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방송의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편을 보았습니다.
임태경이란 가수가 故김정호의 노래 '이름모를 소녀'를 부르더군요.
우수에 찬 눈빛이며, 부드럽게 고음까지 소화해 내는 섬세한 가창력, 그의 감정선에 내가 녹아들어 갔습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위대한 음유시인이자 가수인 김정호가 살아 돌아온 듯...
한을 토해 내듯한 감성적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은 감출 수가 없었지요.
~ ♬ 달빛 젖은 ~ ♪ 금빛 물결 바람에 이누나~♩~
갑자기 눈앞에 어리는 푸른 물결에 일렁이는 파도, 그리고 달빛 젖은 바다가 그리워졌습니다.
바다로 가고픈 충동, 복잡하게 여럿이 가는 것 보다 혼자 조용히 떠나는 가을바다가 더 운치 있을 것 같아
평소 마음속에 담아 둔 그리운 사람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마침 그가 관리 운용하는 카페에 본인 배는 이미 예약이 차 있고, 관리만 해 주는 지인의 배에 자리가 하나 남아 있어
예약을 원했고 그래서 성사 되었습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한 사람 곁으로 가라'라고 서울대 최인철 교수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한때 동호회에 '동행(同行)이라는 아이디로 함께 몸담고 있었던 가을같이 사랑스럽고 존경하는 후배이었지요.
천리포에서 9인승 배를 운용하고 있고 지금은 주꾸미 철이라 몽산포로 잠시 옮겨
가슴으로 손님을 맞는 행복男을 만나러 설렘 가득한 보따리를 싸서 떠납니다.
***
4차선 길을 빠져나와 2차선 몽산포로 가는 호젓한 시골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들판엔 온통 황금빛 물결이 가을 햇살에 일렁이고,
길가에 핀 천리향의 그윽한 향기 속에 도리질하며 춤추는 코스모스,
과꽃과 손잡고 노래하는 노란 국화, 보랏빛 청조한 쑥부쟁이와 사촌인 하얀 구절초의 수줍음이 고상하고 숭고합니다.
새털같이 뽀얀 억새가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는 야산...
건듯 부는 바람에 형형색색 흐드러지게 판 가을꽃들이 살랑살랑거리며 후각을 자극하는 이 동행들로 인하여
나를 황홀경에 빠지게 합니다.
몽대항에 서서히 밀물이 밀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곳에 친구의 농가 주택이 있어 한 때는 이곳에 내 집 드나들 듯,
대맛 잡으로 이곳 어부지리 동무들과 함께 자주 오고 했던 곳이어서 참 친숙한 곳이지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몽산포(夢山浦),
나지막한 산엔 쭉쭉 뻗은 적송들로 둘러 쌓여 있고, 앞쪽엔 옹기종기 모여 운치를 더해 주는 작은 섬들,
구름결 사이로 서서히 붉어지는 석양빛에 물들어 가면서 금빛으로 변해가는 물결...
이 절묘한 환상의 하모니가 빚어내는 꿈의 포구 몽산이 숨 넘어갈 듯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갈증이 솟아 캔 하나와 땅콩과자 한 봉지를 사서 방파제를 끝에 앉았습니다.
무작정 떠나고 싶은 계절,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고 싶은 계절,
나름 낭만을 만들며 추억을 켜켜이 쌓고 싶은 욕망의 계절,
스치는 가을바다의 서늘한 해풍과 달콤한 입맞춤도 참 좋습니다.
이런 날의 둥근 달밤과 별밤에 아니면 조각달이 눈 시린 밤하늘을 수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반짝이는 윤슬에 비상하는 갈매기, 삿대도 없이 유유히 흐르는 구름, 청량한 파도소리까지...
낡은 삶 일지라도 오늘 같은 밤이면 보람과 즐거움이 가을 홍시처럼 주렁주렁 열릴텐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며 가을바다를 촉촉하게 적십니다.
차를 몰아 인근 찜질방으로 향합니다.
사람이 몇 없어 조용하기만 합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오락가락하는 새벽녘 빗속의 몽산포에서 근 2년만에 동행(同行)아우님을 만났습니다.
고단하고 지치고 힘겨운 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을 나누며 친구가 되어주고,
때론 가족처럼 따습게 대해주는 그런 우리네 삶의 여로를 같이 묵묵히 걸어가 주는 것이 참다운 동행이 아닐런지요.
그런 사람인 동행님과 한 배를 타지 못하지만 서운하지만 만나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
수심 10m 내외의 거아도리 앞에서 채비를 넣습니다.
이번에 새로 장만한 아주 가볍고 비교적 짧은 루어대는 몸에 착 감기는 듯,
주꾸미의 숨결까지, 갑오징어의 발질까지 느낄 정도의 민감하게 잘 만들었네요. .(그 느낌 정도로..^^)
채비를 넣는 순간 묵직한 느낌으로 전율이 흐르는 순간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제법 커진 주갑을 번갈아 가며 가을바다에서 연을 날리는 기분,
낚시는 낙시(樂時)라는 말이 정말 실감납니다.
선수 쪽엔 일행들이 너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몰아가고,
옆엔 어르신 모시고 온 아드님과의 오붓한 밀어들이
하늘, 바람, 햇살에 섞여 더욱 자연이 향기롭고 아름다워집니다.
한 박스 사 들고 간 '봐콰쓰'(^^) 한병씩을 돌리며 제가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선장님의 여유와 해맑은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재치와 입담은 보너스죠...^^
앞쪽의 일행분들이 잠깐 앞으로 오라는 전갈을 받습니다.
물방울이 총총히 맺힌 페트병에 든 맑은 생명수가 눈에 번쩍 띕니다.
순간에 온몸은 그 향기에 파르르 떨고, 입을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조바심에
두어 잔이 목을 타고가며 마술을 부립니다.
안주로는 갈색 시루스를 벗긴 포동포동한 하얀 속살의 갑오징어...
채비는 갑오징어의 출몰이 잦은 탓에 일반적인 채비로 공략했습니다.
주꾸미는 아래 애자에 그리고 갑이는 위의 에기에 잘 붙습니다.
새로운 신품들보다 역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 온 왕눈 에기를 번갈아 가며 사용하였지요.
역시 촉이 좀 길고 예리하여 훅킹율이 높아서 떨굼이 적어지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다른 에기에 비해 눈이 커서 주갑이의 공격성을 자극해서 그런지 주갑이가 더 잘 올라타는 것처럼 느껴지구요.
참고로 자작하실 때는 애자와 에기 사이의 기둥줄을 그림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대략 20cm 정도 간격을 두시고
만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가까이 두면 간격이 좁은 탓에 서로간의 엉킴이 많이 발생하는 사례를 많이 봤거든요..^^
마음을 들뜨게 하여 모두를 소년으로 또는 시인으로 만들어 주는 낭만과 추억 속으로 떠나시지요.
온 산야를 황금빛으로, 현란한 색채로 붉게 물들게 하는 풍요와 결실 그리고 사색의 계절이라 흔히들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우리 '아라 아띠'들은 쌓인 모든 것들을 다 품어주는 어머니 품 같은
바다에서 또 다른 일상을 한번 만나시는 것도 겨울나기 발끈한 에너지 충전을 위해서도 좋을 듯합니다.
사루비아 넓은 꽃밭같은 은빛 물결, 일렁이는 파도를 타면서 소곤소곤 바다의 속살을 더듬고 있습니다.
조금인 오늘, 물심도 적당하고 물색도 좋아 주갑이 잡기에 그만인 날, 모든 시간의 흐름조차 멈춰 선 듯한 이 바다에서
가슴을 활짝 열고 태공의 한가로움에 한없이 젖어봅니다.
이 정도면 사이즈면 쿡쿡쿡 처박는 손맛과 함께 초릿대가 활처럼 휘어지는
짜릿한 눈맛까지 느낄 수 있었겠지요.
검정고무신에 빨간 양말, 각설이 패션에 해맑은 소년처럼 여유로운 표정을 가진 선장님...
재치와 고소한 입담이 즐거운 오늘 만들기에 일조하셨습니다..^^
문어인지 주꾸미인지..
일년생이란 주꾸미가 이렇게 클 수가 있을까.... 혹시...ㅋㅋㅋ
오륜(五倫)의 하나인 부자유친(父子有親),
부자간의 도(道)는 친애(親愛)에 있다는 말로,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잘 섬김으로써
진정한 부자간의 도리가 있다는 뜻이죠.
낚시를 하면서 소곤소곤 주고받는 대화며 챙겨주는 모습이 어찌 그리 다정하며 사랑스럽게 보이던지요.
어르신!~ 아드님 존경과 사랑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원합니다.
언젠가 제가 가르치던 서당에서 '부자유친'이 뭐냐고 물어보니 " 네~ 훈장님, 부잣집 아들과 친하게 지내라는 뜻입니다.."
이런!~~ 富者有親.... 오늘날 회자되며 세태를 잘 반영한 유행하는 웃지 못할 사자성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오늘의 백미(百媚),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주꾸미 라면을 보니 침이 고이면서 흥분이 됩니다.
일반 라면인데도 불구하고 쫄깃한 면발, 얼큰하지는 않지만 싱싱한 주꾸미를 넣어서 그런지 깊고 담백한 국물맛이
주꾸미의 쫄깃한 식감과 더불어 땡기는 생명수 또 한잔을 들이킵니다.^^
입은 감탄사를 쏟아내며, 가슴은 황홀감에....
이렇게 가을바다까지 풍요로움을 더해주니 이것이 진정으로 사는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악처럼 흐르는 바람을 타고 엔진을 끈 배는 조용히 잔잔한 파도타기를 합니다.
아침은 초면이었으나 우리는 벌써 구면이 되어 하나의 가족처럼 편안한 여유와 행복을 즐깁니다.
낚시는 이런 즐기는 것을 전제로 가는 것이 아니냐면서... 맞습니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지요.
욕심 많은 이분은 자기 몫을 들고도 옆사람의 몫까지 하마 같은 입으로 넙죽넙죽 받아먹습니다.
분위기가 얼마나 좋던지요...
아름다운 그림에 저도 찰칵!~ 순간을 때렸습니다....ㅎㅎㅎ
동행(同行)이 동행(同幸)이 되어주신 단체 분들과 부자유친님께 수고하신 선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바람이 터집니다.
물살 따로 바람 따로 선장님은 키를 잡아보지만 줄이 많이 풀립니다.
입질도 뚝 끊기고 먹을만치 잡았으니 합의로 일찍 들어가자고 앞쪽 일행들이 제안합니다.
저야 좋지요...^^
가까이서 함께 열심히 조업(釣業)한 생활낚시 달인, 아라리호 박선장님도 불순한 일기로 조기 철수하여
손님들께 맛난 점심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어부지리 조우님들,
늘 건강하시고 행운이 가을 단풍같이 아름답게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면서....
주야조사..1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