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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하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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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테마낚시 2 - 주꾸미낚시



주꾸미 볶음


핑계였을 게다. 머리를 식힌다는 이유로 그해 가을 우연히 마련한 낚싯대 하나 달랑 들고 덕적도를 혼자 찾아간 것은. 요즘에야 쾌속선이 있어 한 시간 이내에 서해 덕적도를 갈 수 있지만, 1993년 가을에는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철선이 하루 1회 왕복하던 것이 덕적도 선편의 전부였다.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했으므로 덕적도 구경은 엄두도 못 내고 진리 선착장 방파제에 앉아 처음으로 망둥이 몇 마리를 잡은 게 고작이었다(완전 초보에게 잡힌 불쌍한 망둥이들이여! 너희로 하여 긴 물고기의 수난사가 시작되었으니). 평론가들은 의뢰받은 원고를 쓰기 위해 텍스트와 실랑이를 한다.

당시 황동규 시집 <미시령 큰 바람>의 해설 원고를 쓰는 중이었다. 그런데 황 시인의 시 중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있었다.

풍장2

아 색깔들의 장맛비!
바람 속에 판자 휘듯
목이 뒤틀려 퀭하니 눈뜨고 바라보는
저 옷 벗는 색깔들
흙과 담싼 모래 그 너머
바다빛 바다!
그 위에 떠다니는 가을 햇빛의 알갱이들.

소주가 소주에 취해 술의 숨길 되듯
바싹 마른 몸이 마름에 취해 색깔의 바람 속에 둥실 떠…
(황동규 시인의 ‘풍장 2’ 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산에 단풍 드는 풍경을 묘사하고 이어 시선을 바다로 보낸다. 그런데 바다 위에 ‘떠다니는 가을 햇빛의 알갱이들’이라니!
그렇다. 그해 가을바다 위의 ‘가을 햇빛의 알갱이’를 보기 위해 덕적도로 갔고, 마침 기가 막히게 좋은 날씨 덕에 오고 가는 철선에서 그 햇빛의 알갱이를 보았다. 그리고 그 알갱이를 잊지 못해 지난 토요일에도 충남 보령의 오천항을 찾았다.


주꾸미 샤브샤브


다 핑계다. 사실은 주꾸미와 갑오징어를 잡기 위해 오천항에 갔다. 오천항은 천수만의 남쪽 입구 육지 쪽에 붙은 자그만 포구. 하지만, 주꾸미와 갑오징어 낚시철인 가을에는 새벽부터 성시를 이룬다. 이렇게 저렇게 모인 동호회 회원 22명은 북수원IC 근처 효행공원에서 새벽 3시 반에 만나 버스로 오천항에 도착, 호화 낚싯배 ‘블루스카이호’를 탄다. 배는 천수만 남쪽 해역과 안면도 끝자락인 영목항 근처의 효자도와 원산도 인근 해역을 차근차근 탐색한다.

주꾸미 낚시는 남녀노소가 함께할 수 있는 매우 쉬운 낚시다.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물속이 주로 뻘인 지역에 서식하므로 밑걸림도 별로 없고 먼바다가 아니기에 멀미도 그다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보통 한여름부터 12월까지 낚시가 가능하나 씨알이 굵어지는 10월과 11월이 제철이다. 낚시 장비는 루어대나 초릿대가 예민한 민물대가 좋고 소형 스피닝릴이나 베이트릴을 사용한다. 채비도 비교적 간단하다. 아래에 갈고리 바늘 여러 개가 달려 있는 주꾸미 볼(일명 옥동자)을 달고 위 바늘 두 군데에는 에기(인조미끼, 새우 모양을 한 가벼운 채비인데 주로 오징어와 문어 등의 두족류를 대상어로 할 때 사용한다)를 달면 끝이다. 인조 미끼를 사용하기에 미끼에 대한 부담감이 적고 낚시 방법이 쉬워 주꾸미철이 되면 중년 부부들이 함께 출조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주꾸미 먹물라면


흔히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봄에 산란철이 되면 소라 껍데기 등의 은폐물 속에 몸을 숨기는 주꾸미의 습성을 이용하여 어획량을 올리는 어부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낚시꾼의 입장에서 보면 낚시로 쉽게 잡을 수 있는 ‘가을 주꾸미’가 된다. 하지만, 쉽다고는 해도 주꾸미 낚시에도 고수가 있게 마련이다. 지난달 홍원항으로 주꾸미 낚시를 갔을 때 같은 배를 타고서도 다른 사람들의 배가 넘는 양을 잡아 20ℓ 쿨러를 가득 채운 조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주꾸미 낚시의 요령은 이렇다. 우선 채비를 바닥에 내리고 채비가 바닥에 닿는 느낌이 들면 2∼3초 혹은 4∼5초 기다리다가 채비를 살짝 들어본다. 주꾸미가 옥동자에 실려 있으면 약간의 무게 변화가 감지되는데, 이때 챔질을 강하게 하고 감아 올리면 된다. 주꾸미 개체 수가 많고 물이 천천히 흐를 때는, 즉 낚시가 잘 될 때는 기다리는 시간을 짧게 해 생산성을 높이고, 조류가 많이 흐르고 낚시가 잘 안 될 때는 기다리는 시간을 조금 길게 해서 주꾸미가 옥동자에 올라 탈 시간을 많이 주는 것도 요령이다.

사실 주꾸미 낚시는 낚시라기보다는 노동이다. 내리고 올리고 담고 또 내리고 올리고 담고 하는 이 과정을 숙련되고도 일관성 있게 하지 않으면 많은 조과를 올리기 힘들다. 주꾸미 한 마리가 보통 50g이니 10㎏을 잡으려면 200마리 정도 잡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고, 다섯 시간 낚시한다고 치면 시간당 40마리, 즉 1분30초마다 한 마리씩 낚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니 주꾸미 낚시는 노동이며 생산성이 관건이 되는 낚시다.


주꾸미 데침


왜 그렇게 전투적으로 잡아야 하느냐고? 주꾸미 낚시 가보면 알게 된다. 잘 잡히기도 하고 또 다들 본능적으로 그렇게들 한다. 물론 탐욕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노동을 하고 나면 달콤한 보상이 있다. 바로 먹는 재미다. 산 낙지 먹듯 즉석에서 먹는 사람도 있고, 배 위에서 데쳐 바로 먹는 그 맛은 어느 회에 못지않다. 그 데친 물에 라면을 끓여먹으면 그 맛 또한 천하의 진미가 부럽지 않다. 게다가 주꾸미 낚시에는 특별한 선물이 있다. 낚시를 하다 보면 가끔 손님고기로 갑오징어가 잡히는데, 그 회 맛은 상상불허다. 통으로 쪄서 먹어도 별미다. 먹물 세례를 퍼부으면서 완강하게 상륙을 거부하는 이 난폭한 녀석을 잡기 위해서 특별히 이놈만을 노리고 출조하는 낚시꾼들도 많다.

배에 탄 22명의 탐욕자들은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가을 햇빛 알갱이들의 전송을 받으면서 항구로 돌아왔다. 남은 조과물을 가족과 이웃과 나누면서 받을 찬사를 생각하며 의기양양하게. (2010년 10월 30일 출조 조행기입니다. 사진은 싱글라인코리아 럭셔리 제공)


팁: 주꾸미 낚시 출조지

인천이나 강화에서부터 경기도의 전곡, 충청도의 오천과 대천과 무창포와 홍원, 전라도의 격포와 군산 등에서 출조한다. 남쪽으로 갈수록 조과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주꾸미만을 위하여 전라도 권역까지 원거리 출조하는 꾼들은 별로 없다. 오천항 등 천수만이나 안면도 권으로 출조할 경우 비교적 밑걸림이 심하므로 채비를 여유있게 준비해야 한다. 무창포 이남, 특히 홍원 인근 바다의 경우 밑걸림이 거의 없다. 선비는 점심 제공에 6만원선이다. 항구 이름과 주꾸미를 함께 검색하면 각 지역 유선사들의 홈페이지가 나온다. 물때의 영향은 크지 않으나 그래도 조금 때의 조과가 나은 편이다. 11월이 지나면 춥기도 하고 조과도 좋지 않다. 가족이나 친지들의 나들이로 적합한 낚시다.
  

Commen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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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유지영) 2011.09.02 13:12
    쭈꾸미 낚시의 계절이 왔네요.
    벌써부터 예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약율도 높고요..
    가을은 갑오징어와 더불어 쭈꾸미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합니다.

    다양한 쭈꾸미 요리도 참 좋은것 같고
    가족 낚시로서도 훌륭한 것 같네요.
  • ?
    인천백마3호 2011.09.05 08:47
    어느해 이던가???
    쭈꾸미가 풍년이였어요...
    스테미너 음식으로 각광받더니 동네 골목 골목에 쭈꾸미 볶음집이 마구 생겼어요...
    그러더니 지금은 수확이 줄고, 고객의 입맛은 어쩔 수 없고, 쭈꾸미 값이 금값이예요...
    백마는 바다가 일상이고 생활인 탓에...
    한가한 가을날,,,
    아주
    쬐곰한 스피닝릴 두대 챙겨 인천대교에서 좀 더 가 쭈꾸미 밭엘 갑니다...
    잠깐만에 반쿨러 채워... 운트면 갑오징어도 몇마리...
    아주 맛있게 먹는답니다...
    올해는 동승하세요^^ 바로 전화드리겠습니다...
  • ?
    강물(하응백) 2011.09.05 12:07
    감사합니다. 기대해 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