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아무때라도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더욱 행복하다.
늘상 느끼는 일이지만
해도 뜨지 않은 캄캄한 새벽..
낚시장비를 둘러매고 뱃전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바다낚시란,
정말로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취미생활인것 같았고,
해풍에 그을린 비슷비슷한 사람들의 모습은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저들도 어쩌면 나처럼 지친 삶을 한순간 위로받기 위해
바다를 찾는 게 아닐까도 싶어서
동병상련의 애틋함마저...
5개월전 호기심에 처음 경험했던 선상 낚시 -
처음에는 초보 여조사라는 핑계로 일행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젠 채비연결도 능숙(?)하게 할 줄 알게 되었고,
미꾸라지 기절시키는 일이나, 우럭 입속에 손을 넣어 바늘을 빼는건 잘 못해도
어초낚시에서 만세(?)를 부른다거나,
밑 걸림정도는 혼자 힘으로 해결 할 만큼의
기초(?)실력도 늘었다.
2년만에 나타났다는 문어 조황사진을 보면서
처음에는, 체력을 필요로 한다는 말에 겁(?)을 먹고 엄두를 못냈는데,
운칠기삼이라는 말도 있고,
문어는 다리가 여러개인데다 빨판도 많으니까
어느곳이든 바늘이 걸릴 확률도 높지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에 용기를 내어
이제는 익숙해진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홍원항으로 향했다.
출조점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세시경..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문어낚시의 채비라든지 요령을 공부했지만
‘너덜너덜채비’가 좋다느니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올라온다거나 후킹이 되어도
놓칠 확률이 높다는등등 뿐. 딱히 귀에 쏙 들어오는 정보가 부족했다.
우럭과 문어 병행 낚시였는데
비싸다는 메탈지그는 채비손실이 걱정되어 사양했고,
쭈꾸미볼과 애기, 반짝이종이와 숭어낚시용 큰 바늘, 기둥줄 채비.. 미꾸라지 등을
구입하니 가격이 2만원정도..
미리 준비해간 돼지비계가 효과있기를 기대하면서 배에 올랐다.
새벽 네 시에 출항.. 낚싯대를 세팅해놓고
선실 문 앞에 벗어놓은 신발들을 풍경(?)삼아서
새벽 바람이 너무 추워 말 그대로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좀 더 따뜻한 옷을 입고 올 것을..하는 후회와 함께
꿈에서라도 문어를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아무래도 난 어복이 있나보다.
처음부터 5짜는 충분히 됨직한 우럭이 올라오더니
잡는 것마다 3짜 4짜 이상의 큼직한 우럭들이 올라오는 바람에
애기우럭들은 방생하는 여유까지 생길정도..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 아니라 '天高우럭肥'의 계절인가보다.
먼 바다배가 아니었음에도 선장님의 자상한 멘트와 포인트 선정으로
11시가 되기 전에 낚시경력 15년이 넘는 일행과 잡은 것을 합치니
33리터 쿨러는 뚜껑까지 가득차서 더는 넣을 수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식사 후의 문어낚시-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보이는 문어채비는 거의가 마치 성황당을 연상시키듯한 무당채비였고,
건너편 자리의 조사님은 채비만도 한 보따리라서 쿡쿡 웃음이 터졌다.
맨 상단에 봉돌을 달고, 중간에는 애기 두 개.. 하단의
쭈꾸미볼에 돼지비계와 색스러운 반짝이 종이를 달면서
문어채비는 그야말로 ‘묻지마 채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어의 취향(?)을 잘 모르니까 아무거나 일단은
많이 달아놓고 어디에든 물리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수심 15미터 정도..때론 4-50미터 정도-
일단 바닥을 확인하고 한 바퀴정도 감은 뒤 기다렸지만,
밑걸림과 비슷하다는 우럭이 올라탔다는 신호는 느낄 수가 없었다.
채비가 걸려서 빼내기를 여러번..
다행히 손실은 없었지만, 쭈꾸미볼의 바늘이 벌어졌고,
미늘이 없어서인지 돼지비계는 금방 달아나버려
우럭낚시하다 남은 오징어나 미꾸라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끼워봐도 속수무책..
아~~ 문어야. 제발 !!
바닥확인하고 조금 띄워보면 여러개의 바늘 때문인지 걸림을 자주 느꼈고,
챔질을 해보면 번번이 허당-
문어는 쉽사리 올라오질 않았다.
애인의 메일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보다 더할까 싶을 정도로
초조함에 기다리던 순간,
드디어 일행에게서 첫수의 신호가 오면서
수면위로 빨간 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어다!!
모두들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재작년에 문어낚시를 했던 경험자인지라 방법을 물었더니..
바닥에 내린 다음 잠시 기다렸다가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면서
그 과정에서 바닥걸림과는 다른 무게감을 느끼면 문어가 올라탄거니까
챔질을 한뒤 재빨리 릴링을 해보라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헛챔질하기를 여러번.
재미가 없어지는건 물론, 팔도 너무 아파서 포기하고 싶을 즈음..
배에서 두 번째 문어의 행운은 내게 찾아왔다..
고패질을 조금씩 해주듯이
낚싯대 자리를 옮겨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무게감이 느껴졌고,
릴링을 조금 하다가 무거워서 낮은 속도의 전동으로 올렸는데
사무장과 함께 뱃전에 붙은 빨판을 어렵게 떼어내면서도
흉측스럽게 생긴 모습조차 어찌나 고맙고 사랑스럽던지..
준비성 많은 일행이 가져온 양파망 비슷한 배추망에 문어를 담아
물통에 넣으면서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날, 한시간 반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포인트를 옮겨다니느라 기회가 적어서인지 문어조과는 좋지않아서
배에서 모두 잡은것을 합쳐도 불과 몇마리 정도..
엄청난 부피의 무당채비를 했던 조사님은 한 마리도 올리지 못했지만,
난, 봉돌과 애기 두 개, 쭈꾸미볼만 달려있었던 단촐한 채비로도 문어를 잡았으니
문어채비에 정답은 없나보다.
채비를 다르게 하고, 기술이 더해졌더라면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르나,
초보에게도, '묻지마 채비'에도 문어가 잡히는건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도전해 볼만한것 같아서
문어낚시의 재미를 더하게 해주는게 아닐까 싶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을까?
부족함 속에서도 채워짐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는...
돌아오는 뱃전에서
바다가 말했다.
우럭이든 대구든 문어든 얼마든지 있으니까
손맛이 그립거나,
살면서 힘들다고 느껴질 때..
그 때 다시 찾아오라고..
@@
따듯하게 가슴으로 느낍니다..
귀한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