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이를 무너뜨리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
워런버핏이 한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한번 무너진 평판을 바로 세우는 데
다시 20년의 세월을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칠 수도 있고
화를 못 참아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실수 자체가 아니라
실수를 범한 후의 태도와 행실의 변화입니다.
대오각성하고 새롭게 삶에 도전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변명으로 무장하면서 유사한 실수를 연발하는 자도 있습니다.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는 순전히 그 자신의 몫입니다.
익명의 사이버공간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아이디를 바꾼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핵심을 비껴가면서 원인이나 해답을 찾겠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희롱이며 자신에 대한 기만입니다.
자기성찰이 철저한 사람은 허튼소리를 내지 않으며
침묵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구차스러움에 기대지 않습니다.
수치심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뻔뻔한 가면 뒤에 숨어 그 무게에 짓눌리기보다는
차라리 존재의 상실을 통해 자존감을 지켜냅니다.
그렇습니다.
존재의 상실, 증발입니다.
인간이 증발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수치심이 가장 큰 역할과 기여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수치심을 잘 모른다면,
그래서 수치심을 느끼도록 누군가가 강요한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성찰이나 침묵은커녕 모욕감에 치를 떨며 분노하다가
이성이 마비돼 온갖 말도 안되는 자기합리화로 방어벽을 치고
독 오른 살쾡이마냥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닥치는대로 할퀴려 들 것입니다.
여기엔 존재의 상실이니 증발이니 하는 고상한 철학이 발디딜 틈이 없습니다.
이른바 괴물이 탄생하게 됩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증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수치심이라는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증발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는지 모릅니다.
증발해서 유령처럼 세상을 기웃거리든
괴물이 돼 평지풍파라는 악마를 불러들이든
둘다 다 평판과는 거리가 이미 멀어진 건 분명합니다.
오직 남은 건 오기뿐,
고독이라는 친구만이 곁을 지켜 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선택의 문제만이 남게 됩니다.
증발이냐 괴물이냐.
우리는 SNS라는 익명성 뒤에 숨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공감의 문을 닫고
남을 배척하기 위해 열불을 토해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익명으로 인해 감정은 더 솔직해지며
자신있게 자신들을 표현합니다. 마치 복면가왕처럼.
이제 태풍도 지나갔습니다.
짜증도 왕창 났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잠잠해진 이곳 어부지리가 고요한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