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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하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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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테마낚시18 - 갑오징어 낚시
      

선유도의 절경을 배경으로 갑오징어를 낚는 꾼들.


어렵지만 가치 있는 길을 택할 것인가, 쉽지만 가치가 덜한 길을 택한 것인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와 같은 햄릿의 거창한 고민은 아니고, 서해안으로 갑오징어를 잡으러 가느냐, 남해안으로 화살촉 오징어를 잡으러 가느냐 하는 문제였다. 화살촉 오징어는 일반적으로 흔히 보는 오징어를 말하는 것으로 5월 말부터 진해와 통영, 거제 앞바다 등지에서 낚시로 많이 잡힌다. 야간에 하는 낚시로 배의 집어등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오징어를 주로 애기(인조미끼로 새우와 비슷하게 생겼다)로 잡아내는 비교적 쉬운 낚시다.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인터넷에 올라오는 조황 정보를 보면, 숙련된 사람은 하룻밤에 100마리는 거뜬히 잡아낸다는 것이었다. 야간에 뱃전에 연방 올라오는 오징어를 환호하는 낚시꾼들의 소란스러움과 그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의 선상 오징어회 혹은 숙회 파티는 입맛을 다시게 하였지만, 갑오징어의 희소가치 때문에 친구와 나는 서해안을 택하였다.

갑오징어는 대개 가을철에 잡는다. 안면도 영목항이나 충남의 오천항과 보령항이나 홍원항 혹은 군산이나 새만금방조제에 있는 몇몇 항구에서 출항하여 잡아내는 것인데, 이때 주꾸미도 같이 잡아낸다. 펄이 많은 곳에서는 주꾸미가 우세하고 잔돌이나 약간의 여가 형성된 곳에서는 갑오징어가 우세하게 잡힌다. 가을의 갑오징어는 마릿수는 좋지만 씨알이 잘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5, 6월에 서해안에서 잡히는 갑오징어는 씨알이 좋다. 큰 것은 1kg에 육박하는 것도 있다.

친구와 나는 토요일 새벽 새만금방조제를 향해 차를 몬다. 내가 오징어와 갑오징어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단호하게 갑오징어를 택한 것은 사실 친구였다. 맛에서 갑오징어와 오징어는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오징어야 좀 지나면 횟집 수족관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산 갑오징어회 맛은 선상에서밖에 먹을 수 없지 않으냐는 것이 친구의 갑오징어 선택 이유였다. 지당한 말씀이다. 갑오징어가 잡혀만 준다면.

1㎏에 달하는 갑오징어. 무거워 뜰채에 담아야 안전하게 포획된다.
서해안 고속국도 동군산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새만금방조제 입구에 있는 낚시가게에 들러 채비를 준비하고 야미도 선착장으로 향한다. 야미도는 원래 섬이었지만,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끝난 뒤 육지처럼 되어 차를 몰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오전 6시경 14명을 태운 금강산호는 매끄럽게 항구를 빠져나간다. 바다가 호수같이 잔잔하다. 배는 20여 분 만에 신시도를 지나 무녀도 인근에 다다른다. 채비를 내린다. 애기 하나에 20호 봉돌을 단 채비다. 수심은 5, 6m밖에 되지 않는다. 가을 갑오징어는 활성도가 좋아 아래는 봉돌 대신 옥동자라고 하는 주꾸미 바늘을 달고 위에 애기를 두 개 달지만 봄 갑오징어는 입질이 예민해 하나만 달고 긴장을 해야만 낚을 수 있다고 선장은 설명한다.

하지만 배 어느 곳에서도 입질 소식이 없다. 선장이 여러 곳의 포인트를 찾아 헤맨다. 섬 숲 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평화롭다. 어느덧 시간은 9시가 가깝다. 두어 시간 동안 아무도 입질을 받지 못한 것이다. 배는 고군산군도 일대의 포인트를 샅샅이 찾아 헤맨다.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등을 유람하는 듯하다. 이 세 섬들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신시도에서 무녀도에 이르는 다리 공사를 하고 있으니 좀 있으면 선유도를 비롯한 고군산군도 주요 섬도 육지로 연결될 것이다.


1kg에 육박하는 갑오징어. 안전하게 뜰채로 잡아야 한다.


선유도는 서해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섬이다. 섬의 봉우리들이 순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끊어질 듯하면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 선유도가 바로 시인 황동규의 유명한 연작시 〈풍장〉을 탄생하게 한 바로 그 섬이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퉁퉁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풍장1>에서


로 시작된 황동규의 ‘풍장’ 연작은 1980년대 중반 시작하여 20여 년에 걸쳐 70여 편을 끝으로 1990년대 중반 완성되었다. 황동규 시인은 군산에서 통통배를 타고 4시간 만에 선유도에 도착해서 섬 구경을 하다가 당시 풍장(우리나라 서·남해안의 도서지방에서 행해지던 장례의 일종. 망자의 시신을 바로 묻지 않고 바람에 육탈시킨 다음 매장한다)의 풍습을 보고 이 시 연작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러니 선유도는 바로 우리 문학사의 현장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선유도에서 나와 친구는 갑오징어 낚시를 하는데… 입질이 도통 없다. 황동규 시인이 ‘거 봐!’ 하는 것 같다. 그런 상념에 잠기는 순간, 뭔가 조용히 나의 채비에 무게를 더하는 녀석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크게 챔질을 하고 최대한 천천히 끌어올린다. 갑오징어다. 진한 먹물을 찍 하고 쏘아 바다에 자신의 마지막 존재 증명을 마치고 순순히 뱃전으로 끌려 올라온다. 세 시간 만에 배에서 처음 올라오는 갑오징어다. 이어서 배 여기저기서 간간이 갑오징어가 올라온다. 11시까지 친구와 나의 조과는 각각 한 마리. 미련없이 회를 치자는 데 합의한다. 친절한 선장님이 회를 친다. 선유도를 배경으로 파도 소리와 섬의 새소리를 조연으로 그리고 갑오징어회를 주연으로 하여 조촐한 선상파티를 벌인다. 두꺼운 갑오징어의 육질,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이런 맛과 풍광에 망자가 미련이 남아 있을까 풍장을 시킨 것은 아닐까.


갑오징어회. 두꺼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점심 먹고 우리는 각각 한 마리씩 잡았다. 집에 와서 저울에 달아보니 400g 정도 나가는 갑오징어였다. 그 한 마리를 다시 회를 쳐 아껴가며 먹으면서, 남해로 갔으면 푸짐했을 걸 하면서,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중에 <가지 않은 길>을 생각했다. 그것을 좀 패러디하면 이렇게 된다.

남해와 서해로 길이 두 갈래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인터넷을 뒤지고 친구와 상의까지 하면서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맛 좋은 갑오징어가 살고 있어
아마 더 노력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두 길에는
배가 다닌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바다로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결국 두 마리밖에 못 잡았다고.


Comment '2'
  • ?
    감성킬러 2011.07.27 18:05
    강물님의 글에 묘한 매력을 느낍니다.
    읽고나면 절로 미소가 머금어 지는...^^*
    강물님의 팬이 될 것 같은 즐거운 예감....
    프로스트의 패러디는 선상낚시 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만한 상황이 절묘하게 담겨 있네요.
    좋은 글 계속 기다리겠습니다~~~~^^*
  • profile
    블루(유지영) 2011.07.27 22:51
    묘한 선택의 순간과 결과가 공존합니다.

    갑오징어의 매력을 얘기하자면 저도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데요.
    올해는 가을을 기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민어를 갈것인가 광어를 갈것인가?
    농어인가 참돔인가를 고민하다가 최종 출조를 선택 한 후에는
    항상 사진과 함께 문자가 옵니다.
    " 잘 되고 있나요??? 이것이 진정한 대박이지요??"
    밉상의 웃는 얼굴과 커다란 농어,민어,참돔 사진이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길...낚시는 왜이리 안되는지..
    광어에게 화 풀이해야지요.
    어복이 저를 조금씩 비켜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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