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user.chollian.net/~wsb92/theme31/theme31-3.asf포천의 일동과 이동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강산이 두번도 더 바뀐 지금
그 오래전의 몇가지
추억 아닌 기억의 단편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일동
이 동네를 이십여년만에 다시보게 될 줄은
우리나라 땅이 넓은 건지
내가 한쪽에 콕 쳐박혀 있었던 건지.
때는 바야흐로 80년대 초반
정권의 힘이 하늘을 찌르고 삼청교육대와 녹화사업때문에 흉흉하던 시절
더벅머리 밀어내고
입대한 곳이 생전 처음 와보는 일동면
동서남북 구별 안되고.
이 곳 지명이 일동이란 것도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알게되었습니다.
그땐
시외버스 터미날과 다방과 음식점 한 두 곳밖에 없었죠.
군사지역이어서 그런지
지금도 그리 많이 변해 보이진 않습니다.
횃불
어깨엔 노란 오뚜기
가슴엔 불타는 횃불
이런 모습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7759란 글자를 보니
감회가 무쟈게 새롭습니다.
인적기록에 아마추어 무선(HAM)자격증 있다고 써 놓아서인지
무전병 하랜다. 헐~~
그 당시 아마추어무선은 대북 전파월경등의 문제로
국가에서 관장하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투철한 반공의식을 물어 보는 문제가 대부분인 걸로 기억됨)
아무튼 이런 계기로 군 시절 내내 "알파 브라보 여기는 찰리"
"델타 여기는 잠잠, 별 일 없으면 잠 좀 자자"
그당시는 손으로 돌려서 신호 보내는 자석식 전화기를 썻습니다
입대해서 : 넷! 통신보안 횃!불! 이병! ㅇㅇㅇ
일병달고 : 햇불 일병 ㅇㅇㅇ!(긴 단어는 생략, 발음 어려운 복모음은 무시)
상병달고 : 헤~불 상병 ㅇㅇㅇ(불 소리밖에 안들림)
고참되서 : 블~~ 누구셔!(작은 규모 부대이어서 선임자가 거의 없고, 동기 레벨은 다 알고 지냄)
말년에는 : 네~~ (상대편 목소리 들어보고 높은 분이면 가볍게 "저 민병장인데요")
라면
늘 제대로 된 라면과 짜장면이 먹고 싶었습니다.
짜장면은 어쩔수 없더라도
라면은 부대 앞 가게에서 팝니다.
지금보니 그 가게 그대로지만 라면은 안 파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게 뒤로 다방이 생긴게 차이라면 차이
변한 모습 없는 그대롭니다.
군대라면이 좋아졌는지
아니면 보안이 철저해서 못 나오는건지?
사제라면이라고 불리는 제대로 된 라면과
새빨간 배추 김치
그 당시 우리 부대원 최고의 별미라고나 할까
사제라면은 군매점에도 없었고
이 계절 사제김치는 민가에서 싸리 빗자루와 바꿔오곤 했습니다.
군대라면은 일주일에 한번 나오는데 1인당 두개씩 끓여서
일요일 아침 또는 점심에 먹었지요.
상병부터는 이거 먹기 싫어합니다
한얀 소금국물에 끓인 것 같은 라면
파등의 야채는 물론이고 빨간색 고춧가루 전혀 없는
완전 화이트라면입니다.
(왜 이때 군용라면은 이렇게 만들었는지? 지금은 바뀌었겠지요)
이 군용라면은 부대내에서 남아 돕니다.
이 라면은 한동안 없어지기도 했습니다.
군 음식 현대화 추진 시범부대로 선발되어
아침마다 빵을 먹게 됩니다.
빵 먹고 힘 없어 질까봐 이 기간 몇개월 동안 일요일에도 라면 대신 밥을 주었지요.
그때 빵을 다 들 햄버거라고 불렀는데(식단에도 그렇게 나와있음)
햄이나 고기는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햄버거 모양의 빵에 쨈만 발라 먹는 것인데.
선녀탕
부대의 뒷쪽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에 버금가는 1000미터 고봉들의 줄기입니다.
민가도 거의 없고 야간이면 매복지로 사용되는 까닭에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의 발 길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 그대로의 땅이었던 것 같습니다.
도로변 물가를 지나 부대 뒷편으로 돌아가서 30분 정도 걸어간다면
그때 그시절의 선녀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계곡수가 작은 폭포를 이루며
투명한 물은 1미터 깊이의 암반을 바닥삼아
외국여행지 안내에서 봄직한 노천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이 안보입니다. 못 찾겠습니다.
그때도 외부에서 부대를 우회해서 이쪽으로 가기는 힘들었습니다.
길이 있었어도 관심두는 사람은 없었을 시절이지요.
이 선녀탕에는 나름대로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여름철 시원한 물과
목욕처를 제공했던 기억은 별로 없고.
반면에
한겨울 아침 점호후 구보를 이쪽으로 했습니다.
웃통 벗고 수건하나 들고
구보야 늘상 하는 거죠.
구보후에 냉수 마찰을 합니다.
바람 찬 영하의 눈 날리는 새벽
마이너스 몇도쯤 되어보이는 물로 상반신 냉수마찰
으윽~~ 비명이 절로 나옵니다
말년에는 손가락에 물 콕찍어 눈꼽만 띠기도 했지만
영하 9.9도까지만 합니다.
영하 10도부턴 장병의 건강을 고려해
그 날은 안해도 된답니다.
아침 점호시
"쓰벌 이렇게 추운데 영하 10도 안된단 말야!"
"누가 잰거야? 실제 온도로 하자고 그래"
고참들의 불만이 많았었지요.
이동
그당시 이동은 일동에 비해 덜 유명(?)했습니다.
대부분이 면회라도 오면 일동에 가서 먹고 놀고 그랬는데.
이동은 대중목욕탕이 있어서 어쩌다 이 방향으로 외출가면
션하게 묵은 때 벗기고 오는 정도였죠.
여하튼 다들 일동을 선호 했어요
그 당시 일동 막걸리가 이지역에선 최고로 쳐줬구요
회식때 일동 막걸리 공장에서 나온 비공식 막걸리
모래미라 불렀는데 (노래미 아님)
걸죽한 막걸리 엑기스로 돗수가 일반 막걸리의 몇배
양동이에 받아와 작은 주발로 한사발 들이키면
크~~악
그당시 이동갈비란 말은 듣도 보도 못했고
어찌 된일인지 지금은 막걸리하면 포천 이동 막걸리요
이동갈비란 수퍼 브랜드가 탄생됐으니...
누가 이동을 전국적인 브랜드화를 했는지...
백운계곡
여기도 무명의 계곡이었죠
행군할때 늘 지나는 곳
힘들면 잠시 쉬어가는 시냇물 정도 였는데...
한번은 훈련 나갔다 돌아오는길에
빨리 돌아가고자 내무반원들과 의기 투합하여
지름길 찾아 산길을 넘기로 했지요
독도법(지도만 보고 찾아가기) 같은 건 다들 기본이니.
저도 유난히 방향찾기에 능숙했고(?)
저는 산세도 잘 안다고 깝죽대면서
부대 뒤편 대공초소와 장교막사 사이로 떨어지면
일찍 부대가서 쉴 수 있다고
그때 분위기에 일조했는데.
내려와 보니 여기더라구요
난감 여기선 몇시간 다시 가야하는데
제일 먼저 생각나는게
밥때 놓쳐 저녁 못 먹을 것 같은
두려움 공포
상병 월급 2천원 정도인 어려웠던 시절
돈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의외로 간단히 해결됐습니다.
버스에 사정 말 하고 공짜로 타고 부대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서 통과
마치 공무상 나갔다 온 것 처럼
수 없이 걷고 또 걸었던 그길이
지금의 백운 계곡입니다.
박달산
이 계곡 주위엔 유격장이 있습니다.
박달유격장
사실 지명을 딴 이름인데
이름이 왠지모를 긴장감을 주는 곳입니다.
이정표가 보이네여
간단히 '화생방교육장'이라고
저는 말년때까지 유격훈련을 안받았습니다.
소수의 부대이기때문에
각종 일과 경계근무를 핑계로 유격 받는 사람은 반도 안되었죠.
"군에 왔으니 유격 한번 하고 제대해야지"
말년에 괜한 허세로
유격장에 입소합니다.
입소 당일날 후회했습니다.
폐 곡물창고에서 잠들어
마지막 전날은 본의 아니게 땡땡이도 치고...
고지에 올라
혹한기 진지 훈련이란게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추운데
가장 춥다는 1월 말경 부대를 떠나 1-2주 나가서 하는 훈련입니다.
전쟁이 계절을 안 가리니
이런 훈련이 생긴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건 적을 대비한 훈련이아니라
추위와의 전쟁이었던 것 같습니다.
군용내복안에 집에서 공수해온 스타킹까지
껴 입을 대로 껴입어 굴러 같을 것 같은 몸으로
이동 할때면 어기적 어기적
밥 먹고 잠잘 텐트 손 보는게 하루 일과요
보통 계곡 근처와 타지역의 산에서 훈련을 하게됩니다.
이 기간 나는 산에 오릅니다.
두명이 같이 오르는데 목적은 타 부대와의 무전망 개통
000고지라 불리며 높이만 있고 이름 없는 봉우리입니다.
무전기 두대 또 예비 무전기
일주일치 먹고 잘 보급품
엄청난 양의 무전기 배터리
몇시간 쓰는 배터리가 엄동설한에 수명이 더 짧아...
지금은 많이 좋아졌겠지
무전기 하나가 군장무게와 비슷하니...
둘이 메고 길 없는 산을 오른 다는 건....
아침에 출발해서 점심때 한참 지난 무렵에 정상에 도착합니다.
10미터 올라가고 쉬고 이런식으로. 물론 네발로
에프엠대로 한다면 훈련시에 총을 휴대해야합니다.
입대한지 얼마 안되어 총이 M16에서 K1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무겁습니다.
방독면은 엄청 큽니다. 부대내에 이 두가지는 철저하게 숨겨놓고 올라갑니다.
얼마전 40킬로 쌀푸대 메고 옮기다가 허리 삐끗했는데,
아마도 이정도 무게 메고 올라가지 않았을까...
이런 산의 정상은 군인 외에는 밟지 않은 처녀지 같습니다.
동서남북 뻥 뚤린 정상
땀으로 범벅된 몸이 금방 얼어 붙으며 추위를 느낍니다.
작년에 다녀갔던 병사가 남긴 흔적이 있습니다.
커다란 깡통에 솔방울과 나뭇가지 모아 잠시 손을 녹입니다.
바쁩니다
온통 눈인데
잠잘 준비를 해야합니다.
이후 1주일간의 달콤한 휴가같은 시간이
눈위에 펼쳐집니다.
춥지만 온 주위에 땔감은 천지입니다.
ㅇㅇ산
멀리 보이는 750미터 높이의 산이 있습니다.
민간인 출입금지의 산으로
부대 주변의 산보다 낮은 이 산은 동서의 주요지역으로 뻥뚤린 탓에
정상부근에 기지가 있습니다.
늘 이 기지와 무선통신을 주고 받는데
훈련시에는 직접 파견도 갑니다
저도 혼자 2주정도 있었던 기억이...
정상까지 길이 잘 닦여 차로 편하게 올라가고,
타 기지인 덕에 나는 이방인이 됩니다.
주황색 츄리닝으로 내내 딩굴딩굴했습니다.
밥 얻어먹고
서로 다른 소속이니 계급과 관계 없이 도란 도란 사회 얘기 하면서
편하면서 지겨운 2주였죠.
중계장비 고장만 안나면...
(장비고장은 훗날 말년인 나를 영창 앞까지 가게 합니다)
이 산이 최근에 개방되어
지금은 수려한 산세로 주목을 받고 있다는 군요
정상부근의 마지막 9부 능선부터는 여전히 철조망으로 막힌
군사지역이라고 합니다.
월동준비
이즈음 부대는 겨울 준비에 한창입니다.
쫄병땐 견지낚시할때 입는것 같은 전신장화 신고
지하 김치창고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김치와 김치사이를 어기적 어기적.
약 한달간 아침 먹고 산으로 나갑니다.
싸리나무 베고 시설물 보수하고...
부수적으로 칡이나 더덕 이런거도 챙겨오고
겨우내 눈과의 전쟁을 위한
제설도구(이걸 뭐라고 하더라?) 만들고...
뻬치카용 석탄이 산더미 처럼 들어오는 것도 이 시기죠.
뻬치카에 올려 놓은 후, 끓이지 않고 먹는 봉지라면의 기억
많이들 아시죠!
남녀가 골고루 있는 모임에서
여자들이 제일 듣기싫은 이야기
베스트 3위가 축구 이야기랍니다.(월드컵 치루고 좀 달라진것 같기두)
그리고 2위가 지금 얘기하는 군대 얘기
한탄강에 빠진 이야기
팀 스피리트
홍수난 해
벙커의 향연 등등
생각하면 할 수록 지난 기억들이
솔솔 떠오르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