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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하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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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테마낚시 24 - 제주도 갈치낚시

갈치를 잡으러 주말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오후 4시경 제주공항에 내리니 날씨가 너무 좋다. 투명한 초가을의 공기, 한라산 정상이 가깝게 보인다. 픽업 나온 차량에 올라타 성산항으로 이동한다. 낯선 길도 아니건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제주의 풍경은 싱그럽다. 무성한 활엽수들과 아기자기한 오름과 쭉쭉 곧게 자란 삼나무, 그리고 바다. 풍경에 취해 있으니 성산 일출봉이 보이고 이윽고 버스는 성산항에 도착한다.

예약해 놓은 배는 화원호. 통영에서 손님을 태우다가 제주로 이동했단다. 20명이 타면 간격이 좁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배가 길어 그런대로 낚시할 만하다. 얼마 전에 마련한 76리터 대형 아이스박스를 배에 싣고 자리를 잡는다. 이 아이스박스에 가득 채우려면 적어도 100마리는 잡아야 할 텐데, 하면서 속으로 피식 웃는다. 욕심임을 알기 때문이다. 낚시를 수없이 다녔지만 내가 마련한 아이스박스를 꽉꽉 채운 적은 20년 동안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우럭낚시를 가서 요행히 생자리 침선을 만나 순식간에 30리터 아이스박스를 다 채우고도 남아, 불행히도 멀미로 낚시를 못한 일행에게 여러 마리 나누어준 적도 있긴 있었던 것이다. 20년 동안 딱 한 번. 그런데 76리터라니! 하기야 100리터짜리 대형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다니는 꾼들도 본 적이 있기는 하다.



인근 갈치배들의 집어등 불빛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좌측부터 한라산, 일출봉, 우도 이다.


배는 성산항을 출발해 바다로 나아간다. 소처럼 길게 누운 우도와 왕관처럼 바다에서 솟구친 일출봉을 뒤로 하고 나아가다가 얼마 가지 않아서 멈추고 ‘풍’을 단다. 갈치배는 조류에 너무 밀리지 않게 하기 위해 일종의 낙하산 같은 것을 바다에 내린다. 풍이 없으면 조류 때문에 갈치잡이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풍을 내린 곳은 항구에서 30분도 나오지 않은 지점이다. 여수나 통영에서 출항하면 적어도 두세 시간을 항해한 다음 낚시할 장소에 도착하지만 제주에서는 멀리 나가도 1시간을 넘지 않는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짧아서 좋기는 하다.
서둘러 채비를 한다. 4미터 정도 길이의 갈치 전용대에 전동릴을 장착하고 바늘 일곱 개를 매단다. 바늘 하나 간격이 2미터 정도이니 채비 길이가 15미터는 족히 된다. 전문 어부들은 20개 바늘채비를 사용하기도 한단다. 익숙하지 않으면 엄두도 낼 수 없다. 일곱 개 바늘 채비도 바늘을 달고 미끼를 달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번 채비가 엉키면 풀기가 어려워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이다.

한라산 쪽으로 해가 진다. 바다로 빠지는 해의 모습에는 익숙하지만, 산으로 떨어지는 해의 모습을 바다에서 바라보는 것은 좀 낯설다. 낯설어도 낙조는 아름답다. 모든 낙조는 아름답다는 진술은 일반화의 오류를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채비 준비를 끝낸다. 냉동 꽁치를 예쁘게 썰어 미끼 준비도 마친다. 순식간에 해가 지자 바다는 갈치잡이 배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그중에는 혹 오징어잡이 배도 있을지 모르겠다.



씨알 좋은 갈치 쌍걸이. 바로 옆의 조사님.


선장은 수심 30미터 정도만 채비를 내리라고 한다. 그리고 점점 수심을 올려 20미터나 15미터 정도에서 갈치를 잡아야 한다고 안내 방송을 한다. 그래야 갈치가 집어가 된단다. 교범에는 바닥까지 내린 다음 전동릴을 최대한 천천히 감으면서 입질 오는 지점을 집중해서 노리라고 되어 있다. 교범보다는 현지 선장의 말이 옳을 터. 선장의 말대로 30미터 지점에서 내리는 채비를 멈춘다.
집어등 불빛이 대낮같이 밝고 바다가 잔잔해서 주변 바다 수면이 환하게 보인다. 자세히 보니 물고기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한다. 떼 지어 원형으로 집단을 이루면서 환영처럼 획 지나가기도 한다. 처음엔 집어등으로 인한 착시현상으로 생각했는데, 옆에서 낚시하는 꾼이 고등어 떼라고 한다. 그러면서 오늘은 고등어 때문에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푸념을 한다. 초릿대가 까딱 움직인다. 갈치는 초릿대가 까딱하는 예신이 있고 그 다음에 초릿대가 쑥 내려가는 본신이 있다. 본신이 와도 채비를 회수하지 말고 몇 바퀴 감은 다음 또 기다려야 다수확이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채비를 올린다. 하지만 미끼 아래 부분만 삭둑 잘려나가고 정작 고기는 달려 있지 않다. 갈치의 짓이다. 이렇게 예민한 입질은 아직 본격적인 갈치 어군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채비를 회수해 다시 미끼를 달고 내리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드문드문 한 마리씩 갈치를 잡아 올린다.



총조과. 쿨러가 턱없이 크다.


정신을 집중해서 초릿대를 보고 있자니 갈치의 입질과는 완연히 다른 형태의 입질이 나타난다. 갑자기 초릿대의 곡선이 확 펴지거나 요동치는 입질이다. 삼치나 고등어다. 이때는 채비를 재빨리 회수해야 한다. 삼치나 고등어는 바늘에 걸리면 탈출하기 위해 옆으로 휘젓고 다니기에 옆의 채비와 엉킬 수 있기 때문이다. 채비를 올리니 고등어 두 마리가 달려 있다. 고등어는 힘이 장사다. 뱃전에 올라와서도 부르르 떨면서 저항한다. 최후의 저항을 마치고 곧 사망하는 것이 고등어다. 고등어면 어떠랴. 어물전에서 보통 크기의 갈치가 만 원, 고등어가 삼천 원 정도 하니 고등어 잡는 것보다 갈치 잡는 게 경제적으로야 이익이기야 하지만, 경제를 따진다면 낚시하지 않는 게 정답이다. 하지만 대개의 꾼들은 고등어가 올라오면 화를 낸다. 비행기 타고 제주까지 왔는데 고등어가 갈치낚시를 방해하니 화가 나는 것이다. 고등어의 입장에서 보면 잡혀 죽는 것도 억울한데 욕까지 얻어먹는 형국이다. 나는 고등어면 어떠랴 하는 심정으로 고등어와 삼치도 열심히 잡는다. 그러다가 밤 한 시가 지나면서 모든 입질이 뚝 끊긴다. 조류가 멈춘 탓이다.



동쪽 바다가 밝아올 때까지, 한 마리라도 더!


야참으로 선장은 갈치회 무침을 내놓는다. 고소하고 달싹하다. 밤바다 풍경이 여유롭다. 입질이 없으니 무심히 바다 표면을 바라본다. 고등어도 지나다니고 복어도 앙증맞은 모습으로 헤엄 치면서 작은 물고기를 열심히 잡아먹는다. 느닷없이 바다에서 튀어나와 해수면을 날다가 다시 바다로 들어가는 녀석도 있다. 주위에는 만세기 여러 마리가 상어처럼 여유롭게 헤엄친다. 자세히 보니 바다 위를 나는 녀석은 날개가 발달한 날치 같은 고기인데 만세기가 다가오니 필사의 탈주를 위해 나는 것이다. 만세기는 평소에는 느리게 헤엄치다가도 목표물이 포착되면 쏜살같이 다가가고 날치 같은 녀석이 날아오르면 어떻게 아는지 그 입수지점까지 정확하게 따라가 꿀꺽 삼키고 마는 것이다. 집어등이 환하게 켜진 밤바다에서 또 한 편의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가, 먹고 먹히는 현장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먹이사슬의 현장에서 생계가 아닌 재미로 낚시하는 꾼들은 또한 무엇인가. 재미로 낚시하는 것이 낚시꾼이지만 생태계의 한 자리라도 차지하는 양 모두 어부처럼 필사적으로 낚시한다.

새벽이 가까이 오면서 조류가 다시 살아난다. 그러면서 갈치가 드문드문 잡히기 시작한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자 온 밤을 홀딱 세운 낚시를 마감한다. 올해 바다에서는 거의 전 어종이 한두 달 늦게 잡히거나 흉어를 면치 못한다. 지난겨울의 혹독한 추위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지구 온난화의 영향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갈치만 해도 8, 9월부터 풍어를 이루어야 하건만 9월 말이 되어서도 몰황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이날 나는 갈치 열대여섯 마리, 고등어와 삼치 스물댓 마리로 마감해야 했었다. 작년에 비하면 삼분의 일도 잡질 못한 것이다.
그래도 바다가 좋다.
(이날 조행기는 2011년 9월 23일 밤과 24일 새벽 낚시한 내용입니다.)

Comment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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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비 2011.10.04 18:55
    현장에 있는것 같은 생동감 있는 조행기 잘 보고갑니다.
    다음번엔 쿨러 가득 갈치로 채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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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롬보 2011.10.05 19:03
    강물님 제주에서 뵙고 오랜만에 글로 뵙습니다 .....또 제주로 다녀오셨군요
    생생한 갈치조행기가 어제 낚시한 제모습이 생생합니다...^^
    저는 10월1일부터 3일까지 해남땅끝마을로 시작해서 보길도를 거쳐 안사람과 테마여행을 하고
    올라오기전날 완도에서 갈치낚시를 하고 어제 올라왔네요
    완도에서 출항을 해도 낚시하는 장소는 제주도 우도근처에서 하더군요
    요새는 고등어가 대세라 고등어가 약60여수에 갈치는 한 40수한것 같습니다
    내용물이 많아서인지 68리터 쿨러가 꽉차보기는 올해가 처음인것 같습니다...^^
    작년에비해 갈치숫자가 적어도 지인들과 나눠먹는데는 지장이 없어 나름 만족한 하루였습니다
    언제 만족한 조황이 될만한 자리가 마련되면 연락한번 드릴테니 쪽지로 전번좀 보내주시길 비랍니다
    저도 조황만큼은 복이없는지라 꽝맨 소리듣고 사는 사람이니 너무기대는 하지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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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물(하응백) 2011.10.06 09:28
    콜롬보님. 반갑습니다. 저도 예전에 보길도 예송마을에서 하루 머문 적이 있습니다. 동백꽃 피는 2월이었지요. 그래도 많이 잡으셨네요. 즐낚하시길.
    깨비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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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공 2011.10.12 11:48
    생생한 조행기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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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천거사 2011.10.29 22:01
    도 24일밤25일새벽까지 여수백도권 갈치낚시에 바람과 파도와 멀미에
    ko페당하고 풀치10여수 삼치2수의 미약한 조과로 살아서 왔습니다
    기상이 안좋으면 출조하지 말아야 하는데 무리하게 출조하는 선사에 좀 서운하네요
    강물님의 조행기 잘읽었습니다 다음엔 쿨러꼭 만땅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