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바다를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다 가운데 서면 사면팔방이 탁 트인, 아무 거칠 것 없는 자유와 평등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때문 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이유도 마찬가집니다. 그저 시원한 것이 좋아서입니다.
어제는 한객기의 센 조류 탓인지 물빛은 몹시 흐리고 고기들은 입을 다물었는지 포인트를 찾으려 애쓰는 선장의 목소리는 거의 애원에 가까웠습니다. 어쩌다 올라오는 광어 한 마리 혹은 이제 막 부화한 것처럼 보이는 우럭모양의 치어들. 그나마 자리 편차가 심해 내 자리, 고물 쪽은 입질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완전 전멸했습니다.
‘맑은샘님 물 칸은 비었고.....’선장의 부인 병아리가 회 타임 준비하느라 뜰채를 들고 한 바퀴 돌다가 내 앞에 이르러 기어이 한마디 하고 갑니다. ‘아니, 그렇게 광고방송까지 할 건 뭐야?’ 나도 질세라 한마디 던질 수밖에.
이런 최악의 상태야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기에 괘념치 않는데 모처럼 방학을 맞아 일가족 나들이 나온 분이 계셔서 좀 신경 쓰이더군요. 바다낚시 나오시면서 얼음을 무엇에 쓰는 지도 모르는 가족이었으니까요. 그들은 낚시도구조차 하나도 가지고 온 것이 없었습니다. 알고 온 건 지금 탄 배가 인천에서 가장 가족적인 배라는 정보 하나 뿐......
병아리가 횟감을 손질하는데 여느 때와는 약간 다른 느낌입니다. 우선 여러가지 야채가 엄청 많습니다. 어느 가족이 회 무침 하려고 미리 준비해 왔답니다. 손바닥만 한 우럭 몇 마리, 자그마한 광어, 그리고 횟감이 부족하니까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장대까지 대접받습니다. 낚시 시작하자마자 올라왔던 쓸 만한 우럭을 여기에 보태지 않고 호기롭게 방생한 것이 약간 미안했지만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낚시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니까요.
남의 요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려니 불쌍해 보였던지 간이 잘 배었는지 맛보라고 한 젓가락 집어줍니다. 염치불구하고 받아먹습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맛있는 우럭회가 들어간다.’
싱싱한 회에 상큼하게 배인 식초의 맛. 그리고 사근사근하게 씹히는 채소들. 빨갛게 파랗게 울긋불긋한 색의 조화.
준비가 다 끝난 후 접시에 담기에 아! 이제는 눈요기마저 끝났구나! 하며 침을 꼴깍 삼키는데 접시 두 개를 우리 쪽에 밀어 놓으며 ‘맛있게 드세요.’ 살짝 윙크하며 나머지 접시들을 원래 주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이물로 가져갑니다.
이렇게 예쁠 수가!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술병이 나오고 조용하던 자리가 갑자기 활기차게 바뀝니다. 엄마아빠와 함께 온 초등학생이 자기네 가족은 내어 놓은 것이 없어 미안한 듯 망설이기에 같은 배를 타면 모두 한 가족이라고 일러주며 그 부모에게는 준비해 간 복분자 술을 권했습니다. 어린 학생이 맛있게 먹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복스러워 보입니다.
삽시간에 모두 즐거워졌습니다. 회가 약간 부족하다 싶었는데 또 어디선가 광어를 가져와 다시 한 접시 남겨놓습니다. 삥땅 친 것 아니랍니다. 미리 양해를 구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어 먹는데 동의했답니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습니다. 새로 준비된 안주에 맞게 어디선가 매실주가 또 한 병 나왔습니다.
선장이 다시 포인트 이동을 합니다. 작심한 듯 오랜 시간 달립니다. 멀리 해안에 쌍으로 길게 늘어선 화력발전소 전봇대가 한데 겹쳐 하나로 보이다가 다시 원래 모습, 두 개로 나뉘곤 합니다. 합쳤다 나뉘는 모습에서 겹친 모습이 풀릴 때 무언지 모를 아쉬움이 남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지나가지 말고 그 주위를 맴돌면 두 번씩은 정기적으로 겹쳐 보일 텐데........ 아마 아직도 평행선을 그으며 아옹다옹하는 우리 민족의 모습이 나도 모르게 갈라서는 전신주에 투영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잠시 아쉽다고 주위를 뱅뱅 돌기만 하면 전진이 없습니다. 비록 잠깐 동안의 만남과 작별이 서럽더라도 계속 앞으로 나가 아주 멀리 나가면 모든 것이 다시 하나로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마리는 방생하고 눈망울이 제법 또랑또랑한 우럭 한 마리 그리고 장대 두 마리가 집에 가져다 줄 선물이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쿨러가 가벼우면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기 마련이었는데 오늘은 왠지 돌아가는 발길이 가볍네요.
늦게나마 인생을 즐기는 방법, 조금 배운 것 같습니다.
저도 어제 병아리배 타려다가 간발의차로,
다른분이 먼저 신청하셔서 눈물을 머금었답니다.
모처럼 뵙고 함께 해보려했는데 아쉽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병아리배 같이 타시자구요.
막바지 더위가 엄청스럽습니다. 더위 잘 이기시고 찬바람 드는날 뵙기를 기대합니다.
평안한 일상생활 즐기시고 안녕히 계세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