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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하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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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테마낚시 23 - 부자(父子)낚시

전통적으로 사냥과 낚시는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오랜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보면 사냥과 낚시를 잘하는 것이 남자의 자격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돈을 잘 버느냐 혹은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느냐가 능력남의 중요 척도지만, 원시 사회에서는 사냥과 낚시를 잘하는 남자가 건강한 남자이며, 또한 가족이나 집단의 생계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남자였다. 여자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선택하는 남자의 유전자는 낚시와 사냥을 잘하는 남자였고, 이 때문에 남자에게 사냥과 낚시의 기술은 생존뿐만 아니라 생식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매력남과 능력남이 되기 위한 필살의 사냥과 낚시 기술은 오랜 기간을 통한 실전 경험을 통해 완성된다. 이렇게 터득한 기술은 아버지 세대에게서 아들 세대로 전수되면서 그 완성도가 점점 높아진다. 인류가 오랜 진화 과정 속에서 지구상의 최강의 동물이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사냥과 낚시 기술의 전승과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현대에 오면 사냥과 낚시는 단순한 취미로 전락했다. 낚시를 잘한다고 여자들을 매혹시킬 수 없다. 오히려 허구한 주말마다 낚시 간다고 아내에게 달달 볶이지 않으면 다행이다. 경제적인 측면으로 봐도 낚시는 남는 장사가 아니다. 낚시 장비의 구입과 출조비를 상회하는 정도의 조과를 올리는 꾼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요즘도 아버지와 아들이 낚시를 할 때면, 모든 아버지는 아들에게 낚시 기술을 전수하려고 애를 쓴다. 세상살이에 별 도움도 되지 않는 낚시 기술을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붕어빵 부자의 행복한 모습


지금은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도 나는 낚시 기술을 가르치기에 한 치의 게으름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린천에 데리고 가 견지 낚시의 기술을 가르쳤고, 동해와 서해, 심지어 제주도까지 가서 낚시 기술을 가르쳤다. 아들이 잡은 고기는 피라미로부터 가자미, 우럭, 광어, 갑오징어 등등 그 종수도 많다. 한번은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럭 배낚시를 함께 갔는데 얼마나 잘 잡아내는지 선장이 낚시 신동이 나타났다며, 아들에게 돈 만원을 준 적도 있었다. 물론 나는 선장에게 고맙다며 팁으로 답례를 했다. 그것보다도 그날 나는 거의 낚시를 못했었다. 아들 녀석 채비에 미끼 달아주고 채비 걸리면 갈아주고 하다 보니 정작 나의 조과는 형편없었던 것이다.

군대 간 지 7개월 만에 휴가를 나온다고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는 당연히 아들이 ‘뭐 먹고 싶냐’가 관심사였는데, 전해 들으니 ‘회’라고 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어린 시절부터 광어니 우럭이니 해서 거의 토요일 저녁마다 수북이 쌓아놓고 먹곤 했는데, 군대 급식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자연산 회를 줄 리야 없지. 핑계 삼아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날 새벽 충남 신진도 항을 찾았다.



웜을 물고 올라오는 광어


요즘 막 맛이 오르기 시작한 광어 조과가 가장 좋은 것은 다운샷 낚시다. 전통적으로 우럭낚시만 고집하던 많은 서해의 배들이 우럭 자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광어 자원이 늘어나고 다운샷 낚시가 인기를 끌자, 사리 물때에는 아예 다운샷 출조를 많이 한다. 신진도 항의 영복호도 그중 하나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배를 모는 그 배는 낚시꾼들의 어설픈 낚시 기술의 전수가 아니라 본격적인 고기잡이의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제주도 아래에서는 태풍 꿀랍이 온다고, 많은 꾼들이 예약을 취소했지만 날씨가 좋기만 하다. 배는 신진도에서 서쪽 방향으로 약 한 시간을 달려 궁시도 근해에 이른다. 어제 이 해역에서 영복호 선장 부자(父子)는 둘이 낚시해 약 32kg의 광어를 낚았다고 한다. 자연산 활광어 현지 경매 시세가 kg당 2만2000원 정도라 하니, 약 70만원의 수입을 올린 셈이다.

내가 낚시하는 바로 옆에는 중학교 1학년이라는 아들과 함께 낚시 온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낚시꾼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나의 리플레이를 보는 것 같아 흐뭇하다. 배에 탄 10명 중에서 선장 부자와 낚시꾼 부자가 함께 타고, 내가 마음속에서 아들과 함께 타고 있으니 이 배에는 삼 부자가 함께 타고 있다. 아니다. 다른 꾼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니, 더 많은 부자가 이 배에 타고 있을 것이다.



궁시도 근해에서 다운샷 하는 장면


미끼로 흰색 야광 웜을 선택한다. 탁월한 선택인지 바로 입질이 들어온다. 끌어올리니 준수한 씨알의 광어다. 연이어 두 마리가 더 올라온다. 낚시 시작한 지 20여분 만에 세 마리의 광어. 이 정도면 대박이 날 징조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도통 입질이 없다. 색이 다른 웜을 바꿔 보고, 타이라바를 달고 해 보아도 도통 소식이 없다. 다른 꾼들은 가끔 우럭이나 광어를 올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오전 11시 가까이 되어서야 또 한 마리를 올린다. 회를 쳐서 사람들을 모은다. 같이 소주 한 잔씩 하는데 그때까지 선실에서 자고 있던 중학교 1학년 녀석이 회 냄새를 맡았는지 회 판으로 온다. 잘 먹는다. 아마도 아버지가 숱하게 잡아 가서 먹인 교육의 효과이리라.

회를 먹고 나서 그 녀석이 본격적인 낚시를 하기 시작한다. 하자마자 광어 한 마리를 끌어 올린다. 아버지가 더 좋아한다. 이어 두 마리 더 히트한다. 아침부터 잘 잡아내던 아버지에게는 입질도 없다. 다 그렇다. 나도 과거에 아들과 함께 해보니 그랬었다. 아들에게 입질이 연거푸 오면 아버지에게는 입질이 없게 마련이다. 그게 자연의 이치다.
점심을 먹고 드문드문 입질이 이어진다. 확실히 검은색 계열의 웜을 쓰니 우럭 입질이 잦다. 이번까지 세 번의 광어 다운샷 낚시를 하는데 나름대로 다운샷 낚시의 기초를 알 것 같다. 오후 네 시가 되면서 낚시를 끝마친다. 광어 7, 8마리에 우럭 두 마리가 총 조과다. 이 정도면 아들과 함께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한 양이다.



검은 색 계열의 웜에 우럭의 입질이 잦았다.


정오 무렵 약간 불던 바람은 오후가 되면서 잠잠해지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바다는 더 없이 평화롭다. 내가 힘이 없어져도, 바다는 여전할 것이다. 내 나이쯤 되어 아들도, 자신의 아들을 먹이기 위해 이 바다에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나도 한 점 얻어먹겠지.

Comment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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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유지영) 2011.09.17 09:00
    저는 강에서 자맥질로 쏘가리를 잡는 부친의 영향과
    맥가이버 같은 손재주 좋은 형의 영향을 받아 사냥부터 낚시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역시 두자녀에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5짜 우럭을 잡게해주는 경험을 해주었는데..
    이놈들은 낚시보다는 컴퓨터와 요리를 더 좋아 하고
    낚시 가자고 하면 얼굴색부터 바뀌네요.^^
    저는 나중에 회 얻어먹기 틀렸습니다.~~~

    가족 낚시를 하는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보기가 참 좋습니다.
    가족낚시는 잡기쉽고 반찬거리가 되는 낚시가 제격인듯하네요.
    테마낚시에 가족 얘기가 들어있어서인지 무척 포근하게 읽을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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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피쉬 2011.09.18 12:47
    좋은글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많은부분에서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공감이 많이 갑니다..
    제 가족과 함께 낚시간기억이 참으로 행복한기억으로 남더군요.특히 아들넘하고요..^^..어느때 부터 가족을 멀리하고 동호회다, 모임이다 해서 그쪽으로만 어울리다 보니 어느순간 "앗차" 하더군요 ...가족을 챙겨야할 제가 엉뚱한데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더군요,,저 위 사진한장이 저에 정신을 깨우네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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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미 2011.09.21 22:18
    아~ 그때 함께 낚시 하셨던 분이 하응백님 이셨네요..
    몰라 뵈서 죄송하네요.
    오랜만에 어부지리에 글을 읽다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부지리 싸이트에 저희 사진이 실리는 영광을 주셨네요.
    저희 부자의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다음 선상에서 뵈면 제가 먼저 잡아 회와 이슬이 대접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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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샘 2011.09.23 14:21
    어쩐지 낯익은 얼굴이다 싶어 몇 번 보았는데... 고구미님이셨구나.
    안녕하셨어요?
    아드님과 즐거운 시간 참 보기 좋습니다. (따님은 아니겠지... 그 집은 모두 예쁘니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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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미 2011.09.24 09:45
    맑은샘님 잘 계신지요?
    얼굴 뵌지 꽤 오래 되었네요..
    여전히 건강하시고, 낚시 자주 다니시죠?
    잘생긴 아들 맞습니다.. 중학교 올라가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 모처럼 주말을 이용해서 아들과 출조 하였네요..
    선상에서 또 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