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디로 가는지도 잊어버리고 있다가,
몇 일전 확인 전화를 통해서야 어디로 가는지 기억해 내었었다.
그러고도 뭘 잡으러 가는지 묻지도 않았었다.
워낙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고수라 일정을 잡으면 달리 따져볼 필요가 없는 분이기도 해서이며,
나머지는 바다와 날씨에 달린 문제일 터이기 때문이다.
준비는 그저 평상시대로 우럭채비와 바늘을 준비했는데,
출조버스를 기다리는 자리에서야 물어보니 열기 치러 간단다.
열기? 우리 집에서는 그리 반기는 어종은 아니다.
예전에 잡았던 것들은 모두 포를 떠서 말린 후 가까운 가족에게 모두 분양을 하곤 했었기에,
아내에게는 일거리만 잔뜩 만들어주는 물건일 뿐이었다.
아직은 물이 차가워서 그나마 열기 외에는 마땅치도 않은 시기이고,
이제 열기 시즌도 끝나갈 무렵이니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열기채비가 몇 개 있었나?
수년 전부터 가지고 쓰다 남은 몇 종류의 채비가 있으니 그걸로 버텨보고
모자라면 얻어 쓰기로 했다.
출조 버스에서의 낯익은 분들과의 인사와 씨끌벅적한 만찬을 끝내고 잠이 들었나 했는데,
눈을 뜨니 여수의 낯익은 항구다.
저만치에서 불을 켜고 정박해 있는 배가 보인다.
거문도로 실어다 줄 배다.
서둘러 짐을 싣고 출항하는 배의 엔진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
3시간여를 달렸나 보다.
항구의 따뜻한 가로등 불빛이 정겨운 거문도다.
거문도는 이번으로 두번째다.
그러고 보니 이전 방문 때도 열기를 잡으러 왔었댔는데,
조황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당시 날씨에 비해서는 선전했었던 기억이 난다.
다음 번에는 낚시대가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여명 이전의 이 어스름 속 부둣가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다.
여기도 한 컷, 저기도 한 컷, 담아야 할 장면을 가슴에 찍어본다.
입고 온 셔츠 하나와 낚시복 만으로는 추위에 떨게 될까 걱정하게 하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남쪽은 따뜻하겠지 했는데 아직은 아닌가 보다.
식사를 마치고 추첨으로 배정받은 배 좌현 뒤에서 세번째 자리로 간다.
딱 맘에 드는 자리다.
조황은 비교적 선수가 좋다고 하지만,
주로 여밭을 간다니 자리 편차를 그리 우려하지 않아도 좋을 듯한데다 뒤쪽이 움직이기도 편하니 말이다.
채비를 준비하며 잠시 고민에 빠진다.
몇 단으로 하지? 하지만, 답은 간단히 내려졌다. 6단이면 충분하다.
더 길어봐야 채비 간수도 힘들 것이고, 잘은 열기 많이 잡아봐야 손질만 힘들겠다 싶어서다.
짧은 이동 후에 엔진음이 잦아든다.
멀리 형제인 듯 늘어선 여러 개의 돌섬들 사이로 붉은 해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보기 힘든 장관이다.
예전 일출을 담으려 애쓰던 때에는 그리 보여주지 않던 얼굴을
오메가의 풍채까지 만들며 바다 위로 힘차게 솟구치고 있다.
짧은 시간의 장관을 멋지게 연출하고 색을 벗기 시작한 둥근 해는 수면 위로 둥실 떠올랐고,
채비는 심연으로 내려가고 있다.
닿는 느낌과 함께 선장의 조언대로 2미터를 감는다.
장관이었던 일출에 대한 미련으로 쳐다보는 사이 후드득 물아 치는 느낌. 우럭이다.
근데, 너무 흔들어 대어서 열기채비로는 터져버리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우럭들이 얼마나 떠 있길래 2미터를 들어올린 채비에도 물었나 궁금하기도 해서 바로 올렸다.
이런, 올리고 보니 씨알 좋은 열기 한 마리가 채비 중간에 매달려 있다.
열기가 커지면 우럭같이 잡아 흔든단다.
남해바다 같지않게 너울도 없고, 맑은 하늘에 해는 깨끗하게 올라있는데다, 바람도 없다.
물이 흐르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선장의 말이 무색한 입질이다.
아직은 드물지만, 은근히 소나기 입질을 기대한다.
그 한번의 입질 이후 얼마간의 뜸한 시간이 길어지더니
선수에서부터 대가 까딱거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열기의 아침식사 시간이 되었나 보다.
그렇게 선수에만 입질이 있나 했더니 다음 투입에서는 내가 있는 뒤에서도 입질이 시작되었다.
드물게 다니던 열기 낚시, 그것도 근 일년만인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입질 행태가 이어진다.
“투두둑”, 한 마리, “투두둑”, 두 마리.
그런데, 열기 경험이 적은 탓에 은근히 걱정되는 것이 있다.
채비가 바닥에 닿고 있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채비를 들었다가 놓아볼 수도 없는 것이
털어대는 과정에서 찢어진 바늘 주위 구멍이 채비를 내리면 그냥 빠져버릴 수도 있어 그러지도 못한다.
그저 휘어진 대가 펴지지는 않는지 지켜볼 뿐.
그러다 다음 채비 투입에서는 결국 봉돌을 뜯겼다.
머리를 굴려본다.
2미터를 띄웠더니 아래 3개의 바늘에만 달렸다.
그럼 바닥부터 올려야지.
다음 투입에서는 바닥에서 한 바퀴 감고 기다린다.
“투두둑” 다시 한 바퀴 천천히 감는다.
그리고 다시 한 바퀴.
이전 걸림에서 뜯긴 바늘 하나를 제외한 5개의 바늘에 열기가 모두 달렸다.
그 중에는 신발짝만한 것이 둘 매달려 있다.
생각보다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럭으로 전환할까 하던 생각을 접고 좀 더 잡기로 한다.
그렇다고 바늘 10개짜리 채비로 바꿀 생각은 없다.
이런 페이스가 유지된다면 먹을 만큼은 충분히 잡을 듯싶다.
이동. 짧은 거리다.
여기는 포인트가 널렸는가 보다.
채비를 내리고 바닥을 확인하는 순간 채비가 요동을 친다.
입질이 와도 움직이지 말라는 조언을 지킬 엄두조차 내지를 못하는 것이,
대가 연신 절을 하고 있어서 채비를 바닥에 수장시킬 것만 같아,
결국 채비를 바로 올리고야 만다.
이번에는 분명 우럭 오짜 이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대를 춤추게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리고 보니 모두 열기다.
그 중 반 이상이 30cm에 가까운 것들이다.
그런 열기 6마리가 동시에 물었다는 얘기다.
이 것 참,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이윽고 여기 저기서 아우성이다.
이제 9시인데, 쿨러 반을 넘겼다.
선수에서 얼음을 가져와 채우며 작은 놈은 골라내는 여유를 부려본다.
사무장이 와서 말린다.
잡힐 때 잡아야 되니 고기 정리는 나중에 하란다.
그럴 수는 없다. 이왕이면 맛있게 먹어야 할 것 아닌가?
한번 더 투입을 못하더라도 잡는 대로 피까지 빼 둔 것이니,
햇빛 강해지기 전에 냉장을 해 두어야 맛을 유지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다 옆의 고수 쿨러를 보니 굵직한 쏨뱅이 여러 마리가 누워있다.
이럴 수가, 나는 아직 한 마리도 구경을 못했는데, 역시 고수는 다르다.
작전 변경이다.
지금 잡은 것만으로도 우럭이 아닌 다음에야 사실 충분한 양이다.
채비를 변경한다.
바늘 호수를 올리고 입감은 미꾸라지 자른 것에서 오징어채로 변경하고 길이도 조금 길게 매달았다.
지금부터는 바닥이다. 마릿수 보다는 횟감을 노릴 요량이다.
드디어 사짜 우럭 도 구경하고, 곁다리로 작은 돔도 한 마리 걸었다.
10시가 넘어가면서 30리터 쿨러가 차버렸다.
이제부터 올리는 놈들은 넣을 자리가 없다.
그런데, 방법을 바꾼 것이 주효했는지 굵은 씨알의 열기들이 붙기 시작한다.
이놈들은 덩치가 있어서 그런지, 자기가 꼭 우럭인양 바닥에서 놀고 입질도 우악스럽다.
작은 놈 열 마리를 끄집어내고야 몇 마리 넣을 공간이 생긴다.
덜어낸 것들을 넣을 만한 용기를 찾는데 없다.
그러다 미꾸라지를 담아왔던 스티로폼 박스가 비교적 커서 얻어다 채우기 시작한다.
금방 차버린다.
다행히 얼마 잡지 못한 분이 있어 넣어드리고 나니 박스가 비었다.
다시 채워야지.
장소를 이동한 곳은 무너진 어초라고 한다.
맞다 높이는 2미터쯤 될 듯하다.
조금때이니 구멍치기 찬스다.
걸리면 바늘만이 아니라 채비가 뜯길 터이니 신중하게 접근한다.
그래도 어초라고 초입에서는 물이 도는 느낌이 작게나마 느껴진다.
무너진 곳을 찾고 넣어본다.
그리고 올리는 순간 우두둑. 옳거니 바로 이 맛이다.
올려보니 그렇게 기다리던 쏨뱅이다. 그것도 씨알이 30cm짜리다.
반갑기 이를 데 없다.
쿨러에서 열기 두어 마리를 빼내고 집어넣기를 몇 차례 반복하니 쿨러 위에는 쏨뱅이만 보인다.
횡재했다.
그러다 보니 쿨러에도 꾹꾹 눌러 담은 상태에서 스티로폼 통도 가득 차버려 고기를 넣을 곳이 없다.
그렇다고 몇 조각 덮어놓은 얼음을 빼낼 수도 없다.
또 다시 분양. 한참 자리가 생긴다.
옆자리 고수는 50리터 쿨러를 채워가고 있다.
선수의 또 다른 고수는 이미 쿨러를 채웠는지 잡는 족족 주위 분들 쿨러로 들어가고 있다. ㅎㅎ,
나도 얼마 전에 그렇게 신세를 졌었지.
이 배 점심은 독특하다. 컵라면 하나와 김치 그리고 밥을 준다.
하긴 이것도 나쁘지 않다.
아침이 입에 맞지 않아 조금 먹어서 배고팠던 참에 밥까지 말아서 정신 없이 먹었다.
오후 들어서는 입질이 뜸하다.
채비를 변경하여 바늘을 네 개만 달았다.
주로 어초 바닥을 노려볼 심산이다.
하지만, 물이 너무 흐르지 않아서인지 배가 어초위로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거기다 계속 배를 밀고 당기는 탓인지 채비 엉킴이 심해진다.
그래도 간간히 씨알 좋은 놈들이 올라와주니 멈추지 못한다.
다시 스티로폼 박스가 차버렸다.
이제 더 이상 잡아도 넣을 곳도 없다. 그리고, 그럭저럭 시간도 되어간다.
스티로폼 박스에 얼음을 조금 더 덮고,
항상 예비로 가지고 다녔던 큰 비닐봉지를 꺼내서 박스를 싸서 묶고 그늘로 옮겼다.
아직은 바람이 차니 부두까지는 얼음이 녹지는 않을 것이다.
장비를 정리한다.
예상치 못했던 열기낚시에서 뜻밖의 대박까지 하고 나니, 나를 불러준 분이 고맙기 그지 없다.
하지만, 고기로도 보답을 못할 것이 그분 역시 쿨러를 가득 채워놓은 상태이다.
이 정도면 대박이라 할만 하겠다.
선장도 사무장도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박스를 옮기고 선실로 들어가니 다들 자리를 잡고 않았다.
이야기 중에 몇 분은 조과가 적다 한다.
스티로폼 박스에 든 것을 가져가시라 말씀 드린다.
피도 다 빼 두었으니 맛이 괜찮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남은 몇 마리는 빈자리가 있어 보이는 큰 쿨러에 넣어드린다. ㅎㅎ
결국 쿨러 하나만 남았다.
여수로 돌아오는 뱃길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내내 잠에 빠졌다.
다른 분들과 맥주 한잔 어울리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는 하지만,
내일에 힘들어질 것을 알아서 그러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미안하기는 하다.
집에 오니 12시가 넘었다.
고기를 모두 정리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큼직한 것 스무 마리만 꺼내어 회를 뜰 것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얼음으로 잘 갈무리 하여 쿨러에 다시 넣어둔다.
포를 뜬 고기를 횟감 갈무리 하는 종이로 싸면서 한 점 먹던 아들의 “맛이 기가 막힌다”는 말이
세탁실 바닥에서 아픈 허리를 펴던 나에게 위안으로 다가온다.
표현에서 서술되어가는 과정이 마치 옆에서 낚시를 함께하고 있는 느낌 입니다.
대박 축하 드리며 앞으로 좋은글 더 많이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