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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송구하오나 재미있고 유익한 선조들의 낚시 정보가 있어 발췌해 올려봅니다.
(다음지식카페 용지니님의 글을 발췌하여 이곳에 옮김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옛부터 많은 문인묵객(文人墨客)들이 자연과 더불어 낚시예찬의 시화(詩畵)를 남긴 기록이 남아 있다.
고구려 소수림왕(小獸林王) 때 것으로 “압록강에 싱그러운 봄이 다시 찾아들매 고기잡이 배가 한가로이 강
위에 떠 있구나”하는 시구는 그 옛날의 멋진 낚시 풍류를 잘 나타낸다. 공자(孔子)도 조이불망(釣而不網)이라
하였는데, 그 뜻은 군자는 낚시를 하되 그물질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낚시꾼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강태공(姜太公)은 고대 중국 주(周)나라 문왕(文王) 때 산둥성[山東省]
사람으로, 본명은 여상(呂尙)이었다.
웨이수이[渭水] 강가를 찾아 난세를 걱정하고 천하의 경륜을 탐구하며 자연 속에 파묻혀 유유자적 호연지기를
길렀는데, 그는 곧은 낚시로 물고기에는 마음이 없었고 오로지 명상에 잠겨 있었다.
강태공은 국가에 등용되어 정치에 크게 공헌하였는데, 그의 행적은 3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다.
그가 낚시를 잘해서가 아니라 곧은 낚시로 세월을 낚았다는 이야기이다.
큰 인물이 될 만한 사람을 위빈지기(渭濱之器)라고 하는데, 이 뜻은 강태공이 웨이수이 강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문왕에게 등용되어 한 나라의 재상이 된 데서 나온 말이다.
물론 강태공이 낚시의 원조는 아니며 이미 과학적인 낚시 방법으로 낚시가 성행하였고,
낚시가 삶의 수단이 아니라 취미 또는 즐거움으로도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에는 조차(釣車)라는 낚시도구가 있었는데, 그 구조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오늘날 릴의 시조가 아닌가
생각된다.
고대 중국에서는 낚시가 발달하고 성행했음에 틀림없다.
유럽에서의 낚시 역사도 듀카리온 홍수와 비슷할 만큼 오래되었다.
베라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용사)가 처음 낚시를 시작하였다는 설도 있는가 하면, 일설에는 아담의 셋째아들인
셋(Seth)이 그의 아들들에게 낚시를 가르쳐 후세에 전한 것이라고도 한다.
또한 《구약성서》의 예언서에도 낚싯바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의 낚시는 생존수단으로서 고기잡이를 목적으로 한 것이 분명하지만 《플루타크 영웅전》에 보면 낚시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와 클레오파트라(Cleopatra) 시대에 존재하였고, 그들이 낚시를 즐긴 것을
알 수 있다.
고기를 낚는 일 자체의 즐거움과 재미에 바탕을 둔 이 사상은 고금을 통해 이어져 내려오는데 300년 전에 쓰여진
‘낚시인의 바이블’라 할 수 있는 아이작 월튼(Izaak Walton)의 저서 《조어대전(釣魚大典):The Compleat Angler》
에도 ‘명상하는 사람의 레크리에이션’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수긍이 간다.
그것은 낚시인의 기분이며 철학이다.
바다낚시의 장비가 좋아지고 항해술의 발달하면서 바다낚시가 가능하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에도 민물낚시뿐만 아니라 바다낚시도 성행하는 추세이다.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과 헬무트 몰트케(Helmuth Moltke) 장군이 낚시인으로 알려졌으며, 정치가로는
비스마르크(Otto Bismark), 스티븐 클리블랜드(Stephen Cleveland),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철학자인 허버트 스펜서(Hebert Spencer), 음악가 루트비히 베토벤(Ludwig Beethoven), 로시니(Gioacchino Rossini) 등이 있다.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도 낚시의 명수였으며,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바다낚시 전문가였다.
오늘날 낚시는 스포츠·레저로서 인기를 얻어 한국의 낚시인구는 약 300만 명이 넘는다.
낚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낚싯바늘이 만들어진 것은 구석기시대의 일이다.
낚싯바늘에서 낚싯줄, 낚싯대에서 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낚시도구가 점차 개량되고 미끼를 좀더 멀리
정확하게 던질 수도 있게 되었다.
미끼도 다양하여 루어 플라이 등을 살아 있는 벌레처럼 보이도록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스포츠로서의 낚시 역사는 한마디로 낚시도구의 발달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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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중에 <공자(孔子)도 조이불망(釣而不網)이라 하였는데,
그 뜻은 군자는 낚시를 하되 그물질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저는 정말 낚시를 잘하지 못합니다.
어느때건 간에 제가 단연 조황면에서 앞선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제가 아주 잘 잡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관심을 주시지만 바로 실망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를 보고 하는 말이 '이론엔 어쩌고 실전은 개뿔!" 또는 '이론만 대가'라는 핀잔을 많이 받습니다.
제가 그 분들께 한번 묻겠습니다.
축구 해설위원이 그렇게 빠삭한 이론대로 축구를 잘 하시던가요? ....하하하하
고기반 사람반을 낚으러 또 나름 풍류를 즐기러 떠나는게 저의 출조스타일입니다.
그래서 맨날 다녀오면 바다가 주는대로 감사하며 지인들과 또는 가족과 함께 고맙게 먹고 있답니다.
선상낚시는 생활낚시라고 생각합니다.
제 주위에 계신 어떤분은 제가 함께 가자고 권유해 보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ㅇㅇ님! 이번에 ㅇㅇ호를 타는데 출조할 생각이 어떤신지요?"
대뜸 하는 말, "많이 잡혀요? 쿨러조황 보장이 되나요? "
" ............ "
이런분을 어쩌다 모시고 가면 모시는 순간부터 좌불안석이고 또 잡은 고기를 그 양반 쿨러에 다 부어줘도
별다른 고마움없이 입 싹딲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연한것 처럼 말입니다.
잡히지 않으면 바로 씩씩대는 이런 양반...
이동수단으로 귀가할때까지 모시고 간 우리들을 무척 불안케 하지요.
우리나라 바다권역이 대체로 자원고갈 현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서해건 남해건 동해건 간에 장비가 발달하고 조술(釣術)이 날로 발전하니 먼바다에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가임(加姙)우럭도 다 걸려들고 또 어초속에 꼭꼭 숨어있던 놈들까지 다 꼬들겨 빼내가 버립니다.
이젠 어디에도 이 녀석들이 숨어 살 곳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먼 가거초에나 동절기 피신하여 산란의 꿈을 안고 커가던 자원까지 달려가 그물로 낚시로 몽땅 빨아버리니
장기적으로 볼때 황폐해 질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을 우린 지금이라도 직시하고 너무 조황에 연연하지 마시고
좋은 분들과 함께 즐기며 쌓인 스트레스를 확!~ 날리러 떠나는 낚시인이 되어 주실것을 당부드립니다.
괜히 딱딱한 말씀드려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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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맘때면 일주일간의 짬을내 섬진강변에 사는 친구에게 만사 제쳐두고 떠납니다.
이 친구는 매실농장과 함께 감과 밤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도시의 숨쉬기하고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지요.
아침에 일어나 보면 저 멀리 뵈이는 지리산의 천왕봉은 속살이 다 보이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우리를 유혹하며
뒤는 파아란 하늘과 짙은 녹색산이 맞닿은 곳엔 뭇새들을 초청하여 초여름의 왈츠를 추고 있고
여인의 곡선을 닮은 섬진강은 앞을 휘돌아 아무말 없이 유장한 흐름으로 유유히 흘러갑니다.
사방에 흐드러지게 핀 들꽃들은 마치 청상(靑孀)의 시름처럼 애틋하고 가냘픈 수줍음으로 맞이합니다.
고향의 이 그립고 아름다운 정취는 살떨림 만큼이나 마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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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보낸뒤에 여수의 돌산으로 친구의 소형차를 빌려 달려갑니다.
강총무님 그리고 채선장님과 그 옆에 군내낚시 사장님까지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곧이어 서울서 오신 라벤다님 내짝궁 광어잡이님, 막무가내님, 담양서 오신 우렁각시님,
울산서 혼자 오신 고운님 버디님, 등등 반갑게 조우하며 막걸리 한잔씩 나눕니다.
올들어 첨으로 떠나는 갈치낚시입니다.
4시간여를 달려 풍을 내리고 입질을 기다리는데 수온이 21도를 가르켜 아직까지 적정 수온이
아님을 알으켜줍니다.
그대신 씨알이 장난이 아닙니다.
기본이 3~5지이니 이런 녀석들 10마리 정도면 이른 시즌에 완전 대박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광어잡이님이 고향의 친구와 장모님께 드리라고 슬쩍 4마리를 넣어줍니다..
참 고마운 친구입니다.
하동에 들러 장모님께 5마리 드리고 읍으로 달려가 친구 식당에서 회를 뜨고 갈치조림으로 8명을 불러 잔치를
했습니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을 해가며 요 친구들은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웁니다... ㅎㅎㅎ
산중에서 매실 따는일을 계속하는데 가지를 쳐다봐야 하기에 목이 많이 아픕니다.
또 눈에 티가 자주 들어가 죽을 지경입니다. 선그래스를 쓰고 작업에 임합니다.
땀으로 온 몸은 범벅입니다.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시원한 때라 아침 5시반경부터 작업에 들어갑니다.
11시경에 좀 쉬었다가 점심먹고 3시경부터 밤 7시반까지 따는 작업을 계속하는데 일에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중노동에 가깝습니다.
선별작업을 끝내고 택배 부치고 나면 밤 10시가 가까워집니다.
물론 저녁은 중간에 먹기도 하지만요.
그렇게 하여 일주일간이 지나갔습니다.
이왕 이곳에 내려왔으니 그냥 올라가기가 좀 그렇습니다.
또 바다가 그리워집니다.
마침, 강총무님이 자리가 한자리 났으니 토요일 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차를 가져가지 않이 이동수단이 용이치 않습니다.
우연히 안부 전화겸 내일 갈치낚시 간다고 담양에 있는 우렁각시님께 했더니만....
기여코 그 먼데서 여기까지 와서 나를 태우고 돌산 군내항으로 간다고 우깁니다.
그렇게 해서 우렁각시님 차로 금요일 늦은 밤에 새로 건설된 이순신 대교를 거쳐 군내항으로 달립니다.
젊고 구수한 충청도 출신 미남 사무장이 밤늦게 생선을 굽고 찌개를 끓여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닷가 이 좋은 분위기에 취해 우리 셋은 순식간에 향주 몇병을 자빠뜨립니다.
우렁각시님이 가져온 막걸리로 숙소에 가서 또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아침에 우렁각시님은 담양의 회사로 출근하고 우리는 2시경에 출항 준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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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시간을 항해끝에 풍을 내려놓습니다.
해는 아직 중하천에 떠 있고 볕 따가움이 온 몸을 축축히 적십니다.
훤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여 던진 채비에 예신이 아주 미약하게 초릿대 끝을 건드립니다.
3지가 조금 넘은 은갈치, 파도처럼 물결치는 웨이브 지느러미는자연에술품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찍 찾아온 갈치의 대면에 오늘 예감이 좋습니다.
파고도 예보대로 0.5~1m로 정확이 맞춥니다.
사방이 망망대해인데 전체가 미치 호수같은 분위기입니다.
밤새 12마리로 마감했는데 그 씨알이 정말 좋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이런 씨알로 20수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탐기엔 일주일 전보다 1'c가 올라 22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수직 상승의 수온으로 이달말 부터는 본격적인 시즌이 열리지 않을까 점쳐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느낀 6~7월의 산란기철 갈치낚시에 대해 몇말씀 참고를 드릴까 합니다.
아직 수온대가 적정하지 않은 저 수온대인데 아마도 6월말쯤이면 백도권의 활황이 시작될 조짐입니다.
벌써부터 몇몇 선사에서는 40~60수의 괜찮은 씨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잡은 갈치는 반수 이상이 알을 품고 있어 산란철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산란철의 입질 행태는 자고로 소위 말하는 피라미 입질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큰 대물이라도 초릿대만 툭툭거리지 흔히 있는 쿡쿡 쳐박는다는 행태는 보이지 않는 걸로봐서
외부로 부터 오는 상황에 대해 예민해지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몸이 무거워지고 움직임이 원활치 못하며 또 소화기관도 함께 기능이 저하되는 임신철의
사람과 같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자문을 구하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꽁치미끼를 썰고난 후 버리는 뼈몸통과 새미끼를 갈아 끼우며 버리는 헌미끼를 바다에 그대로
버리는데 저는 이것에 대해 선장님께 의논하였더니 타당성이 있는 말씀이라고 하여 방송으로
버리지 못하게 하였고 뱃전에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인 즉, 헌미끼나 썰고난 작은 꽁치조각들을 바다에 그대로 버리면 배는 풍을따라 앞으로 전진하고
미끼는 그대로 바다에 가라앉아 집어에 오히려 악영향이 오질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갈치가 사실 배가 크질 않습니다. 꽁치미끼 2~3조각 먹게되면 배가 부르게 되고 그후론 먹잇감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될 뿐만아니라 미끼에 대해 소극적인 입질행태로 살짝 미끼만 따먹고 마는
결과가 되질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갖는 것이죠.
개체수가 많아 경쟁적으로 탈취하듯 매섭게 입질하는 가을경 시즌때는 좀 괜찮겠지만 요즘같이 깐죽대는 미약한
입질을 보일때는 버리지 않는것이 유리하지 않을까요.
가을에 게걸스런 시즌에 잡은 갈치는 미끼썰고 버린 꽁치대가리와 몸통뼈채가 위장안에서 나온 것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이럴때는 버려도 무방하겠지만 요즘은 자제하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어떤분들은 이렇게 하므로 인하여 오히려 집어역할이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이것에 대해 여러분의 견해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집어등 이야기를 자주 하시는데, 요즘같이 수심깊은 곳에서 입질층을 보일때는 집어등은 필수 입니다.
그 이유는 50m권이하는 미광층이 시작되는 싯점이라 배의 불밝기가 그 이하는 전달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은빛 표피의 꽁치 미끼가 이 지점에서는 집어등 불빛만으로도 미끼의 위치를 알려줄 수 있기에 그렇다는
말씀을 드리며 형광고무의 역할도 위치전달의 목적도 있겠으나 갈치나 삼치의 줄 절단 방어용으로의 기능이
있기에 사용하는 것이 무방합니다.
하여간 이번 출조시 조황은 3~5지 7마리에 6지가 넘은 왕갈치 1수를 했으니 기분은 좋고 만족합니다.
출조길에 작은 정보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야조사 올림.. 13.6.19
동서남북~~ 사방팔방 주야조사님!!
못말리는 짱구같은 주야조사님!!!
하동마을에서 매실구경 실컷하시는 줄 알았더니...
어디메인고 하였더니... 너훈아 되어서 한사리호에 앉았더라~~~
방랑의 끝은 어딘고,,,
내일은 백마에서 백마스똬일 이후 2탄 백마맨을 후속곡으로 들고 오신다든데... 알랑가몰라~~♬
낼이 기대되는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