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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조행[민어]

2008.05.26 18:40

부시리 지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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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8897 추천 수 16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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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이란 말이 실감나고 절로 큰 숨 몰아쉬며 힘겨루기 하는 낚시.
파이터들의 출조, 부시리 지깅 모임에 잠깐 발만 담가보고나서...



새벽 2시의 울진 죽변항은 생각보다 활기 찼습니다.
그러나 오직 주점과 노래방 간판만 번쩍이더군요.
밥 먹을 데가 없어 한동안 헤맸습니다. 24시 김밥집마저 없고.

결국 주점에 들러 여차저차 사정을 얘기하고 아침을 해결하게 됐습니다.
종업원이 먹는 듯한, 메뉴에 없는 도루묵 찌개하고 어촌의 특이한 반찬들.
데친 통오징어, 대게 조림 등... 밥은 햇반 데워 가져다주고.
이 모든 것이 백반 수준의 가격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금은 음침한 10와트 조명 아래 아침을 먹는 미묘한 분위기이긴 했지만.


도루묵 생각을 하니 지난 겨울, 어느 포구가 생각납니다.
그물에서 도루묵을 털어내는 작업장 옆 군불에 도루묵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작업하는 분들이 오며가며 하나씩 집어들던 그런 분위기
털어내는 도루묵 더 올려가며 우리 일행은 군불 옆에 한동안 죽치고 있었지요.
물론 먹었지요. 그것도 아주 많이.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 그러면서...

철없는 우리 일행은 이 옆에서 소주도 한 병 깠던 것 같습니다.
작은 포구의 푸근한 인심을 오도독 터지는 도루묵 알을 씹으며 느꼈지요.


대게철이 채 안 끝났는지 아니면 다른 물고기가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상당 수의 어선이 들어오고 또 출항 준비를 하고 있어 분주한 포구입니다.
규모도 꽤 커서 일전에 가본 근처의 장호항보다 훨씬 큰 느낌이 듭니다.
칼같이 4시에 출항을 합니다.

부시리를 찾아 왕돌초로.
왕돌초는 죽변보다 더 남쪽에 있는 후포의 정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빠른 배임에도 불구하고 죽변에서는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더군요.


이게 없다면 여기가 왕돌인지 모를 겁니다.
여느 바다와 똑같은 망망대해죠. 왕돌의 주탑은 3개의 봉우리 중 가운데에 있는 거라 하더군요.
가까이 가면 바닥이 훤히 보이는 수심 8-9미터 정도랍니다.


히~트!!! 비명과 같은 외침 속에... 한 마리 걸었습니다.
종종 올라올 텐데 웬 오버인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꽝이 7-80%인 왕돌 지깅에서 한 마리는 의미가 무척 크다는 걸 알았습니다.
갸프로 랜딩을 도와줄 선장님은 여유롭게, 흐뭇한 미소로 구경합니다.
수심 40미터 정도의 그리 깊지 않은 곳이지만 올리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라는 걸
알고 계신 까닭이죠.

허리 부분이 철봉같은 느낌이 드는 단단한 전용 로드인데, 그게 휘어지네요.
이 맛에 부시리 지깅 하나 봅니다.
찌릿찌릿, 쳐다보는 주변 사람에게도 손맛이 전파될 정도입니다.


얼굴을 가리는 게 아니고 들지를 못하는 겁니다.
더 높이 더 높이 주문해도 막 파이팅을 끝낸 지친 몸이 따라주질 못하는 듯.
결국 이분은 나중에 원기회복한 후에나 정식 기념사진을 남깁니다.

  
띄어띄엄 입질 받는 게 아니라 아예 입질이 없네요.
원래 보통 그렇다는데...
가볍게 회와 컵라면으로 간식타임을 갖고

수온이 차서 쫄깃쫄깃... 회가 눈에 많이 익지요~~


9짜 한 마리와 반올림 8짜 한 마리 그리고 4짜 우럭 한 마리
썰렁해 보이는 중간 조과... 이후 한 마리만 더 올라오고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철수하게 되는데...

일행 중 고참꾼은 섭섭해하지 않더군요.
이 정도면 선방한 축에 든다고 하면서.


엄청난 저항으로 올리는 내내 줄터짐을 염려하게 만드는 부시리
바닥권에선 그리 심하게 저항을 하다가도,
다 끌려올라와선 지쳐서 그런지 잠잠한 편입니다.


지깅 처음 한 분에게도 이런 행운은 찾아옵니다.
행운의 여신이 딱 한 장의 초보 유혹용 서비스 티켓을 가지고 있었고,
여신은 저를 외면하고 이 분을 선택했습니다.

아마도 냉철한 저는 유혹 티켓을 받아도 감사해 하거나 감격해 하지 않고
지깅에 빠지지 않을 거라는 판단을 했나 봅니다^^

오늘 제겐 간식 횟감용 4짜 우럭 한 마리만 던져 주셨네요.


2명 당 부시리 1수 꼴인 조황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
지깅人의 조과에 대한 기준은 남다른 편이었습니다.
누가 잡든, 배에서 부시리 얼굴 구경만 했으면 괜찮은 조과라고 생각하는 이들.

하루종일 격렬하게 흔들고 움직이고 빈 지그와 씨름 해야하는
지깅에 대한 [느.낌.]만 조금 맡아보고 돌아왔습니다.

이 세상에 재미 없는 낚시는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