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인생 (冊)

by 어부지리 posted Feb 2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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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도서명 :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수 십년 간 낚시광인 어느 심리학자의 에세이적 어쩌구 저쩌구 하는 서평과 함께...
뭔가 감이 팍팍오는 책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책 표지를 보면서 거기의 낚시에 대해서 상상해본다.
인생과 낚시라.
삶을 살다보면 어려운 일이 있게 마련이고 분위기 쇄신을 위해 먼 곳으로 낚시여행을 떠나고
문득 거기서 삶의 방식을 느낀다. 뭐 이런 얘기 아닐까?
아니면 강태공마냥 빈바늘 드리운 채 사색에 잠겨 세월과 인생을 낚는다!
복잡한 세상을 사는 지혜는 낚시에서...
이건 분명 나에게 적절한 책일 거야!!!


'칭찬은 고래도 춤 추게 한다'
한두 해 전에 이런 초초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이 책은 지금도 여러 단체의 권장 도서 목록에 끼어있다.

'You Excellent!' 당신 최고야!라는 제목으로 처음 책을 내고 신통치 않자,
몇 달 후 제목을 이렇게 바꾸어 다시 출판한 책.
100만부, 이 출판 기획사는 빌딩을 올렸다나.
해리포터나 다빈치코드등의 알려진 베스트셀러는 판권료가 비쌀테니
순익으로 따지면 아마도 이 책이 그 해의 최대박이 아니었을까...


다시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으로 돌아가서,
많은 사람이 호평한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우리나라만 해당)
'Fishing Lessons'라는 원제를 지나치게 과대포장하여
책 구매자로하여금 너무 큰 기대속에 첫 페이지를 넘기게 했다는 거다.


원제인 '낚시강의' 또는 좀 더 나아가 '낚시로부터 배운 (인생)교훈'등으로 했다면
페이지를 넘기며 한 발짝씩 다가오는 기대치 않던 잔잔한 감동에 찡했으리라.
하지만 엄청난 오버의 표지에서 온 선입감때문에
막상 글 내용에서 오는 느낌은 그냥 그러했다.
기대치가 6짜에 있었기에, 5짜의 대물을 보고도 약간 어색함과 담담함이 교차 한다고나 할까.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옥(玉)이다.
그런데도 나는 내심 이 옥의 티를 찾느라고 잠깐 신경을 썻다.
책제를 정한 마케팅 술수의 낚시에 걸렸음을 알고.


아니 영문학자중엔 낚시 좀 아는 사람 없나?
저명한 번역 전문 영문학자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거슬리는 문구를 찾아본다. 이런 일은 이전에 전혀 없음은 물론이다.
'목줄'을 뜻하는 '리더'라던가 '합사'라고하면 될 걸 '브레이드 라인'이라는 영어를 발음나는대로 옮겨 놓았다.
(사실 낚시를 모르는 독자층을 생각한다면 이 번역이 올바른 것이다.)


책은 저자 폴 퀸네트의 신상 명세 설명부터 시작된다.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플라이낚시를 수십 년 한 낚시광
(1939년생, 1956년 그의 10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낚시 시작...)
"내 장례식 예배에는 사방에 낚시할 때 찍은 스냅 사진들을 많이 펼쳐놓게 하리라.
좋아하는 낚싯대와 장비, 유품 밑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을 것이다.
(눈물 고인 눈으로 보겠지.)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십시오. 신나게 낚시했으니!'"

이 대목에서 저자는 심리학자로 살았다기 보다는 자신은 낚시꾼이었음을 더 알리고 싶어한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라고 유추할 내용은 물론 없다.
책은 90개의 수필형식과 일기형식의 2-3페이지 분량의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과
생각을 적고있다. 우리가 늘 접하는 조행기, 바로 그 것이다.
어디가서 누구와 대물을 잡았고, 언제는 꽝이고, 자연보호가 중요하다 뭐 이런 글이다.


우리나라에서 낚시가 스포츠냐 아니냐는 정의에 대한 토론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스포츠피싱이라는 단체명과 용어를 사용하고,
낚시를 스포츠의 범주에 포함시키려는 일부 낚시계의 노력도 보이지만,
아직도 일반인에게 낚시는 스포츠와는 좀 거리가 있는 레저로 간주된다.

그러나 저자는
"낚시가 스포츠에 불과하다면..."이라는 글로 시작되는 낚시=인생론을
구절구절 아름답게 표현하며, "낚시는 스포츠 이상의 인생이다"를 알려준다.


"정글에서 밤에 보초를 설 때면 늘 그 기억을 떠올렸어.
높은 산, 좁은 실개천, 발밑에 융단처럼 펼쳐진 풀밭, 강둑에 붙어 있는 금빛 송어떼.
그런 기억 덕분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어."

베트남전에서 살아 돌아온 동생에게서는 낚시에서
절망을 버티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라고 할 대목에선
저자의 전원 목가적인 생활이 삶의 원동력이었음을 알게된다.


중간 중간 코믹하기까지 한 낚시유머(놓친 고기는 커보인다 등)를 섞어가며,
'시인과 낚시꾼은 두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그들은 자연을 신뢰하며,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
라며 낚시를 문학에 비유하고,
'사람들은 음악, 미술, 와인, 낚시, 삶에 대한 열정을 과소평가한다.
특히 아침 10시까지 잠자리에서 빈둥대는 사람들은.'

이렇게 낚시를 예술의 하나라고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며, 이렇게 살아감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90개 조행일기의 마침표를 찍는다.
가족이든 친구든 낚시든
진정으로 사랑하는 대상과 가까이 있는 것이야말로
기쁨의 원천인 것을.


아래에 저자의 많은 낚시와 인생론에서 가슴에 와닿는 몇 개의 글을 정리하며...
- 사진은 일산호수공원 -

새 친구들과의 낚시보다 더 좋은 일은 단 한가지,
오랜 친구들과의 낚시다.


낚시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기 전에는 찾고 있는 줄도 몰랐던 풍요로움을
발견하는 일이다.무게도 없고, 나이나 가격도 없으며 가족사진처럼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낚시 경험담은 다이아몬드보다 귀하다. 경험담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제대로만 하면 낚시는 스포츠가 아니라 인생을 사는 방법이다.


중년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멋진 물고기를 놓쳐도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


낚시의 즐거움은 고기를 잡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기가 잡히는 곳에도 있다.


인생의 의미는 짜릿한 입질을 느낄 때
더 잘 이해가 되는 법이다.


인생은 낚시를 하며 보내는 나날들 사이에 일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기다림의 끝에 오는 낚시가 인생일까?


"미래는 언제나 당신에게서 달아나므로, 미래를 잡고 싶다면 미래를 쫓아가야 한다."
사는 것, 물고기를 잡는 것,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도 마찬가지다.
흥미진진한 삶을 살고 싶다면, 숨이 턱턱 찰 때까지 좇아가야 한다.


진정한 낚시꾼은 행운을 믿지 않는다.
행운이 다른 낚시꾼에게 화사한 미소를 지어준다는 것 외에는.


잠시 낚시를 하는 게 좋을 거다. 죽음은 영원히 계속되므로.


"5분만더...5분만 더 달라구.
틀림없이 호루라기 물고기를 잡을 테니까"
"그러지 말고 다 걷자구요. 온종일 한 마리도 못잡았어요."


'호루라기 물고기'
호루라기 물고기를 잡으려면 그것이 존재한다는 맏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존재를 믿지 않게 되면 낚시를 중단할 것이고, 낚시를 중단하면 호루라기 물고기를
결코 잡지 못할 테니까.

"삐~~ 그만 올리세요!라고 할 때 마치 농구의 종료휘슬과 동시에 터진 버저비터같은 입질.
나는 책의 호루라기물고기 대신 '삐우럭'이라 쉽게 부르고 싶다.



물고기는 가시로 한데 붙어 있다.
가시가 없으면 척추뼈가 없을 것이고, 그러면 조개처럼 잡기 쉬울 것이다.
'가시때문에' 생선을 안 먹는다는 사람을 만나면,
세상을 한데 붙어 있게 하는 것이 뭔지 모르는 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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