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림잡아 6개월만인가 싶은데,
그 때도 오랜만이라 했었으니 잠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는 것이 꽤 길어졌던 모양입니다.
제가 아는 몇 안 되는 선사들 중에서 빈자리가 있는 배에 3일전 예약을 잡았습니다,
전일에야 다시 보니 아는 분들이 예약 목록에 있습니다.
비봉에서 만나 함께 출조 길에 나섭니다.
불과 네 명이라 한 차로 가도 좋으련만,
너무 길어 승용차에 싫지 못하는 어줍잖은 자작 낚시대를 가져가는 제 탓에 두 차로 움직입니다.
몇 일 전 예보로는 물때를 제외하고는 만족스러운 상황이었었는데, 바닷가에 서니 바람이 날카롭습니다.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뭐, 한두번 겪는 일이 아니니, 그리 걱정이 되지는 않지만,
오늘은 좀 잡아갈 욕심으로 출조를 한지라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합니다.
안흥으로 오면 자주 들르던 식당으로 가 식사를 마치니
몇 일 제대로 자지 못했던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듭니다.
인천에서처럼 배라도 빨리 대주면 꼴랑거려도 잘 수는 있겠다 싶은데, 제 욕심이겠지요.
배에 오르자 마자 뱃전에 짐을 내려놓고는 바로 선실로 향합니다.
두시간 반을 넘게 달렸나 봅니다.
불규칙적인 엔진 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선수를 때리는 파도소리가 가볍지 않습니다.
선수로 나서니 오늘 하루가 만만치 않겠다 싶습니다.
이미 쿨러는 바닷물로 2/3가 차서 묵직합니다.
잠시 고민을 합니다 - 늘 쓰던 낚시대를 쓸지, 새로 만든 놈을 쓸지.
완성 후 집에서 100호 추로 휨새 테스트를 해본 것으로는
기존 쓰던 것보다 조금 더 유연한 것 같아 이런 파도에도 쓸 수 있을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일단 써보고 아니다 싶으면 기존 낚시대로 바꿀 생각으로 셋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어서, 앉아서 주물럭거리는 대도 뒤로 자빠질 듯 위태합니다.
다른 분들이 서너타임 입수한 후에야 채비 준비가 끝났습니다.
--- 시험 가동, 하지만 진짜 시험은 하지 못하다 ---
흠, 만족스럽습니다.
릴시트를 구하지 못해 급한 김에 베이트릴용을 올리고,
손잡이 부분을 조금 보강했는데, 그런대로 파지감이 나쁘지 않습니다.
대의 휨새는 선수에 자리잡은 내 위치와 파도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휨새를 보여 줍니다.
더구나 마음에 드는 것은 바닥의 느낌을 세세히 전달해주는 것이고, 그럼에도 가볍다는 것입니다.
이전 낚시대에서 보이던 대의 비틀림도 보이지 않아 제대로 만들어지긴 한 모양입니다.
바닥 걸림에서는 채비가 터지는지 대가 부러지는지 버티기를 해 봅니다.
90도의 휨에서도 잘 버텨주는가 싶었는데, 줄이 배 밑바닥으로 기울어집니다.
할 수 없이 줄을 감아 잡고 끊어 냅니다.
일단 큰 모타리 하나를 남기고는 시험 성공입니다.
그 큰 모타리는 대구를 걸어 올려보고, 예민해진 우럭의 입질을 거부감 없이 받아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합니다.
옆자리 풍산의 도움을 받아 겨우 겨우 입질을 받아냈는데,
큰 파도의 골 속으로 쳐 박히는 선수에 미쳐 대응하지 못하여
파도를 덮어쓰는 것과 함께 채비도 바닥에 걸어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끝끝내, 한 마리도 잡지를 못합니다.
지금껏 최악의 성적은 한 마리입니다.
그것도 안흥, 이 배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이 배 외에는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는 멀미로 거의 죽음 상태로 선실에 누워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종일 최선을 다했음에도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도무지 상황이 이해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제 자리가 작은 배의 가장 많이 꼴랑거리는 선수에 혼자 우뚝 앉았다 할지라도,
조그만 침선만 골라간 것도 아니고, 꽤 큰 포인트를 지나는 곳이었음에도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분명히 내 탓인 것은 알겠는데, 오전까지도 그 원인을 몰랐습니다.
아니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 믿음이 깨어지다. 앞으로 어떡해야 하지? ---
근래 일년 반을 오징어 입감 외에 써본 것은 대구를 잡으러 갈 때 오징어 내장을 쓰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외에는 오로지 생물 오징어를 전날 갈무리해서 가지고 다녔고,
다른 입감과 비교해서 입질을 받아내는 빈도에 차이가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서 이번에도 그대로 준비했는데…
옆자리의 풍산은 역시 경력이 무섭습니다.
이런 날씨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조과도 출중합니다.
주변의 모든 배들이 꽝을 면치 못하는 데, 혼자서 열심히 잡아내고 있습니다.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니 간혹 몇 사람이 드믄드믄 올려내고 있고 씨알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원인도 알 것 같습니다.
역시 준비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얻어가나 봅니다.
근래 저에게는 어줍잖은 건방이 들었었나 봅니다.
까짓 거 하면서 달포 전에 썼다 바닷물에 절은 놈을 그냥 냉동해뒀던 것을
그냥 가져오는 만용이 그 하나입니다.
참, 할 말 없습니다. 변명할 거리도 없습니다.
나 자신의 노하우가 아니니 떠벌릴 일도 아니지만,
지금껏 “뭘 그리 이것저것 준비하나, 그냥 단출하게 다녀도 되는데”하고 뇌까렸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지는 순간입니다.
그러고 보니 여름날 참돔루어에서 한 사람이 썼던 방법이 떠오릅니다.
“뭘 그리…”하고 생각했었다 “역시…”하고 감탄을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이미 상황은 종료되어갑니다.
풍산이 건네주는 하나를 써보고는 바로 들어오는 입질에 감탄을 하지만, 파도가 심술을 부립니다.
몇 개 남지 않은 것을 그래도 친구라고 나눠 준 것마저 순식간에 쓸어가 버립니다.
--- 새로운 기록, 꽝조사 ---
저는 아무리 조과가 형편없어도 남들만큼 잡으면 꽝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영동철, 파도가 있다면 서너마리 잡아도 꽝은 아닙니다.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같이, 다른 분들은 그래도 잡는데, 혼자 못 잡는다면, 그건 진짜 꽝입니다.
그래서 하찮은 조력에 “꽝”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습니다.
기분 드럽지 않냐구요? 전혀 아니었습니다.
제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차분했습니다.
아마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결과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남은 것은 있습니다.
낚시대에 아직 페인트도 칠하지 않았는데, 이제 사포로 잘 다듬고 바니쉬라도 고르게 칠해줘야겠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이 놈으로 바다를 즐기게 될 것 같습니다.
맨날 꽝치는 저 뿐만 아니라 무상천님도 그러하시다는 뜻 같아서요. ㅠㅠ ^^::
사실 요즘 시기는 기상 조건만 허락하면 의외의 좋은 조황이 많을 땐데, 연일 계속되는 한파가 바다도 꽁꽁 얼어붙게 했나 봅니다.
작년 이 맘때 안흥에서 출조 했을 때는 우럭의 높은 유영층에 새삼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유영층을 파악한 이 후로는 그렇게 낚시가 편할 수가 없었는데, 가거초에서도 바닥권에서만 입질이 들어오는 통에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아무래도 수온이.....
자작 로드의 성공적인 필드 테스트도 축하드려야겠네요.
세상에 하나 뿐인 로드의 가치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낚시를 다니시는 즐거움이 하나 느셨네요.
오징어 미끼가 신선해야 하나요?
시각적인 나풀거림이 오징어채를 쓰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신선도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한번 실험해 봐야겠습니다.
무상천님 특유의 차분한 조행기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