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여수를 다녀왔습니다.
카페 회원님들을 모시고 열기꽃이 피어나는 봄바다를 만나기 위한 일정이었죠.
바로 전날 일본을 덮친 대지진의 재앙이 있던 날이라 마음 한켠이 무겁기만 한 날이었고요.
‘멀고도 가까운 이웃 나라’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설사 애증(愛憎)의 관계일지라도 남의 불행을 즐길(?)만큼 우리 정서는 저급하진 않습니다.
아직 곳곳에 많은 위험이 남아있고, 정확한 피해규모도 파악이 힘든 상황이지만 아무쪼록 잘 수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조를 진행해야 하나 하고 망설였던 건 일본의 상황 때문이 아니라 조황 걱정이 앞섰던 게 솔직한 마음일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 바빠집니다.
당일 출조했던 남해권의 정보 채널을 총동원해서 확인에 나섰습니다.
“선장님~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오늘 조황이 어땠나요?”
“몇 시에 지진이 났습니까?”
“오후 2시에요.”
“그 때는 낚시를 끝내고 철수할 시간이라… 그 전까지는 잘 나왔습니다만…”
“OO님~ 오늘 어땠습니까?”
“예보와는 달리 바다 상황이 좀 어려웠는데 먹을만큼은 잡고 들어갑니다.”
일단 현재까지는 괜찮은 상황으로 보입니다. 선사와의 예약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라고 배웠습니다. 기상 조건이 아주 좋게 나오는 것도 망설임을 없애는데 한 몫 합니다.
진행 쪽으로 결론을 내고 출조 공지를 올리지만 아주 개운한 마음은 아닙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동하는 버스에서의 수면은 이제 습관이 되었습니다. 코를 심하게 고는 병 때문에 주위 분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걱정도 쏟아지는 잠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된지 이미 오래구요. ㅋㅋㅋ ^^::
그러나 오늘은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혼자서 다닐 때야 바다를 만나는 마음 한 가지만 붙잡고 있었어도 괜찮았습니다. 조황에 대한 기대도 남들만큼은 하고 있었지만, 꽝을 쳐도 별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았던 건, 그간 여러 장르의 낚시를 하면서 워낙 많은 꽝을 경험해서인가 봅니다. 하지만 회원님들을 모시고 갈 때는 이런 마음일 순 없습니다.
특히 주말 출조는 조황에 대한 걱정이 더 커집니다. 주말에만 허락된 휴식을 즐기러 오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입니다.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의 상황이 조황에 끼쳤던 악영향을 많이 봐왔기에 걱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테구요.
어쨌든 포인트에 도착했습니다.
어둠이 미처 가시지 않은 백도는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어둠속에서도 빛나는 야광주(夜光珠)처럼 도도한 빛을 온 바다에 뿌리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지만, 그 느낌을 담는 데는 결국 실패합니다.
첫 입수. 아직 밤의 시간이어서인지 예상대로 입질이 없습니다.
잠깐의 포인트 이동 후 재 입수. 토독대는 입질이 느껴집니다. 봉돌이 바닥에 닿는 느낌에 집중하면서 잠시 기다렸다가 천천히 릴링을 합니다. 재차 전해지는 느낌에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반 바퀴 정도 릴 핸들을 돌립니다.
더 이상의 입질은 없을 모양입니다. 선상에 올라온 녀석들은 윗 바늘부터 볼락, 쏨뱅이, 열기… 완전히 모듬 고기로 첫 수를 시작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옵니다. 지진에도 불구하고 입질을 해주는 물고기들이 오늘처럼 예뻐 보일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일출의 장관을 보지는 못했지만, 드디어 빛의 시간이 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열기가 줄을 타기 시작합니다. 여기저기 함성이 터지고 뱃전은 금새 활기가 넘칩니다.
“씨알이 좀 잘더라도 오전에는 쿨러의 7홉 정도를 채우는데 주력하고 그 후에 씨알로 승부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선장님의 멘트가 뱃전에 울려 퍼지고, 개인적으로 선장님의 전술(戰術)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씨알도 나쁜 편은 아닌데, 나중엔 더 큰 씨알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손놀림을 바쁘게 만듭니다.
지진으로 인한 조과의 걱정에서 벗어나자 그 자리를 즐거움이 차지합니다.
그 즐거움을 더 키우고 싶어집니다. 즐거운 고민~~~~^^*
낚시를 잠시 멈추고 쿨러 확인에 나섭니다. (사실은 회원님들의 표정 확인입니다.)
만족스럽습니다. 잡아놓은 고기를 꺼내어 회를 썰려고 하자 여기저기서 찬조(?)가 이어집니다. 꿀맛같이 녹아드는 열기 회의 달콤함에 잠깐 빠졌다가 다시 낚시를 시작합니다.
“이번 포인트는 15m까지 높아지는 암초입니다. 입질을 받으신 분들은 감아올리면서 밑걸림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채비가 엉킨 분들은 빨리 끊어내시고 다시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걸 풀려고 시간을 허비하면 좋은 조황이 나올 수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더 배를 댈 수 있게 해주셔야 다같이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물이 안가네요. 입질이 뜸한 지금 점심을 먹겠습니다.”
배를 댈 때마다 포인트 특성을 일일이 안내해 주고, 좋은 조과를 올리기 위한 방법을 설명하고, 가장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나가면서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선장님의 멘트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지만, 배에서는 신명이 넘쳐 납니다.
저마다 마치 1일 사무장이라도 된 양 호흡을 맞춰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던 건 비단 저 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배낚시는 어떠해야 한다는 모범답안 같은 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취미 생활의 중심은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는 대명제에는 누구나 동의하리라 믿습니다.
어려우리라는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서 그 기쁨이 더 커졌는지는 모르지만, 참 많은 걸 느끼고 배웠던 하루였습니다.
남들보다 훨씬 많은 빈도로 바다에 나가고 있는 제 자신이지만,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계신 분들과의 비교는 어불성설(語不成說)임을 다시 확인했구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즐기는 것!!!!!”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조차도 이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열기낚시/ 우럭낚시에서 뜻하지 않는 재미죠.
일단 재미에 앞서 감성킬러님의 동호회 회원님의 맘을 다스려야하기에 심적인 부담이 크시겠어요..
개인적으로 우럭낚시 보다 더 더 재미있는 낚시가 열기낚시라 생각됩니다..
초릿대 끝에서 전쟁이 나는 순간 더이상 짜릿함음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