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 지름신 납시다

by 어부지리 posted Jun 2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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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알려드립니다.
조행기란 것은 낚시를 가지 않은 분들께 대리만족을 주기도 하고,
다음 출조 계획을 잡는데 참고가 되기도 하며,
"역시 꽝이군"
"요즘은 고기 잡기 참 힘들어... 자원이 많이 줄었지."
"거길 왜 갔나? 고생 많이 했겠군"등의
위로와 안부의 교감
또 낚시 취미 생활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떠오르게도 합니다.

조행기는
몰황에 가깝고(사실 자원도 많이 줄었고)
고생 많이 했고,
어쩌다 찾아온 행운 같은 조과가 반가웠으며,
낚시보다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긴 조행이었다.
지인들과의 만남과 소줏잔 기울인 회 한점이 낚시보다 즐겁기도 하고....
이렇게 써야 정석(?)인데

안좋은 조과의 글에 대해선
"흠~~ 내가 갈땐 아마도 좋을꺼야"라는 희망을 품어 보는게 일반적이며,
한편 한 마리라도 잡은 조과에 대해선 아낌없이 박수를 보냅니다.
(내가 가게되면 많이 잡아야지... 분명 많이 잡을 수 있을꺼야... 다짐과 희망속에...)

이번 조행기는 아쉽게도(?)
농어 낚시에 대한 뽐뿌이며
맨날 대충 꽝인 분들께는 염장 지르는 글이며
농어 장비를 들이게 되는 지름신 역할의 글이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도 없고
회 한점 오물대며 쐬주 한잔 홀짝이며 담소를 나누는 선상 파티도 없으며...

그저 말없이
눈치로 서로 도와가며,
얼굴 근육은 흥분과 희열에 약간 일그러지며,
(소리쳐도 된다면 다들 웃음 보따리가 풀어질 텐데)
입술을 깨물며 농어의 당찬 손맛을 끝도 없이 즐긴 30분간의 이야기입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떨리네요~~~


티타임 2시간 전


간만에 농어를 올렸지만 이렇게 아주 작은 넘입니다.
"먹을 것도 없는데"
망설였지만 습관적으로 방생합니다.

"오늘은 별 볼 일 없네"
어쩌다 올라오는 작은 씨알의 농어에 지쳐가고
입질이 없어 자꾸 미노우를 바닥에 접근시키다 보니
밑걸림도 많이 발생하고...



바닥 근처에서 미노우를 놀리니 이런 우럭이 올라옵니다.
자기만한 미노우를 건드리다니?



손님 노래미도 나오고...
별 내 원 참!



이건 괜찮네요.
요정도까지가 들어뽕 한계 크기입니다.
이것도 올릴 때는 90도 가까이 대가 휘어집니다.



드디어 그 시간

해당 시간의 사진이 없어 글로 그립니다.

9시경, 해는 떳지만 안개가 짙어 품속 같은 바다.
근처에 섬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병풍같이 두른 해무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치 가는 빗속에 있는 것처럼 이슬 방울이 온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히프카바를 안가져 갔고
청바지에 슬리퍼 차림이라 축축한 뱃전에 걸터 앉지도 못했습니다.

갑자기 갈매기가 끼룩끼룩
배 앞뒤로 사방 수백미터에 이르는 수면에 잔 물보라가 칩니다.
멸치떼
물속에서 이 잔고기를 공격하는 농어중 성질 급한 넘들은 수면 위까지 튀어 오릅니다.
수직 강하와 상승을 반복하는 갈매기들
어느 순간의 수면은 농어몸체와 갈매기가 수면에서 닿는 듯한 희귀한 풍경까지 보입니다.
마치 갈매기가 농어를 공격하는 듯한 포즈


그렇습니다.
우리 배는
멸치떼의 가운데 들어와 있었습니다.

선상에는 갑자기 정막이 흐르며 눈짓으로 일제히 캐스팅을 합니다.
캐스팅 동시에 모든이의 낚싯대가 90도로 휘어집니다.
아~~~ 이걸 어찌 올려야하나...
적정 힘을 오버하는 농어의 저항에 드륵드륵 스풀이 역회전 합니다.
모두 다 일제히.
뜰채는 하나뿐인데...
뜰채 차례를 기다리며 손맛을 즐기다가 대부분 털이를 당합니다.

바로 다시캐스팅
미노우가 수면에 닿자마자 바로 입질.
뜰채 하나로 동시에 두마리를 떠 보지만 뜰채 부족 현상은 어찌 할 수 없는 일.
배 밑에서 털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이제는 털리든 말든 그때까지 손 맛만 즐기자' 이런 생각으로 바뀝니다.
뜰채 도우미를 하던 선장님마져 이런 기 현상에 캐스팅을 하니,
들어뽕을 하든 혼자 셀프 뜰채질하든 이 두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물칸에 농어를 집어 넣을 여유가 없기에
선상은 농어의 철퍼덕에 정신이 더욱 없습니다.

배 밑으로 들어간 농어의 저항에 딸려가다 배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기려는데,
발에 농어가 걸리적거려 넘어집니다.
내가 잡은 농어가 어느건지...
누가 잡은 농어가 이렇게 선상을 돌아다니는지.
떨구고 올리고 떨구고 올리고...
농어지깅 같아요.
멀리도 아니고 대충 앞에 던지면 가라앉는 순간에 미노우를 물어주니...

이렇게 광란같은 30분이 지나고
갈매기의 끼룩대는 소리가 멀리 멀어져 갑니다.
다시 쫓아가야할 이유는 없고.
뱃전은 발 디딜틈 없이 농어로 덮여 있습니다.

대략 50cm급 이하는 바다로 다시 돌려 보내고,
바늘이 잘 빠져 아주 생생한 넘은 더 커도 방생하고.

이제 배 안은 웃음 소리로 가득찹니다.




해변을 거닐며 경치를 감상할 여유도 찾고
돌아 갈 준비를 합니다.



만약 매체의 기자가 이시간에 있었다면 작품같은 사진 많이 건졌을 것입니다.
"한마리를 덜 잡더라도 기억에 남을 순간만큼은 건져가자"며
'디카 생활화에 웬만큼 적응됐다'라고 생각하는 저도
이때만큼은 주머니 속의 디카를 꺼낼 여유가 전혀 없었어요.

태안의 이원과 원북은 박속낙지탕이 유명합니다.
박의 속을 긁어 무대신 넣고 지리처럼 끓여낸 속풀이 국처럼 맑은 탕입니다.
수제비와 칼국수를 같이 넣고 바글바글.

대박 조황의 조행기로 머릿속을 어지럽게 한 점 다시한번 지~송 합니다.
(앞으로는 꽝 조행기만 쓸께요^^;)
(아직도 벌렁 벌렁~~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