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계십니까? 톡 톡 토도독!
이집 저집 한식경이나 부지런히 두드렸건만 모두 게을러 아직 잠이 깨지 않았는지 아무 대답도 없다. 어쩌다- ‘개 조심’-씨네 문을 잘못 두드렸다가는 봉돌과 채비는 물론, 원줄까지 진상하고서야 간신히 풀려난다.
배는 저 멀리서 손짓하는 등대의 꼬임에 빠져 하염없이 흘러가고 단오를 이틀 지난 음력 초이레 물살은 만만찮은 기세로 봉돌을 희롱한다. 오전 7시, 출항한지 1시간 30분 쯤 지나 도착한 무인등대는 외로운 밤을 홀로 보내느라 심술이 났는지 곱지 않은 수인사를 계속 보낸다.
오늘 만조시간은 08시18분 간조는 14시 50분. 이제 잠시 후면 물돌이 시간이다. 오늘의 고저간만차이가 대략 5미터 미만이니 그리 나쁜 물때는 아닌데 바다의 속사정은 그리 한가롭지 않다. 계기판의 수심이 20미터를 나타내는 물결 잔잔한 따듯한 봄 바다, 모든 조건이 그런대로 낚시하기에 그다지 나쁘지는 않은데도 배가 설 때마다 흙탕물 아니, 노오란 부유물이 소용돌이친다.
‘나왔다! 우리 할머니-마누라가 제일 잘하는구나.’ 일흔이 넘으셨다는 늙은 선장님이 모두들 첫 고기를 기다리며 바다를 응시하는 손님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듯 크게 소리 지르신다.
‘뭣들 하는겨? 바닥에서 두어 발 뛰워유우~~~’
고물에 앉으신 할머니의 자새 끝에 30cm는 넘어 보이는 우럭 한 마리가 몸부림친다. 최신장비 전동릴로 무장한 우리가 잠시 무색해진다. 주위에 주낙배가 많은 것을 보아 고기들이 바닥에 붙어있을 것으로 지레 짐작하는 우리에게 노련한 선장이 던져주는 정보다. 바닥을 끌지 말고 띄워서 잡으라는....
이 배는 노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낚싯배다. 이 분은 가의도가 고향이시라는데 여느 낚싯배처럼 그 흔한 홈피도 없이 오직 전화번호 하나만 가지고 장사하는 아날로그식이다. 심지어 전동릴 잭도 좌우로 4개 정도만 달렸는데 그나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또 선장님과 부인의 연세를 생각하면 집에서 손자나 보시며 쉬실 나이도 지났는데 두 분은 예상외로 날렵한 몸짓으로 위험한 뱃전을 넘나들며 손님 시중들랴, 낚시로 횟감과 매운탕꺼리 마련하시느라 매우 분주하신 모습이 안쓰럽다. 점심시간에는 손수 갓 지으신 더운밥에 누룽지, 그리고 텃밭에서 따오신 채소로 담근 김치 등등 그야말로 어릴 적 고향 입맛을 그대로 살려 주신다. 너무 고마워서 우리 일행이 두 분께 초콜릿을 드렸더니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신다.
토도독 톡! 바닥이 찍히면 두어 바퀴 감고, 툭 툭 치면서 초릿대까지 휘청거리면 혹시 반가운 입질은 아닐까 졸이며 기다리기를 몇 차례. 바닥 찍고 돌무더기 지났으니 이제 자갈밭에 들어서겠지 짐작하는 순간 움찔, 내 몸에 전율과 같은 조건반사가 일어난다. 으드득, 툭툭, 우럭 특유의 입질!
순간 조금 더 기다려 쌍걸이 기다릴까말까 갈등도 잠시 스치지만 오늘 처음 방문한 우럭과 빨리 상면하고픈 마음은 줄을 이미 한참 감아올리고 있었다. 드디어 푸른 물을 가르고 잘 생긴 우럭이 얼굴을 내밀자 좌우에서 축하 인사와 부러운 눈빛이 함께 쏟아진다.
30cm중반. 날렵한 몸매가 꽤나 잘 생겼다.
다른 생선은 어떨는지 몰라도, 또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럭은 농익은 여인네 몸매를 연상케 하는 40cm정도가 횟감으로 제격이다. 큰 고기는 손맛과 눈 맛으로는 좋아도 늙은 고기인 탓인지 육질이 떨어져 입맛에는 영 별로다. 반대로 너무 작아, 닭으로 치면 아직 햇병아리 티도 못 벗은 20cm미만 우럭은 볼품도 없지만 맛도 없다. 원조교제하다 들킨 아저씨의 심정으로 바다로 곱게 되돌려 보내야 마음 편해진다. ‘얼른 가서 네 언니나 부모님 모시고 와!’ ‘풍덩!’
이 배는 처음 타는 배다. 내가 워낙 낯을 가리며 숫기가 없는 편이라 거의 같은 배를 고집하는데 오늘은 단골 가게 주인이 단체 손님의 예정인원이 몇 명 더 늘어나자 돈 벌고 싶은 욕심에 그동안 낯익어 만만한 우리를 다른 배로 내팽개쳐 버렸다. 믿고 찾은 가게에서 그런 대접을 받는 순간 구차스럽다 싶어 그냥 되돌아서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혼자서는 돌아갈 차편도 없는 새벽이었고 또, 내 행동으로 동행한 분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도 없었기에 속으로만 삭히고 나왔는데 결과를 놓고 보니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그래도 따질 것은 따져야 직성이 풀리겠기에 돌아가서 이 괘씸한 주인 녀석을 어떻게 야단치나 궁리하는 중인데 싸움 말리려는 듯, 꽤나 큼직한 녀석이 또 낚시를 물고 늘어진다.
그런데 배 뒤쪽에 앉은 일행, 김사장의 표정이 갑자기 심상치 않게 변한다.
불성실(?) 낚시의 대명사 같은 김사장은 여기 어부지리 6자방 회원이시기도 한 실력파 낚시꾼이다. 고기 욕심이 별로 없어 큰 것 두어 마리 건지면 횟감으로 던져주고는 이슬이 한잔 벗삼아 선실에 누워 늘어지게 한 잠 자고 다시 나와서는 또 금방 잡아내는 실력으로 우리의 부러움을 사는 도사 급인데 오늘도 한 마리 잡은 후 한 참 쉬고 나오시더니 금방 사고를 치시는 것. 그것도 연타석으로......
정말 못 말린다니까...배가 포인트에 제대로 들어 선 모양이다.
모두들 긴장한 눈으로 바라보자 ‘손바닥한 놈이에요. 별거 아닌데요. 뭘........’하며 눙치더니 잠시 후 30cm는 실히 넘어 보이는 우럭을 쌍걸이로 끌어 올린다.
‘이번에는 좀 기다렸지요. 하하하’
우럭 크기가 손바닥만 한 것이 아니라 체고가 손바닥만 하니까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쌍걸이를 보자 이제까지 희희낙락하던 마음이 갑자기 야릇하게 바뀐다. 열심히 낚시하는 나를 외면하고 적당히 잡는 김사장 낚시를 물다니........우럭도 회장은 알아보나? 내가 뭘 잘못했기에 저 녀석들이 내 낚시는 안 물고 저리로 갔지?......
무슨 수를 써야지.......
선장님, 저~~ 시원한 맥주 하나 드실래요? ㅎ~~.
오랜만에 만나뵙는 친척 어른처럼 반가운 글입니다.
맑은샘님이 남기신 글들이 지금 제 선상낚시의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셔서 즐낚하시길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