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며 달려간 춘천이다.
4월 17일, 버스로 단체를 모시고 가는 입장이지만 나는 혼자 떠났다.
온 사방, 봄이 무르익고 있다.
그녀와 함께 첫번째 떠났던 그 시기도 이 때 였던 기억이다.
그때는 지금의 전동차와는 달리 칙칙폭폭 시커먼 연기를 내 뿜던
경춘선 기차속에는 통기타를 멘 우리 또래들이 많이 타고 주로
강촌역에서 많이 내렸다... 추억과 낭만을 주던 기차였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가 까슬까슬 봄바람에 도리질하는 건...
그 녀의 해맑았던 웃음으로 와서 내 눈을 덮어 버린다.
들쭉날쭉 강변을 따라 유려한 이 아름다운 곡선은 그 녀의 하얀
목덜미를 타고 내려와 유유히 흐르는 몽실한 가슴으로 다가와선
갑자기 숨을 몰아 쉬게 만들어 순간 나를 놀라게 했다.
소양강 댐에서도 그 녀를 만났다.
언젠가 지지리도 못난 덕분에 잡지 못하고 흐느끼는 그 녀를
보내기 위한 마지막 이별을 나눈 곳이다.
그 녀는 이곳 춘천이 고향이다.
서울에서 유학한 그녀의 집은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넉넉한 집안이었다.
바나나 하나에 감자 달랑 2개...^^*
무일푼 나를 그녀의 부모님이 좋아할리가 만무했다.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이 신경써 줄 형편은 말할것도 없는
남쪽나라 어느 흥부네 집이였으니까....
배를 타고 청평사로 가는 길이다.
예나 지금이나 별반 변한게 없는 산천초목 그대로이다.
다른게 있다면 그때의 기억으로는 소양강댐 물이 만수위
정도로 찰랑댔던 기억이나 지금은 가믐도 원인이 있겠으나
수도권 빨대들이 쉴새없이 빨아버린 이유에서인가
바닥을 들어낸 몰골이 보기에 흉하다.
쏟아지는 볕에 몸을 맡기고 휘이휘이 걷는 답청(踏靑)의 봄길...
살랑살랑 바람은 그 녀의 떨리던 입술처럼 달콤하다.
어디선가 실려온 꽃향기 시선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조팝나무다.
꽃이 만개하여 온통 몸을 감싸고 하얗게 피어있는 이 꽃 앞에서
나는 아름답다는 감탄에 앞서 깊은 상념에 빠져버렸다.
다른 이와 결혼 후 첫아이를 낳았다며 안고 불쑥 나타난
행복해 하며, 더욱 성숙해 보였던 하얀 피부의
그 녀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 녀는 자기 친구를 내 친구에게 소개 시켜줬고,
소개받고 사귀던 이들은 우리가 헤어진 그 다음, 다음해 桃月에
결혼을 했었다.
그 들은 현재 인천에서 좋은 가정을 이루고 현재까지 잘 살고 있다.
이 들의 결혼식장에서의 있었던 일이다.
초라한 내 신세를 보이기 싫은 자존심으로 먼발치에서만 본 그녀
때문에 한뼘 햇볕도 들어오지 않던 지하 셋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채
눈물 흘리며 며칠을 끙끙앓고 못난 신세를 한탄하던...
부모까지 한없이 원망하던 추억 반추...
..................
안부를 끊고 살다시피한 이들에게 어떻게 어떻게 연락, 부탁해서
그 녀의 식당운영 소식을 갖고 춘천을 왔다.
전화번호는 모른다고 했다.
춘천시청 관광과에 관광 일정을 얘기했더니 기꺼이
가이드 2분을 보내 주셔서 일정이 수월하게 진행이 되었고
그 녀의 **동 식당 전화번호를 문의했더니 알으켜 줬다.
(033) 250 - ***4 ................
낚시의 수전증을 넘어 가슴까지 떨리는데
덜~덜!~~ 손이 떨려 번호를 적을 수가 없다...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른다.
주인 이름도 그 녀의 이름 맞다.
그 녀가 경영하고 있다는 식당이 꽤나 큰 모양이다.
점심(막국수)100명분 예약이 쉽게 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예약을 받은 젊은 목소리의 주인공에 주인이냐고 물었더니
딸이라고 하고 주인인 엄마는 조금후에 나오신다고 한다...
약속한 점심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그 녀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은 나를 바람을 타는 사시나무처럼 안절부절, 심장이
벌렁벌렁.. 다리까지 흔들리기 시작한다.
식당이 꽤나 크다.
모두 자리에 안내하고 난 카운터가 가까운 거리에 앉았다.
가까이서 그 녀 모르게 잊혀진 숨결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운터가 비어있다. 주인이면 당연히 카운터에 앉겠지....
벌써 탁자위에 가져다 놓은 큰 물통의 물을 혼자 다 비워버렸다.
그렇게 마셨는데도 입이 또 타 들어간다..
주인을 먼저 찾기 보다는 옛날 하얀 보에 쌓여 안고왔던
며칠전에 예약한 딸이라고 하는 여인을 먼저 찾았다.
상글거리며 인사를 곱분이하는 모습에 흐르는 미소가 나의
심장을 멈추게 한다.
너무나 예뻣던 그 녀를 빼어 닮은듯 하다.
" 왜 그렇게~~~ 저를 쳐다 보시나요? "
"으?.. 음... 아니에요....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아서......... "
한참을 실성한 사람처럼 넋을 잃고 있었나 보다.
" 아!.. 네! .... "
" 이 집 주인 *** 님은 어디 계시나요? 엄마되시죠?"
" 네! 저기.... 주방에 계시는데요.... 불러 드릴까요? "
" 아! 아! 아니에요. 나중에 계산할때 좀 아니까 그때뵙지요..뭐!~~ "
먹는둥 마는둥...
코로 들어가지 않고 입으로만 들어간것만 해도 용할 정도로...
끝까지 시선은 주방으로 보내 찾았으나 그 녀에 대한 감이 오질 않는다.
.. 저렇게 뚱뚱하진 않을꺼야.. 저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거야...
혹시?... 아니야! 아니야! 저렇다면 난 얼마나 실망할게 될건가??
그러면 저 사람? ... 맞는거 같은데..
..... 침착하자...침작 ........
카운터로 한 여인이 왔다.
전표를 덜석이며 시선을 내려깔고 계산중이다.
목선에서 부터 흘러내리는 깊은 실루엣은 분명 그토록 오랫동안
연멸되지 않고 나의 기억속에 안주하며 연모하던 그 녀가 맞다.
50이 살짝 넘었을텐데도 불구하고 손만 좀 거칠었지
내가 찾던 그대로로 내 앞에 그녀가 있다.
색쇠애이(色衰愛弛)라고 했다.
사랑받던 아름다운 여인도 늙어가면 사랑을 잃어버린다고 하지않던가..
꿈을 꾸는 것 같다.
카드를 주면서 손이 엉급결에 잡혔다.
아니, 내가 더 깊숙히 손을 내밀어 잡았다.
순간, 타고 내 몸속 깊이 느껴지는 전율....
이런 내가 나의 덩둘한 행동에 무척 놀랐지만
그 녀는 그 녀의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무례라고
그냥 생각하는지 힐끗 한번 쳐다 보고선 별로 개의치 않고
노련하게 카드만 쏙 뽑아간다.
스쳐지나가는 얼굴은 그녀가 맞는듯 어쩌면 아닌듯...
잘못하다간 실수 하기 십상이다.
휴!~ 다행이다....
난 굳어있는 몸에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버렸다.
말이 나오질 않는다.
" 저..저.. 저... 장사 잘 되시는 모양이네요? "
" 네! 요즘은 그냥 그래요.... "
" 혹시!~ 저... 저.. (주** )이란 사람 아세요? "
그녀가 멈칫...
순간 나를 쳐다보더니만 몸이 경직되는듯 하다.
나도 아까부터 이미 굳어 있었고...
" ................. "
" ................. "
우린 서로를 쳐다보며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야만 될 것 같다.
"제가 바로 주**입니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에 입술은 파르르 떨고 있어 보이고,
갑작스런 상황에 시선을 어디를 둘지 몰라 안절부절이다.
"안녕하세요! 저~~ 정~말! 오랫만이네요. 옛모습 그대로 이시네요."
"정말요?... 30년이 넘었잖아요. 많이 변했는데요... "
"아녜요.. 그대로세요... "
"저~기요.. 잠시만.. 바깥 저쪽 커피 자판기가 보이죠.
그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카운터 맡겨놓고 금방 갈께요."
"네! 알겠습니다......."
커피를 한잔 뽑았다.
후루~룩!... 앗! 뜨거!.... 가슴이 또 콩딱콩딱 막~ 뛴다...
손에 물이 흥건하다. 종이컵이 새나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컵은 새지 않는다. 손에서 난 땀이다.
커피가 식어갈 무렵,
두손을 양 옆으로 흔들며 고운 봄나비처럼 뛰어온다...
와락! 껴안고 싶다...
아니지.... 안되지...
......................
" 오빠! 어쩐 일이세요.. 춘천에...."
"으~응!응!~ 울 **** 단체 회원님들 모시고 문화답사왔지.."
"그러셨구나...."
" 너! 옛 모습 그대로이고.. 너를 닮은 예쁜딸... 보니 어쩜 그렇게
쏙 빼 닮았니? 고맙구나. 건강하게 이렇게 잘 사니.... "
" 오빠는? "
"나도 잘 살고 있고 딸, 아들 하나씩 남매 뒀다.."
............................................
" 참! 오빠! 오늘 올라가지 말고 내일 서울가면 안돼?"
" 윽!.. 왜? ...."
"저녁에 내가 한턱 낼께 내일 올라가라.... 응?
아니면 우등고속 심야버스로 가던지... "
아뿔사... 이를 어쩐담.... 혼돈스럽다.
얼마나 오매불망 나의 첫사랑이였는데....
쏟아지는 별빛의 축복, 만발한 예쁜 꽃들의 향연,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를 거닐며 우리만의 작은 카페에서...
30년전으로 회항하는 꿈을.....
..........................................
버스 2대의 책임자들께 양해를 구하고 마지막 코스인 고려의 개국공신
평산申씨의 시조, 궁예가 흉포하여 부하와 백성의 신망을 잃자,
홍유,복지겸,배현경과 협의, 궁예를 폐하고 왕건을 추대했던 인물...
이 신숭겸묘에서 혼자 남았다.
그녀와의 약속시간과는 2시간 남았다.
한시간 정도 흘렀을까?
"오빠 어디세요? .. 지금 차를 가지고 가는데... 응..알아요.
신숭겸 묘?.. 10분이면 가요.. 기다리세요.."
차는 미끄러지듯, 정문앞에 섰다.
"타세요 오빠!~ "
난 뒷자석에 탔다. 앞 조수석에는 또 한사람의 남자가 탓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 모르시겠어요?"
".................................... "
" 오빠!~ 그때 왜!~ K대 다니던.. 오빠랑, 가을이던가? ...
강촌에 가서 한바탕싸워 내가 울면서 말렸던... 김** !.. "
억!~ 아이고... 아뿔사! 이놈이 널 낚아챘구나....
그 못생기고 미련한 놈이.....
이 놈의 집은 경기도 양평이고, 집도 2번 가봤는데 떵떵이 아니라
똥똥거리며 잘 사는 부유한 집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2살 아랫녀석이다.
나는 애써 외면했다... 부아가 치민다.. 하필이면 나의 첫사랑이
이 못난 녀석, 돈 좀있다고 그렇게 뻐기던 놈....
공부는 나보다는 잘했다.
" 글쎄!~~ 잘 모르겠고.. 기억이... "
" 형!~ 형하고 단성사, 피카디리 골목에서 왜!~ 창석이랑 중훈이랑
우리 자주 막걸리 먹었잖아요.. 양평 우리집도 2~3번 오고...
아이~참나!~ 언젠가나한테도 돈 2,000원 빌려 갔잖아요...
형! 그래도 기억 안나요? "
이 썩을 놈은..^^* ... 요즘 신문에 도배하다시피한 박**회장 증거대며
조여오는 젊은 검사의 추궁처럼... 매섭다.
"응!~~~ 아!~ 돈 2,000원이 아니었지.. 그 뒤에 1,000원은 갚았지...
빌려가 아직 못갚은 기억은 나지...
중훈이 한테 빌린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자네한테는 안 빌렸어!
그때 중훈이 한테 빌렸어"
"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이 썩을 것들이 웃긴....
에이! 그냥 아까 그 뻐스로 서울 올라 갈 걸....
그래!~~ 추억이나 더듬고 어떻게 만났는지?..
바가지나 홈뻑 씌우고 비싼 호텔에서 하룻밤 쓸쓸해도 좋으니
호반의 도시 내음 실컷 맡게 방이나 잡아 달라고나 해야겠다...
이 망할~~~ 우쒸!~~~
호반의 조그마한 레스토랑에서 차는 멈췄다.
그 녀의 친구가 운영하는 곳이란다.
이 미운 녀석과 마주하여 마시는 맥주는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시원한 맥주 맛이 아니라... 요맥(尿麥)맛이다.
내가 그렇게까지 못잊어하던 연모와는 달리 그 녀는 말투에서
부터 눈빛까지 오래전에 나를 잊은 듯 하다.
우리들의 첫사랑 이야기는 서방되는 녀석은 훤히 알고 있다.
다 이야기를 했단다.
오래 묵혔던 추억들을 들추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30년 묵은 연정은 마지막 나누는 커피 향에 실어 싹 날려 버렸다.
비단, 하루지만 혼자 독수공방 할 이유가 없다.
버스 터미널까지 태워 준단다..
9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는 낭낭 봄바람 속을 누비며 가는게 아니라
가거초에서 헛탕치고 돌아오는 한겨울의 히타도 고장난
냉랭한 겨울버스 같이 을씨년스럽다.
그래도 늘 어떻게 살까? 고생이나 하지 않을까?
염려 했었는데... 한낱 기우이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된다.
고맙고 내보다 훨씬 나은 능력... 후배인 서방께도 감사(?...ㅎㅎㅎ)
잘 사세요....
이거 주야조사님 글 맞나요?
제비조사(?)님이 이름을 오타치신 것 같은데요.
다음편 기대하겠슴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