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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하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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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테마낚시19 - 생활낚시

고기가 잘 낚이면 좋고 안 낚여도 그만 놀다 오는 야유회 낚시
태풍이 지나가고 장마전선이 오락가락하면서 한반도에 물난리가 났다. 이럴 때 낚시꾼들의 몸은 근질근질하면서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민물낚시는 아예 불가능하다시피 하고 그나마 바다 쪽으로 눈길을 돌려본다. 다행히 육지 가까운 곳으로 출조하는 ‘생활낚시’들이 있다. 생활낚시란 낚시꾼들에게만 통용되는 용어로 가족이나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가볍게 즐기면서 하루를 야유회처럼 보내는 낚시를 말한다. 고기가 잘 잡히면 좋고 못 잡혀도 바다 풍광을 즐기면서 즐겁게 놀다 오는 낚시를 말하는 것이다. 강원도 지역의 가자미낚시, 남해 서부와 동해 남부의 보리멸 낚시, 같은 지역의 고등어낚시, 목포와 진해만의 갈치낚시나 도다리낚시, 진해 통영권의 오징어낚시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수도권 생활낚시의 대표주자가 바로 인천 남항부두에서 출발하는 대형 낚싯배를 이용하는 우럭낚시이다.

우럭 낚시 훈련소인 인천 남항부두
인천 남항부두에는 40인 이상 승선할 수 있는 대형 철선 낚싯배가 여러 척 있다. 이들 낚싯배의 특징은 배가 크다 보니 멀미가 적고, 대개 배에 있는 아주머니들이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해서 손님들의 편의를 최대한 봐 준다는 것이다. 배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선장을 제외하고 대개 2명에서 4명 정도의 기관장과 아주머니들이 밥도 해주고 회도 떠 주고 엉킨 줄도 풀어준다. 선장 혹은 기관장은 초보자들에게 낚시 기술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우럭 배낚시를 시작하는 많은 사람이 사실은 이렇게 친목 모임이나 회사 야유회에 우연히 따라왔다가 그 매력에 빠져 선상 낚시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형 낚싯배에서 낚시에 열중하는 꾼들. 초보도 있고 베테랑도 있다.


나도 본격적으로 바다낚시를 시작한 것은 남항부두에서 우럭배를 타면서부터였다. 20년 전쯤 어느 해 가을 바다에 부서지는 햇살의 알갱이가 보고 싶어 인천항에서 덕적도로 간 적이 있었다. 그냥 가면 심심할까봐 던질 낚싯대를 하나 가져갔다. 덕적도 진리 방파제에서 망둑어 몇 마리를 잡고 당일로 돌아왔는데, 돌아올 때 인천 연안부두에서 동인천역까지 택시를 탔었다. 그때 택시기사가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물어보았고, 덕적도 갔다 오는 길이라고 대답했고, 뭐하러 혼자 갔느냐고 물어보았고, 햇살 알갱이를 보러 갔다고 대답할 수 없어 낚시하러 갔다고 했고, 잡았느냐고 해서 망둑어 몇 마리밖에 못 잡았다고 했다. 그러자 기사는 낚시하려면 남항부두로 가서 우럭배를 타면 고기 잘 잡힌다고 했고, 그래서 그 다음주인가 남항부두로 가서 최초로 우럭배를 탔었다. 그때 대박이 난 것이었다. 초보자인 나에게 제법 큰 우럭 여러 마리가 물어준 것이고, 다행히 멀미를 거의 하지 않는 체질이라 서서히 선상낚시에 빠져 들어갔던 것이다.


제법 씨알 좋은 광어를 올린 최철식 상무와 백성목 상무. 그들의 미소가 환하다.


현대해상의 윤용춘·최철식 상무, 오라클의 백성목 상무 그리고 나, 이 네 사람은 장마철이니 야유회 낚시나 가자고, 토요일 나가는 49인승 해동스타호를 예약했었다. 그런데 금요일 밤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이 폭우 속에 낚시를 할 수 있을까 하면서도 장마전선이 아침 이후에는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기상청 예보를 우리는 믿기로 했다. 예보가 틀리면 비를 맞기로 각오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 믿고 출조를 포기했다가 날씨가 좋아져 토요일 오후에 후회로 통탄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벽 배에 오르니 선실이 널찍해 40여 명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선창 밖으로는 빗방울의 기세가 대단했지만, 잠을 청했다. 두어 시간 잤을까,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빗방울은 약해졌고 배는 선재도와 영흥도를 잇는 영흥대교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한 30분 더 나가니 낚시 준비를 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안개가 조금 있어 시야가 좋지 않았으나 어림잡아 풍도 부근 해상인 것 같았다. 생활낚시답게 배 후미에는 직장에서 단체로 야유회 온 팀들이 왁자지껄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다. 부부팀도 여럿 있고 자녀를 데리고 온 팀도 보인다. 그들에게는 바다에 배를 타고 나왔다는 자체가 이미 신기하고 즐거운 것이다. 낚시는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고.

낚시가 시작된다. 수심은 20m 정도. 시작하자마자 배 후미에서 함성이 들린다. 고기 한 마리를 누가 낚은 모양이다. 박수 소리가 나고, 배에 있는 아주머니는 고기를 낚은 사람에게 달려간다. 기념사진을 찍어주기 위해서다. 고기를 잡은 사람은 그 순간만큼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부럽지 않다. 배가 크다 보니 여기저기서 함성이 올라온다. 내 옆자리에서도 최 상무가 먼저 우럭 한 마리를 올린다. 작은 크기지만 인천권에서는 만족해야 할 크기다. 나도 노래미 한 마리를 올린다. 우리는 다섯 마리가 되면 무조건 회 쳐서 한 잔 하기로 한다. 윤 상무와 백 상무의 합세로 다섯 마리가 되어 회를 쳐달라고 한다. 그 사이 나도 우럭 한 마리를 더 잡아 회에 보탠다. 간간이 내리던 비는 멈추고 날씨가 좋아진다. 우리는 야유회 낚시답게 게임을 하기로 한다. 광어 4점, 우럭 2점, 노래미 1점. 이렇게 합산해서 꼴찌는 4만원, 3등은 3만원, 2등은 2만원, 1등은 1만원. 이렇게 모은 돈은 다음 출조비에 보태기로 했다.


...


회에 소주 한 잔을 하면서 주위를 돌아보니 여기저기 술판이 벌어져 있다. 고기가 잡히는 대로 바로 회를 치는 것이고, 먹는 사람 잡는 사람 따로 있기도 하다. 아마도 잡는 사람이 그랬을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선상낚시를 가자고, 바다 경치 구경하고 자연산 회 실컷 먹고 오자고. 그 꼬드김에 따라오는 사람은 정말 실컷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그 약속대로 몇 사람은 열심히 잡고 몇 사람은 열심히 먹고 마시고 있다. 그들은 그 약속을 실천하기에 모두 행복할 것이다. 회를 먹고 다시 낚시를 시작한다. 백상무가 제법 큰 광어 한 마리를 올린다. 그 광어도 바로 회를 친다. 배의 아주머니들은 밥을 짓고 손님들이 회를 치고 남은 서더리로 매운탕을 끓여 근사한 점심 식사를 내온다.

점심을 먹고 낚시를 계속한다. 윤 상무가 연이어 광어를 올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철수 시간인 3시까지 가장 낚시 경력이 화려한 내가 꼴찌다. 내가 잡은 것이라고는 우럭 3마리에 노래미 두 마리, 점수로는 7점. 윤상무는 20점이 넘는다. 3시가 되자 선장은 10분 후에 철수하겠다는 방송을 한다. 그때다. 나의 낚싯대에 강력한 입질이 온 것은. 릴링을 하면서도 광어라는 것을 직감한다. 어종마다 힘쓰는 형태가 다른 것이다. 올리니 50㎝ 정도 되는 광어다. 9회 말에 2루타 정도는 친 것이지만 역전은 불가능했다. 결국, 꼴찌한 내가 4만원을 냈다. 장마철의 한 토요일은, 오후부터 잠시 화창해진 날씨의 덕을 받아, 그렇게 즐겁게 지나갔다.




Commen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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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부지리(민평기) 2011.07.27 17:04
    강물님, 워드에서 옮기셨을 텐데 글이 깨지지 않고 잘 올라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본 글이 최근 글인 줄 알고 있습니다. 제일 앞으로 위치 조절했습니다.

    나중에 글 순서는 바꿀 수 있습니다.
    지난 글 포스팅 할 때도 글 순서는 신경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남항부두 우럭배낚시... 옛 생각 떠올리며 즐감했습니다!
  • ?
    감성킬러 2011.07.27 17:48
    <작은 크기지만 인천권에서는 만족해야 할 크기다.>
    <몇 사람은 열심히 잡고 몇 사람은 열심히 먹고 마시고 있다. 그들은 그 약속을 실천하기에 모두 행복할 것이다.>...

    정말 가슴에 와닿는 구절이 많습니다.
    강물님의 글이 이런 느낌이 군요.
    글을 역순으로 읽었던 이유는 '생활낚시'라는 타이틀이 눈에 들어와서 입니다.
    한도 끝도 없이 높아만 가는 선상낚시의 눈높이가 새삼 부담으로 다가오는 요즘 취미생활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좋은 글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아마츄어도 맘껏 즐거울 수 세상'이 좋은 세상 같습니다.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