘 즐거움과 기쁨이 그리고 만사형통하는 행운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건강 관리 잘 하시고요.
무료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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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링 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혼쭐이낫습니다 호흡이 불편한 몸으로 12마리 손맛보고
왓습니다 민어조행기 보니또 근질근질 합니다 항상건강 하시고 좋은글 많이올려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