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는 서해의 작은 섬으로 가는 것이 우리가족에게는 관행처럼 된지가 꽤 오래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조용하다는 것이 첫째이며,
돈 쓸 거리가 적어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 둘째이며,
조개를 줍건 천렵을 하건 그늘에 쉬건 가족들과 함께 해야 해서 가족간의 대화 기회가 많다는 것이 셋째요
이유의 으뜸이었다.
사실 경치야 남해의 섬이 제일이요, 바닷물로야 동해가 최고일 터이다.
그러하니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많으니 장사거리도 많아 더 북적댄다.
그래서 피한 것이다.
서해의 작은 섬에서는 햇빛 강한 한낮에는 갯가 숲 그늘에 몸을 눕히면 그만이고,
선선한 시간에 산책을 하고, 해지고 나면 천렵을 할 일이다.
그러한 일들이 섬과 함께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다.
깊이 어둑해지면 천렵한 것들을 목탄에 구워내고 술 한잔 곁들여 대화가 오고 가면 더 바랄게 없다.
하지만, 올 여름에는 휴가를 못 갈 모양이다.
이런 저런 사정들이 가족들을 흩어 놓아서, 추억 주머니를 뒤져 되새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 섬으로 다니는 – 비록 그 섬에 내리지는 못할지라도 - 선상낚시를 시작한지도 몇 년인데,
서해 섬들의 아름다움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못 보던 섬들도 아니었을 텐데 새삼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아마도 비 오는 바다가 주는 정서와
보여줄 섬들의 시나리오를 잘 짜서 차례로 보여준 선장님의 편집 능력이 합쳐진 결과가 아닐까?
혼자서 낚시를 다니며 느끼는 불편 하나 - 잘 나가는 배를 타기 어렵다는 것.
하루나 이틀 전에야 출조 결정을 할 수 있는 처지에서는 더구나 꿈일 뿐이다.
몇 곳을 전화하다 한 곳에 예약이 되었다.
인천 남항.
선상낚시를 처음 접한 곳. 하루가 넘어가는 시간에 일찌감치 왔더니 주차장이 넓다.
익숙하게 차를 대고 둘러보니 기억이 새롭다.
익숙한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 나를 태워 줄 배를 찾아보았다. 처음 타는 배여서 이곳 저곳을 살펴본다.
낚시하기에는 아주 편안한 구조인 듯싶다.
당일 내면서야 알게 된 선비가 다른 남항 배에 비해 비싸서 좀 그렇다 싶었는데,
달리는 배를 보니 그래서였구나 싶기는 하다.
강렬한 엔진소리는 주위를 보지 않아도 속도를 가늠케 한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면 근처를 빙빙 돌기만 할 텐데, 굳이 빠른 배가 좋은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서?
그래 봐야 30분 빠른 것에 불과할 텐데...
이때까지는 다른 루어 배를 생각했고,
그 배들의 운용 패턴 말고는 아는 것도 없었으니까 당연한 생각이었다.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시간 반을 달리고 있다.
일어나 채비 준비를 마무리 하려니 엔진 소리가 잦아든다.
목적지로 보이는 섬이 다가오고 있다.
오늘은 전날의 스트레스를 잠시라도 잊고 싶어 출조한 터라
“오늘은 한번 해내보자” 라는 기분보다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싶어진다.
얼마 전까지 대박과 쪽박을 넘나들다 보니,
루어낚시의 기본이 무엇인지도 헷갈리고, 초보와 경험자의 구분 기준도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그냥 운이 좋으면 많이 잡고, 아니면 낱 마리인가?
그래도 눈으로 본 것 중 확실한 것은 초보도 대물을 잡고, 많이도 잡더라는 것이다.
그 동안은 채비도 많이 뜯기고, 줄 엉킴을 유발하여 주위에 눈 흘김을 받는 사람들을 초보라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잘 잡기도 하더라는 것이다.
그저,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고도 그 사람만큼만 잡으면 잘하는 것이란 생각이 드는 요즘이라,
조과가 실력을 보여주는 척도라 생각하여 치열해지고 안달을 하던 얼마 전까지의 욕심이
다소 사그러 들기도 해서 마음이 좀 편해졌다.
자욱한 물안개가 섬 허리 위를 감싸고 있고, 하늘은 비라도 몰고 올 듯 흐리다.
채비를 내리고 지긋이 눈꺼풀을 반쯤 내린 눈으로 암벽을 넘어 섬 전체로 넓혀 바라보다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서해에도 이리 아름다운 섬이 있었었나.
용암이 급격히 식으며 만들어 낸 결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암벽을 따라 배는 흘러가고
눈은 그 역사를 쫓아가기에 바쁘다.
과거 한번 이상은 와 봤을 섬이겠지만,
이제야 새로이 보이는 것은 여러 가지 생채기로 마음의 문이 깨어진 덕은 아닐까?
선상루어의 장점 중 하나가 섬 가까이서 유유자적 낚시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오늘 이 베는 그 장점을 백분 활용하겠다 작정이나 한 것처럼 가는 곳곳마다 절경이 펼쳐진다.
폭우가 쏟아질 즈음에는 직벽 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까지 보인다.
바위틈 사이사이로 흙이 좀 있다 싶으면 피어있는 키 작은 샛노란 꽃망울은
초점을 흐려 볼라치면 어릴 적 뒷동산을 어지러이 떠돌던 노랑나비 같다.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
준망원으로 잡으면 잡는 대로 작품일 텐데.
아쉬운 대로 휴대폰을 꺼내 비에 젖든 말든 몇 컷을 담아내지만 역부족이다.
노출이 맞지 않고, 어두운 만큼 노이즈가 자글거리는 것이 아쉽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감지덕지다.
광어 한마리를 잡아내니 예쁜 사무장이 와서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리고 섬을 배경으로 찍어야 멋있다고 한다.
이왕이면 멀리서 찍어줘야 섬의 암벽들이 제대로 담기지,
고기와 얼굴을 반 넘게 담으면 섬이 담길 자리가 어디 있다고…
그러고 보니 다른 루어배를 탔을 때와는 다른 점이 있다.
한번 목적지에 가면 그 근처를 주로 다니고, 멀리 가면 30분 이동인데,
이 배는 빠른 선속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조황이 안 나온다 싶으면 두 줄기 물보라를 만들며 신나게 달린다.
때로는 섬 암벽에 바짝 붙여 흘리는가 하면, 어느새 섬 뒤편으로 이동해 있다.
해서, 조황이 좋지 않을 날씨임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깝깝하던 속을 비경을 통해 달래게 해준다.
또 환가지 다른 점은, 선상루어를 하고는 우럭을 보기가 힘들었는데, 이 배는 많이 다르다.
우선 루어로 전향한지 얼마 되지 않은 배여서 그런지 가는 곳이 좀 다른 것 같고,
그 때문인지 우럭들이 꽤 잡힌다.
한동안 루어만 다녀서 종일 해도 우럭 두어마리 잡기도 힘들었었는데,
이 배에서는 내가 잡은 것 중 반은 우럭이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다.
이번에는 우럭회도 제대로 먹겠구나 생각 들어서다.
아쉬운 점은, 이 배만의 문제는 아닌 계절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풀어주기로 스스로 약속한 30cm 이하의 씨알이 많다는 점이다.
그래도 올라올 때의 저항감은 팔팔한 새내기여서인지 광어 큰놈 못지 않았다.
고이 살려 보내느라 덕분에 더 애를 먹기는 했지만,
수면에 닿는 순간 몇 번 튕기다 물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경쾌해서 보기가 좋다.
오랜만에 조과에 얽히지도 않고,
주변 경관을 즐기며 낚시를 하니 그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되는 듯싶고,
그래서인지 조과도 나쁘지 않다.
주위에 줄엄킴 피해도 주지 않고 생각대로 루어를 운영해서 얻은 결과여서 그렇기도 하다.
사실 귀항 후에도 쿨러에 몇 마리 들었는지 몰랐다.
그만큼 낚시보다는 하루는 편히 지내는 데 치중했다는 반증이니 더욱 그렇다.
지금도 선비에 대한 부담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한번 더, 광각과 망원을 준비한 카메라를 가지고 해가 강하지 않을 날로 골라서 다시 승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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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글 써 두고 묵혔다, 올리려고 보니 주야조사님의 글이..
죄송스러운 마음이지만, 더 묵히면 올리지도 않게 될 것 같아...
전국 각지로 다니다 보면 무상천님의 말씀이 정말 가슴에 와닿을 때가 많습니다.
저마다 동양의 나폴리임을 주장할 만큼 아름다운 섬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이런 호강만으로도 선비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 비경 사이에서 유유자적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기신 루어 낚시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