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는데 온 세상에 겨울 같은 역병이 몰아치고 있다.
뜻하지 않은 잉여살이, 마스크를 단단히 하고 인근 공원에 갔다.
평소 같으면 엄청 붐빌 운동기구도 낮잠을 자고 있다.
하얀 목련꽃이 벙그러져 피어 있다.
카메라에 담기 위해 목울대를 곧추세우고 찍는데,
흔들어대는 봄바람에 쉽게 초점이 잡히질 않는다.
목련이 너무 예쁘다.
먼 기억 속 그녀의 우윳빛 가슴을 닮았다.
갑자기 불타는 열정을 담아 입맞춤하고 싶어 졌다.
***
이때쯤이면 꼭 생각나는 시가 있다.
자연을 소재로 일상의 생각과 성찰을 노래하는 서정시인
복효근 시인님의 '목련후기'이다.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 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봄의 찬란한 빛을 반사하며 흰 빛이 더욱 눈부신 목련 꽃잎.
'순백의 눈'에 비유될 만큼의 아름다운 이 꽃이
어느 날,
누런 수의(壽衣)로 갈아 입고 맥없이 땅으로 낙하될 무렵,
꽃잎은 피돌기라도 하는지 약한 맥박과 호흡이 느껴진다.
슬프다.
마치 우리네 인생 같아서...
( 잠 못 이루는 새벽에.. 주야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