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에 바다를 향해 떠나는 기차 여행.
떠나가는 늦가을의 정취 따라 아침 7시 5분 서울역에서 아름다운 물빛 도시 여수행 KTX에 몸을
실었지요. 약 3시간 소요로 빠른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을 낭만하면 기차 여행이 아니겠습니까?
설렘에 잠을 설치며 이른 새벽에 깬 탓일까요? 긴장을 내려놓으니 눈꺼풀이 무거워집니다.
잠깐 꿈나라로 다녀왔더니 기분과 머리가 맑아집니다.
진동으로 놓은 핸폰에 몇 통의 못 받은 전화며, 여러 카톡방이나 밴드에 실린 이야기를 확인하고
답전과 답글을 올리는 동안, 많은 사람이 내리고 타서 보니 기차는 전주역에 도착했습니다.
차는 다시 떠나면서 차 창에 풍경이 펼쳐지는데, 자욱한 아침 안갯속 농촌 풍경이 가히 몽환적입니다.
잠깐씩 그 안갯속에서 피어나는 따스한 햇살은 더욱 눈부시게 하면서 낭만적인 감성을 자아내고요.
구례에 이르자 울긋불긋한 오색찬란 가을 풍경이 지리산을 타고 내려와 가을 내음을 사방에
흩뿌리고 있습니다. 대자연의 아우라가 두 눈을 더욱 초롱초롱하게 만듭니다.
이 환상의 풍경이 사람들의 복잡한 삶과 잘 조화를 이루며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합니다.
감성지수를 높이고 여행 기분을 충족시켜 주는 가을 기차여행이 어느새 종착지에 도착했네요.
서정적이며 모더니즘의 시인인 정지용 시인께서 쓴 '다도해 여행기'편에 보면, 이가락(離家樂)이란 말이 나옵니다.
해석하며 글자 그대로 '집을 떠나는 즐거움'이란 말이지요.
어디를 무슨 목적으로 가던지 여행자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설렘이 시작되니 말입니다.
여수 엑스포 역전에 바로 2012년 개최된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을 주제로 한 여수세계박람회장 입구가 보입니다.
넓은 면적에 요소요소 건물들만 덩그러니... 사람은 보이지 않아 좀 을씨년스럽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박람회장을 잘 활용하여 그 가치를 높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시 좀 못되어 배는 항구를 벗어납니다.
해풍을 가르는 뱃전에 앉아 있으니 시원하면서도 춥네요. 몸과 마음이 절로 상쾌해집니다.
으스스 추워 선실에 들어가 잠시 누워 잠을 청해봅니다. 2시간 좀 넘게 달려 오던 배는 엔진이 잦아들면서 백도
부근에서 풍을 놓습니다. 사무장님과 채 선장님이 점검을 하고 있네요.
타들어가는 석양의 붉은 노을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외로웠던 백도가 해님과 입맞춤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파란 하늘과 푸른 코발트블루의 바다가 석양만 아니면 경계가 오묘할 정도로 맑고 푸릅니다.
아직은 산들거리는 바람과 따스한 햇살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혀도 좋을 이 시간....
어둠이 깔리는 풍요로운 바다의 속살을 서서히 더듬어 볼 준비를 마치고 한껏 여유를 부려봅니다.
배의 후미에 자리를 잡았는데, 심심치 않게 밤새도록 꾸준한 입질을 보입니다.
간간히 대물이 올라오긴 하나 풀치를 어느 정도 낚았기에 대물 위주로 노려 볼 겸, 꽁치 미끼를 크게 썰고
올라온 중 삼치도 포를 떠서 중간중간에 같이 꿰어 투척하니까 역시 효과도 있네요.
조금 큰 씨알들과 4지급 대물이 전보다 비교적 많이 붙습니다. 입항 후 고루 포장하여 친척들 앞으로 택배를
부탁해 놓고 잠을 청합니다.
***
둘째 날의 돌산의 군내항 아침. 밤새 몰아쉰 숨을 뒤로하고 배도 잔잔한 항에서 쉬고 있습니다.
보름 달빛이 환하게 온 바다를 훤히 밝히고 있습니다. 달빛 윤슬과 온 바다를 휘황하게 밝히는 갈치선들의 집어등
불빛에 갈치들이 아마도 오늘 밤 이 바다에서는 잠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월명이라고 하면 조사님 누구나 기피하는 갈치 낚시지만, 저는 반대로 낚는 것보다 호젓한 여유와 낭만이 있어 오히려
즐깁니다. 그리고 월명(月明)이라고 하면, 밝은 달빛에 빛이 분산되어 집어가 어렵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어느 정도는 공감합니다만, 많이 다녀 본 결과로 말씀드리면 이런 월명 기간이라 해도 그렇게 특별한 조황 변화는
크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하 간에 이런 이유로 이날도 달이 밝아 조업선이나 갈낚선들이 출항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큰 갈치들이 동중국해로 월동을 떠난 시기라서 2지~3지 사이의 풀치급들이 주종을 이루는 시기이죠.
그런데, 앞쪽에 있는 '송갈치'님은 열 마리에 한두 마리 격으로 씨알 좋은 왕갈치를 뽑아냅니다.
꽁치 미끼를 쓰지 않고 과감하게 아까운 3지급 정도의 갈치를 포를 떠서 그림처럼 크고 길게 바늘에 꽈배기처럼
돌려 꼬아 뀁니다.
갈치포 큰 미끼의 꽈배기 뀀 장점이 무엇인가를 나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미끼가 꽁치처럼 살짝 물고 흔들면 쉽게 절단되는 부드러운 미끼가 아닌, 질기기도 하겠으나 돌려 꿴 관계로
결속력이 더욱 강하게 만들어져 물고 흔들면서도 잘라지지 않으니 다시 입을 더 크게 벌려 한 입에 큰 미끼 전체를
그대로 통째 흡입하면서 제대로 훅킹되는 것이란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런 패턴에서는 바늘까지 통으로 삼키기에 먹든 말든 저들이 알아서 제물 걸림으로 자동 훅킹이 되도록 일단 놔두시기
바랍니다. 초릿대가 파르르 떨면서 상하 동작을 보이는 고등어는 시기적으로 다 남쪽으로 이동을 했고,
남은 중 삼치 입질은 왕갈치 입질과 비슷하게 초릿대 동작이 큰데, 이럴 때는 반드시 강하게 한번 감아 주시면서
바로 회수 릴링을 시도하십시오.
삼치가 물었다면 옆사람과의 줄 엉킴이 발생하며, 또 왕갈치가 물었을 경우도 본능적인 바늘털이로 인해 이탈될 수
있으니 반드시 빠르게 감지 말고 저속으로 감아 안전하게 어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미끼가 크면 경계심이나 조심성이 없는 풀치들이 큰 미끼를 보고 입질할 수 있지만 대부분 입에 들어가지 않기에
끝만 뜯어먹거나 깔짝대고 말거나 회피합니다. 그러다 보면 다음 차례는 뒤에서 보고 있을 경계심 많은 왕갈치 차례겠지요.
한 입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고, 성장 과정에서 동족인 다른 갈치 꼬리를 잘라 먹는 공식 현상의 습성에 초미(初味)로
맛을 본 대물들이 사정없이 한 입에 털어 넣는 큰 입질로 이어지는 것이라 판단합니다.
옆에서 간헐적으로 큰 입질이 숨을 멎게하는 송갈치님 초릿대 동작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저도 바로 따라 했지요.
이렇게 해서 4/1정도의 비율로 60리터 만쿨 도장에 조금 미치지 못한 송갈치님 조황이지만,
저도 둘째 날 전체 120여 수 정도 수확에 4지급 이상이 13마리 정도로 만족한 조황을 가져 왔습니다.
3호 장선장의 말에 의하면 이런 갈치포에 유독 입질 잦으며, 뼈채로 썰은 갈치 미끼에는 반응이 약하다는 이야길 들었지요.
밤 12시경의 보름달이 중천에 떠서 훤하게 비치는 가운데서도 송갈치님 쿨러는 쑥쑥 차 오릅니다.
2피에서 7피까지 물고 늘어지는 월명 아래, 월명이면 조황이 부진하다는 말이 무색해지는 밤입니다.
잘 나오던 갈치가 3시 반 정도가 되면서 입질이 희한하게 뚝 끊깁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람이 북동풍이 불다가
남서풍이 불며, 같은 날에도 바람이 잦아 들다가 다시 불고... 배는 바람따라 움직이는 관계로 일정한 방향으로
안착치 못하니, 하루는 앞쪽에서 하루는 뒤쪽에서 잘 낚이는 기이한 현상이 빈번하며, 줄 엉킴도 많이 생기게
됩니다. (사진은 본인이 위쪽으로 왕갈치를 올려서 찍은 사진입니다.)
송갈치님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오다가 중간에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동안, 몽환적이며 고즈넉한 어촌의 아침 풍경을
핸폰으로 찍었습니다.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역광의 아름다운 실루엣 속 풍경이 감탄을 넘습니다.
기차를 탈 시간이 한 시간 이상 남았습니다. 접이식 핸드카트에 짐을 묶어 역내에 두고 바닷가로 나왔습니다.
멀리 돛단배를 형상화한 엠불호텔과 둥근 원형의 구조물인 '빅오'도 보이는 아침 햇살의 잔잔한 여수 바다...
여수를 그동안 많이 다녔지만, 이렇게 여유롭고 한가한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아름다움이라는 본질속에 느림과 빠름이 교차하는 여행의 묘한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있습니다.
혼자하는 여행
혼자 하는 여행은
만물과 함께 깨어 있는 순간이요
우주를 통째로 품는 것이다
여행은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기보다
자신의 아름다운 내면의 풍경을 만나는 것이다
혼자 여행을 일주일 하면
세상사 모든 시비와 멀어지고
2주를 하면 불쌍해지고
3주를 하면 세상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
그리고 한 달을 하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허허당 스님의 <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한다> p.202 중에서
오동잎처럼 생겼고 오동나무가 무성하여 오동도(梧桐島)라고 했다는데, 그 많던 오동나무는 흔적이 없고
지금은 동백꽃 군락지로 변하여 오동도가 아닌 동백섬이라고 해야 할 섬입니다.
연애시절 집사람과 함께 이곳에 들러서 더욱 친근해진 섬 오동도...
아직은 싱그러운 해풍이 불어오고 한가득 눈에 담기는 짙고 푸른 가을바다를 보며, 나는 나에게 아렇게 말합니다.
"험한 세상 속에서도 너는 지금 잘 하고 있고, 잘 살고 있으니 참 멋지다."라고요...^^
이 두 마디가 스스로 힘이 되고 격려가 되니, 이보다 더 아름답고 낭만 넘치는 아나로그 프라이빗 여행이 또 있을까...
나를 스스로 명품화하고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하는...
앵글러가 아닌 소소한 낚시꾼이라서 더욱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수 미남크르즈호의 선명(船名)이 미남(美男)이라고 적혀 있네요.
미남들만 타는 것은 아닐텐데..^^ 타면 무조건 미남이 될려나?..
1321톤(1085명 정원)으로 국내 연안 여객선이나 유람선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하며,
승선시간은 1시간 반으로 여수 앞바다 일대를 돌아보는 코스로 야간 운항도 한다고 합니다.
밤에 이 크루즈를 타고 여수 밤바다를 돌다가 내려, 여수 여행의 성지나 다름없는 하멜등대와 해양공원에서
화려한 불빛의 환대를 받으며, 사랑하는 사람 또는 지인들과 함께 축복의 시간을 갖는 의미도 또 하나의
수채화 같은 삶이 되겠지요.
그런 삶이라면 달달한 가사에 동양적인 멜로디에 편안한 기타 소리로 '여수 밤바다'를 버스커버스도 나타나
밤새 불러 줄 것만 같고요... 그렇다면 우리도 포차에 둘러앉아 소주잔 기울이며 하얀 밤으로 지새우는...
우리네 인생 노트에 영원히 잊지 못할 멋진 추억 만들기를 하면서요...ㅎㅎㅎ
예쁜 겨울꽃을 때마침 식재하고 있습니다. 여수는 아마도 따스한 지역이라 식물이나 꽃도 쉽게 얼지 않은가 봅니다.
혹여 이런 낭만 여행을 가실 분, 가족과 함께 떠나시라고 상하행 열차 시간표를 안내해 드립니다.
12월의 여수도 옷만 따뜻하게 입고 기차 여행을 떠나시면 로맨틱한 추억 만들기에 아주 적합한 도시입니다.
볼거리 먹거리를 잘 품은 곳이며, 특히 밤바다의 풍경에 반하면 이사를 가야 할 정도로 멋진 여수에 순수 여행
목적이 어려우시다면, 갈치낚시 가방 하나 달랑 메고 하루 전날 여유롭게 떠나 보시는 방법이 어떨런지요..
나머지 낚싯대나 쿨러는 현지에서 빌리는 방법으로 기차 여행을 떠나 보시길 권합니다. 고맙습니다.
갈치가 막판에 이른것 같은 느낌입니다.
거제에 몇번 출조했는데 작은 갈치 속에 간혹 큰 것들이 나오네요^^
교회를 핑계로 여수에서 낚시를 하지 못해 주야조사님의 얼굴을 잊어 버릴지 걱정이 되네요
시즌이 끝나고 열기시즌이 시작되면 뵐수 있기를 기다려 봅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