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란 일상의 궤도를 벗어난 일탈<逸脫>행위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평상시와는 전혀 다른 괴상한 복장을 걸치고, 낚시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생각하지도 못할 엉뚱한 시간, 첫새벽부터 갖가지 안주를 벌려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이렇게 철없이 굴면서도 희희낙락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힘없는 소시민의 작은 반항, 일탈행위일 것이다.
낚시는 항상 이렇게 시작된다. 언제나 낚시가기로 예약한 날이 되면 혹시 늦을세라 전화로 알람을 걸어 놓고 잠이 들지만 항상 예정시간 10여분 전에 눈이 떨어지면서 제일먼저 하는 일은 알람을 해제하는 일이였다. 전에는 자명종에 의지했었는데 요즈음의 전자기기는 별별 기능을 다 갖추었기에 매우 편리하다.
어쨌든, 오늘도 장장 170킬로미터를 2시간에 주파하고 출항 신고서 작성한 후 뱃간에 누워 잠을 청하다가 선장님의 방송 소리에 벌떡 일어나 낚시 준비하고 반가운 어신을 기다린다.
어제는, 적어도 초반까지는, 나에게 어쩐지 행운의 여신이 미소 짓는 운 좋은 날이었던 것 같다. 첫 입수에서 약간 삐거덕 거렸지만 두 번째에 큼지막한 대구를 끌어내고 연이어 세 마리를 더 걸었다. 아마 출발하기 전 미리 준비했던 족발과 소주 덕분이었던 모양이다. 우리일행이 준비한 꼬치안주와 곁들여 새벽 해장술을 한 잔하고 편안히 잠 든 덕분에 몸이 가벼워져 낚시가 잘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경 아저씨들이 심술을 부렸는지, 평소보다 출항 허락이 좀 늦게 떨어졌고 또 항해 중에 그물에 걸려 시간을 많이 빼앗겼어도 이런 포인트에서라면 그 정도의 시간 손해는 충분히 보상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 내가 타는 배의 선장이 스트레스 받으신다며 농담을 곁들여 흉보시던 대형 cooler가 이런 추세라면 넘쳐나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던가? 갑자기 나타난 경비정에 쫓겨 황금낚시터에서 쫓겨나면서부터 모든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배의 위치가 공해상이었던 모양이다.>
어제 낚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찾아왔다. 연안으로 쫓겨 들어와 맥 빠지고, 고기 입질마저 끊어진 오후, 오뉴월 땡볕에 지쳐 많은 분들이 이미 선실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나도 낚시가 귀찮아져 그만 정리 할 겸, 밑 바늘 하나만 남겨놓고 심드렁하게 줄을 내리는데 바닥에 채 닫기도 전에 충격이 전해진다.
그나마 또 재수 없게 침선에 걸렸나? 중얼거리면서 낚시를 빼려고 흔들었더니 힘찬 입질이 들어온다. 침선이 움직일 리는 없을 것이고........ 40미터 해역이니 대구가 걸렸을 것 같지도 않다. 대물 우럭으로 보기에도 약간 낯설다. 사무장이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바라보는 중에 이윽고 모습을 들어 낸 녀석은 뱃바닥이 눈처럼 흰 광어다.
“야! 광어다!!!!!”
선실에 누웠던 사람들이 모두 벌떡 일어나 다시 낚싯대를 챙기기 시작한다. 잠시 후 우리 팀의 두목격인 갱상도싸나이가 회칼을 들고 다가오더니 “큰 행님, 자연산 광어는 한 시간 내에 묵어야 맛있십니다. 사시미 하입시더.”하고 제안한다.
“오케이! “피 빼!”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일해서 얻는 땀의 대가, 봉급을 비롯해 모든 노획물은 손에 쥐는 즉시 그 소유권이 배우자에게 이전되는 불문율에 따라 마누라 얼굴을 슬쩍 쳐다보니 말없이 고개를 끄떡거린다. 아마 집에서 기다릴 큰 아들 생각에 잠시 갈등을 겪었을지도 모르지만 평소에 이분들에게 너무 큰 신세를 졌으니 이제 갚을 기회가 온 것을 이심전심,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곧이어 광어 해체작업에 들어가고 참이슬 몇 병이 연이어 바닥을 드러낸다.
무거워진 cooler를 끌고 끙끙대며 하선하는데 갑자기 가벼워지기에 뒤돌아보니 함께 낚시하시던 이웃 아줌마가 늙은이 불쌍타고 도와주신 것. 고맙긴 한데 사나이 체면이 말씀 아니다.
항구에 내려 우럭은 회를 뜨고 대구는 내장을 정리하고 포를 만들라고 부탁한 후 아무리 보아도 고기가 생각보다는 좀 모자란다.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마침 옆에서 낚시했던 일행이 들여다보더니 한 마디 하신다. ‘많이 잡으시던데 다 어디 갔어요?’아마 광어회로 마무리 술판을 벌리고 떠드는 동안에 대구와 우럭들이 살아나 바다로 탈출한 것이겠지........
얼마 전 이 사이트에도 낚싯배에서 이런 파행적인 일탈행위로 소득을 올리시는 분들이 자주 나타난다는 글이 올라왔었기에 설마 했었는데 오늘 내가 당할 줄이야.......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탈행위는 아무래도 좀 곤란할 것 같다.
낚시는 자연에 파묻혀 시름을 잊는 고상한 취미라고 평생 자랑스럽게 말하던 시기가 설마 끝나가는 것은 아니겠지........
집에 돌아오자 자초지종을 들은 간접 피해자인 아들이 법조인다운 결론을 내린다.
‘절도죄에 해당되는데요! 재발한다면 선주에게도 관리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변호사가 판사 흉내를 내는 것도 일탈행위에 포함될 것 같다.
즐거운(?) 조행후기 잘 보고 갑니다.
"대구와 우럭들이 살아나 바다로 탈출한 것이겠지..."
이런 해프닝, 없어지고 점점 나아지리라고 생각해 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