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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주세요 배낚시

[조행후기]
2008.08.08 14:15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

조회 수 3961 댓글 7
  어제 시원한 바람도 쐴 겸 가까운 바다로 나갔습니다. 너무 더워서 그런지 바닷바람도 별로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바다를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다 가운데 서면 사면팔방이 탁 트인, 아무 거칠 것 없는 자유와 평등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때문 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이유도 마찬가집니다. 그저 시원한 것이 좋아서입니다.

  어제는 한객기의 센 조류 탓인지 물빛은 몹시 흐리고 고기들은 입을 다물었는지 포인트를 찾으려 애쓰는 선장의 목소리는 거의 애원에 가까웠습니다. 어쩌다 올라오는 광어 한 마리 혹은 이제 막 부화한 것처럼 보이는 우럭모양의 치어들. 그나마 자리 편차가 심해 내 자리, 고물 쪽은 입질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완전 전멸했습니다.

  ‘맑은샘님 물 칸은 비었고.....’선장의 부인 병아리가 회 타임 준비하느라 뜰채를 들고 한 바퀴 돌다가 내 앞에 이르러 기어이 한마디 하고 갑니다.  ‘아니, 그렇게 광고방송까지 할 건 뭐야?’ 나도 질세라 한마디 던질 수밖에.

  이런 최악의 상태야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기에 괘념치 않는데 모처럼 방학을 맞아 일가족 나들이 나온 분이 계셔서 좀 신경 쓰이더군요. 바다낚시 나오시면서 얼음을 무엇에 쓰는 지도 모르는 가족이었으니까요. 그들은 낚시도구조차 하나도 가지고 온 것이 없었습니다. 알고 온 건 지금 탄 배가 인천에서 가장 가족적인 배라는 정보 하나 뿐......

  병아리가 횟감을 손질하는데 여느 때와는 약간 다른 느낌입니다. 우선 여러가지 야채가 엄청 많습니다. 어느 가족이 회 무침 하려고 미리 준비해 왔답니다. 손바닥만 한 우럭 몇 마리, 자그마한 광어, 그리고 횟감이 부족하니까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장대까지 대접받습니다. 낚시 시작하자마자 올라왔던 쓸 만한 우럭을 여기에 보태지 않고 호기롭게 방생한 것이 약간 미안했지만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낚시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니까요.

  남의 요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려니 불쌍해 보였던지 간이 잘 배었는지 맛보라고 한 젓가락 집어줍니다. 염치불구하고 받아먹습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맛있는 우럭회가 들어간다.’
  싱싱한 회에 상큼하게 배인 식초의 맛. 그리고 사근사근하게 씹히는 채소들. 빨갛게 파랗게 울긋불긋한 색의 조화.
준비가 다 끝난 후 접시에 담기에 아! 이제는 눈요기마저 끝났구나! 하며 침을 꼴깍 삼키는데 접시 두 개를 우리 쪽에 밀어 놓으며  ‘맛있게 드세요.’ 살짝 윙크하며 나머지 접시들을 원래 주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이물로 가져갑니다.
이렇게 예쁠 수가!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술병이 나오고 조용하던 자리가 갑자기 활기차게 바뀝니다. 엄마아빠와 함께 온 초등학생이 자기네 가족은 내어 놓은 것이 없어 미안한 듯 망설이기에 같은 배를 타면 모두 한 가족이라고 일러주며 그 부모에게는 준비해 간 복분자 술을 권했습니다. 어린 학생이 맛있게 먹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복스러워 보입니다.
  삽시간에 모두 즐거워졌습니다. 회가 약간 부족하다 싶었는데 또 어디선가 광어를 가져와 다시 한 접시 남겨놓습니다. 삥땅 친 것 아니랍니다.  미리 양해를 구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어 먹는데 동의했답니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습니다. 새로 준비된 안주에 맞게 어디선가 매실주가 또 한 병 나왔습니다.

  선장이 다시 포인트 이동을 합니다. 작심한 듯 오랜 시간 달립니다. 멀리 해안에 쌍으로 길게 늘어선 화력발전소 전봇대가 한데 겹쳐 하나로 보이다가 다시 원래 모습, 두 개로 나뉘곤 합니다. 합쳤다 나뉘는 모습에서 겹친 모습이 풀릴 때 무언지 모를 아쉬움이 남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지나가지 말고 그 주위를 맴돌면 두 번씩은 정기적으로 겹쳐 보일 텐데........ 아마 아직도 평행선을 그으며 아옹다옹하는 우리 민족의 모습이 나도 모르게 갈라서는 전신주에 투영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잠시 아쉽다고 주위를 뱅뱅 돌기만 하면 전진이 없습니다. 비록 잠깐 동안의 만남과 작별이 서럽더라도 계속 앞으로 나가 아주 멀리 나가면 모든 것이 다시 하나로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마리는 방생하고 눈망울이 제법 또랑또랑한 우럭 한 마리 그리고 장대 두 마리가 집에 가져다 줄 선물이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쿨러가 가벼우면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기 마련이었는데 오늘은 왠지 돌아가는 발길이 가볍네요.

늦게나마 인생을 즐기는 방법, 조금 배운 것 같습니다.

Comment '7'
  • ?
    박형수 2008.08.08 18:20
    맑은샘님 안녕하세요. 풍류를 느끼고 오셨군요.
    저도 어제 병아리배 타려다가 간발의차로,
    다른분이 먼저 신청하셔서 눈물을 머금었답니다.
    모처럼 뵙고 함께 해보려했는데 아쉽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병아리배 같이 타시자구요.
    막바지 더위가 엄청스럽습니다. 더위 잘 이기시고 찬바람 드는날 뵙기를 기대합니다.
    평안한 일상생활 즐기시고 안녕히 계세요. 꾸벅~
  • ?
    맑은샘 2008.08.09 08:52
    그랬군요....좋은 기회가 아쉽게 흘러 갔네요. 정말 덥습디다. 이제 말복이 지났으니 좀 시원해 지려나...8월28일 또 예약했습니다. 시간 나시면....
  • profile
    민평기 2008.08.09 12:36
    날이 많이 더우니 가까운 곳을 주로 찾으시는가 봅니다.
    맑은샘님만의 즐거운 어요일을 보내셨군요.
    글에 '왠지'라는 표현을 하셨지만
    맑은샘님 돌아오는 길은 조과에 관계없이 늘 가벼운 발길이실 것 같습니다.
    지난 글을 쭈욱 봐온 바로...
  • ?
    맑은샘 2008.08.09 17:16
    이 무더위에 민사장님도 안녕하시지요?
    저야 어딜가나 언제나 소위 말하는 '꽝 조사'니까 이렇게 마음이라도 비워야 바다에서 받아 줄 것 같아서요.ㅎㅎㅎ.
    그런데 가끔 마음을 비우다가 잘 못해서 머리를 비운답니다.
    그래서 골프를 쳐도 항상 슬라이스나 훅으로 고생하지요.
    바다에서는 뒷땅 치다가 침선에 걸리고.
  • ?
    동해() 2008.08.09 22:16
    혹...? ㅊㅈ5ㅎ 아난감유????
    병아리배 타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던데....
    운이 좋은신가봐유....ㅎㅎㅎㅎㅎ
  • ?
    맑은샘 2008.08.11 08:53
    동해님 말씀처럼 그 배는 원하는 날 타기가 좀 어렵습니다.
    주말엔 항상 만원이니 한 달 정도 미리 준비해야 되더군요. 저는 주중에 나가는 습관이 있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그 날도 사실은 예약 대기로 기다리다 나가게 되었답니다.
    언제 만날 기회가 있으면 정중히 인사 올리겠습니다.
  • ?
    강두석 2008.08.12 10:23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는일 없이 바쁜척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제법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네요, 이제 정확하게 일주일 남은 여름 휴가.....선생님처럼 바다를 좋아하고, 낚시를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더러는 가벼운 쿨러에 만족하고 웃으며 내일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옮길때 우리의 바다가 아름다워 보이며 진정한 삶을 느끼리라 생각됩니다. 무더위가 계속되다보니 수온상승과 함께 괴기들도 깊은 물속으로 피서 여행 떠났나 봅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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