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5월 17일,
대망의 꿈을안고 서울가는 비들기호 기차를 탓읍니다,
낮 열차면 좋았으련만 밤열차 입니다.
고향은 전북 정읍의 (지금은 정주시) 읍에서도 12킬로 정도 더 들어가는 깡촌이었읍지요.
말이 대망의 꿈이지.
먹을게 없어서 밥 그릇 숫자를 줄일려고,
알음 알음해서 서울의 성북구 종암동의 한 양말공장에 취직을 합니다.
이때만해도,
공장이라는곳이 바쁠땐 밤 낮없이 일을 시키곤,
일이 없으면 시골로 보냅니다.
옷한벌 신발 한켤레 사서 입히고 신겨서.
왕복 차비만 주면서 편지하면 올라오라 하네요!
시골가면 무얼 하나요.
한이틀 쉬었다가 다시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고 꼴도 베고
남의 일도 하면서 연명을 하다가 편지가 오면 또 서울로 갑니다.
울면서,
그때는 서울 가는게 꼭 죽으러가는 기분 이엇걸랑요.
저는 그공장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틈틈이 자전거 배달도 햇드랫지요.
동대문 시장과 평화 시장 중부 시장 등에요,
한날은,
사장님의 동생이 해군 대령 이었엇는데.
미국에 교육 받으러 다녀 오면서 그레이 하운드라는 12단 경기용 자전거를
한데 사서는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에게 선물을 했는데.......
학교 통학중에 사고를 내는 바람에 그 자전거가 제손에 들어오게 됏엇답니다.
이때부터.
제 허파에 바람이 들기 시작 했답니다.
그러다.
한날 사장님댁 지하실 청소를 하는데 기가막힌 낚시대가 있더라구요,
생전 처음보는 한번도 써보지않은 가방도 새가방에 일제인데
이름은 몰라요.ㅎㅎ 그때는 영어의 알파벳도 몰랏으니까요!
사모님께.
여쭤봣쥬 저건 뭐냐구요,
사모님 왈 너 낚시할줄 아니 하시데요.
네 햇더니 저보고 하래요.
고기 잡으면 가져 오라면서요,
에효,
담에 해야 돼겟네요!
어께가 아파서요 독수리타법 이라서요,
요때엔,
서울역 앞에 남대문 가기전 좌측에
수출탑이 있엇는데요.
수출목표 100만불 이라는 문구가 눈에 띠었엇지요 ㅎㅎㅎ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몰랏지만요,
마이크로 버스가 있엇구요,
전차가 잇엇는데 3원에 두장 한장은 2원 이었지요 아마도,
큰 건물은 학교 아니면 교회 건물 이더라구요.
제눈엔 그랫엇습니다,
고대셍들,
거의 매일같이 데모하고 그런 기억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