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흥이라...’
그동안 지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안흥에 한 번 다녀오자는 얘길 들었지만, 애써 거절했었는데...
갯바위를 다니면서의 힘든 기억 때문이었다. 주말을 이용한 출조 외엔 다른 대안이 없었던 시절이라
장거리 운전과 비용에 대한 부담, 일요일을 쉬지 못한 여파는 주초로 이어져 감당하기 힘든 피로에
쩔쩔맸었던 기억.
그런 기억들이 내 발길을 막고 있었다.
시간적으로 많은 여유를 가진 요즘이지만 망설임이 시작된다.
“oo호 원년(元年) 멤버들이 모이기로 했어요.”
망설임을 끝나게 하는 한마디가 귀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최종 학력을 졸업할 때까지
이상하게도 난 설립 초기의 학교와 인연이 깊었었다.
8회,3회,3회.2회 졸업생이란 타이틀이 늘 나를 따라 다녔고, 직장도 그러했었고...
성격 형성에도 영향을 끼친 듯 하다.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다고나 할까?
그래서 ‘원념멤버’란 말에는 무척 익숙하다.
어떤 조직이나 집단이든 원년 멤버들이 안고 가야 하는 그 숙명과도 같은 숱한 시행착오.
잘못된 과정을 반복하면서 느껴야 하는 고통과 절망. 그걸 극복하게 만드는 도전정신과 끈끈한 동료애. 작은 성과라도 거두었을 때의 벅찬 희열과 감동...
그런 과정을 공유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늘 즐겁다. 그 역사 속으로의 초대는 감사할 뿐이다.
5월 16일 출조가 결정되었는데 기상 예보가 수상하다. 파도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하루 종일 대한민국 전체가 파란색이다.(어부지리 비/구름 이동 현황 알아보기)
이날 모임을 책임진 총무님으로부터 14일에 날아든 문자 메시지.
“15일에 최종 결정하겠습니다. 일단 낚시 준비 부탁드립니다.”
한국과 일본 기상청 예보를 넘나들며 날씨 체크에 분주해진다. 아무래도 출조가 무산 될 것 같단 생각에 15일 인천권 출조를 예약했다.
터질 듯 터질 듯 애만 태우는 날이 지속되고 있는 찰나의 좋은 물때에 대한 욕심이다.
제법 활발한 입질 속에 어초낚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데 총무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출조하기로 했습니다.”
“네? 예보가 바뀌었나요? 하루 종일 비가 올 거라 던데...”
“바다 상황이 조금 나아져서요.”
이런... 욕심이 화를 불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금의 즐거움은 즐거움대로, 나중의 일은 나중에...
낚시를 끝내고 회항하면서 잡은 고기를 다듬었다. 식구 수에 맞춰 3마리만 포를 떠서 숙성시키고, 나머지 고기는 다른 분에게 양보. 아무리 마음이 급해져도 맛있게 먹어주는 아들들과의 작은 행복을 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
출조 당일 1시. 주야조사님과 만나기로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니 조금 늦으시는 모양이다.
잠시 후 낯익은 차가 라이트를 밝히고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몽산포 이후 거의 두 달 만에 뵙는 주야조사님.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리는데 목을 잡고 내리신다. 혹시?
신호대기 중의 추돌사고를 당하셨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걱정이 앞선다. 뒷 범퍼의 사고 흔적이 뚜렷하다.
“괜찮으시겠어요?”
“어 참! 신호에 걸려 서 있는데 느닷없이...”
차에서 내리는 영업용 기사분의 표정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월요일 사고 처리를 부탁하고 급히 약속 장소로 오셨다는 말씀이었다.
원년멤버들의 약속과 바로 다음날 잡힌 동바동 정출 약속을 알고 있었기에 계속되는 걱정을 안고 2차
약속 장소인 비봉 I.C를 향했다.
기다리고 있던 총무님 일행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흥으로 출발.
출출한 속을 해장국으로 달래기 위해 들른 식당에 오늘의 동행들이 속속 모습을 나타낸다.
어부지리에서 만났던, 대부분 낯익은 닉네임의 멤버들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금새 추억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하루 종일 내릴 비에 대한 걱정은 어디로...?
드디어 안흥 입성.
선상낚시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안흥 땅에 발을 딛는 것조차 처음이다.
평소엔 차를 댈 장소도 찾기 어려운 주차장이라 들었는데, 의외로 한적하다. 나쁜 기상조건이 안겨준 뜻밖의 횡재(?).
채비와 미끼를 챙기고 선착장에서 만난 oo호는 먼 바다 침선배답게 날렵한 모습이다.
항해를 시작하면서 Speed를 올리자 역시 기대대로다. 최고 속력은 아니라는데도 배의 후미에 부서지는 물보라가 온몸을 전율케 한다.
1시간 50분을 달리는 동안 선실에선 궂은 날씨로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한 간단한 술자리가 마련됐다.
주야조사님의 홍어와 문어, 총무님의 훈제 오리 고기로 넉넉한 안주거리가 준비되었다. 이 배를 처음 타시는 초보 네 분도 같이 어우러져 금방 들뜬 분위기가 된다. 언제 들어도 즐거운 초보들의 선상낚시 입문기(入門記)에 선실에선 폭소가 터지고...
도착한 외연열도권의 첫 번째 포인트.
“고기 잡으러 가기 전의 몸풀기 입니다.”
선장님의 멘트가 흐르고 드디어 입수신호. 채비를 내리는 손길이 살짝 떨릴 정도로 심장이 두근댄다.
액정에 찍힌 수심은 46m. 별다른 설명이 없는 걸로 봐선 여밭 이리라. 뒷자리에서 들리는 전동릴의
모터소리에 온 신경을 로드를 움켜쥔 왼손으로 모아 본다. 뒤쪽부터 시작된 초릿대의 흔들림이 드디어 내 자리까지 이어진다. 쿡 쿡 쿡~ 쳐 박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아싸~~~
첫 입질에 올라온 녀석은 4짜가 조금 넘는 준수한 씨알. 당찬 손맛의 흥분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입질이다. 포인트 여건을 감안해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침선이나 어초라면 욕심을 덜 냈겠지만, 이젠 꽤 익숙해진 여밭 낚시 아니던가? 쌍걸이를 노리고 로드를 살짝 들어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찰나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참아냈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대 끝의 감촉.
기대했던 쌍걸이. 한 마리는 4짜가 넘는다. 5초의 인내가 가져다 준 짜릿한 선물.
그치지도 않고 참으로 끈질기게 내리는 빗줄기도 잊고 낚시에 몰입한 시간이 어느덧 3시간 정도 흘렀을까? 물칸엔 제법 고기가 쌓여 가고...
“자 지금부터 고기 잡으러 갑니다.”
선장님의 멘트가 이채롭다. 지금까진 그저 ‘몸풀기’였단 얘기. 본 게임에 대한 기대.
그 황홀한 순간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벌써 흥분된 마음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몇 군데 들린 침선 포인트는 빈 집. 다시 이동하여 탐색. 입질이 뜸한 시간을 이용해 점심을 먹는다. 우중식사, 선상오찬. 얼큰한 우럭 매운탕이 추위와 허기를 동시에 날려 보낸다.
식사를 일찍 끝낸 조사 한 분이 “내가 오늘 사고 쳐 볼게." 하시더니 채비를 내린다.
잠시 후 “왔어” 소리에 긴가민가 모든 이의 시선이 쏠리고 뱃전으로 올라오는 광어 한 마리.
식사를 하던 남은 분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고, 수저를 놀리는 손놀림이 빨라진다.
후반전이 시작됐다. 비는 도무지 그칠 생각이 없는지 하루 종일 쏟아지고 바람까지 강해진다.
초보 조사들은 이 악천후에 도저히 더 못 버티겠는지 모두 선실로 대피했고, 원년멤버들은 모두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억을 지키는 걸까?
입수신호에 채비를 내리고 바닥을 찍은 후 입질을 기다리는데, 배의 운용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흥분된 마음에 그저 배를 쫓아가기에 급급해 느낄 여유가 없었을 뿐,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전후좌우로 뻗어대는 원줄의 각도가 불안하기 짝이 없다. 포인트로 흘러 들어가는 운용법에 익숙해 있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조류와 바람에 맞서 한사코 포인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대응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선장님의 운용술을 믿고 배의 흐름을 그대로 쫓아 들어가는 게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판단이 끝나면 행동은 신속하게.... 후드득!!!!! 다시 시작된 입질이다.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 연속되는 3걸이. ㅎㅎㅎ
악천후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회항이 결정됐다. 아쉬움은 없었다.
안흥항에 도착해서 가진 뒤풀이 시간. 적당히 갹출한 고기로 회를 뜨고 뜨거운 매운탕에 소주 한 잔. 하루의 피로를 잠시 잊으면서 추억들을 다시 풀어 놓는다.
우리나라 선상낚시 동호회의 태동(胎動)부터 현재까지, 당사자들로부터 직접 듣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주야조사님은 그 특유의 해학으로 분위기를 이끄시고, 새벽 교통사고의 후유증은 아예 잊으신 모습이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 낚시를 끝낼 때의 아쉬움은 없었지만 하루를 함께 즐긴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늘 아쉬움을 낳는다.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이 없었다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으리라.
주야조사님을 신진도에 모셔드리고 안흥 땅을 떠나는 차안에서 그만 수마(睡魔)에 사로잡혀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이틀 연속 출조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든 탓이었겠지만, 핸들을 잡고 있는 총무님에게 죄송스런 마음도 잠의 유혹을 벗어나게 하진 못했으니... 쩝쩝
생애 첫 안흥 출조에 쿨러 가득 인정(人情)을 채우고 돌아오는 기쁨을 안았다.
좋은 만남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면서....
주야조사님..역시..그 구수함이란 .^.^;..사람을 금방 곁으로 끌어들이고
기꺼이 그 따스함과 구수함을 나누어 주시는 자상함이 넘쳐 흐르시는
모습에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면서도 참고 견딜 수가 있었습니다.
그에 못지 않은 감성킬러님....처음이란게 어울리지 않는 금방 하나가
되어버리는 그 무슨 단어로도 정의할 수 없는..그 무엇..이 가득하신분..
언제뵈도 늘 그자리에..늘 그모습으로..씩씩하게(?) 계시는 블루마린님...
몇년만의 만남이지만 마치 어제 만난것 같은 느낌을 주신 둘리님, 블루님
원시인님..포세이돈님까지..그외에 많은 조사님들..
감성킬러님 말씀대로 하루종일 내리는 빗속에서도 맘은 너무 따듯했습니다.
(실은 추워서 선실 신세를 좀 지기는 했지만요..ㅎㅎ..^.^;)
다시금 함께 해주셨던 선,후배 조사님들께 감사를 드리고요..
꼭 한번 좋은 날씨 잡아서 다시 뭉칠 기회를 주세요..
주야조사님 사고 후유증 없게 건강 관리 잘하시길 시원하고요..
이것저것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신 둘리님..감사드립니다.
블루마린님..지는 언제나 즐낚매니아(?)입니다 ..언제든 불러주세요..ㅋㅋ
모든 참가조사님들..다들 건강하시고..아..이돈아우님은 살좀빼셔야....ㅎㅎ..
따듯한 마음을 한가득안고 지내도록 해주신 점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