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文香)과 스토리가 있는 하응백의 낚시여행(6)-포항 볼낙 금요일, 일기예보를 보니 남해와 서해 모두 파도가 높게 나온다. 동해도 비교적 파도가 높지만 낚시할 수는 있을 정도다. 4월에 접어들면 동해 북부 쪽 속초 이북의 어구가자미 낚시는 파장 무렵이고, 참가자미 낚시는 아직 본격적 철이 아니다. 대구낚시도 가능하지만, 동해 북부에는 비 예보가 있다. 낚시사이트를 뒤지며 고심하다가 동해 남부 포항권에서 볼락이 올라온다는 정보를 접했다. 볼락! 볼락은 수도권 사람들은 잘 접하지 못하는 어종이다. 따지고 보면 우럭의 학명은 조피볼락, 열기의 학명은 불볼락이다. 볼락은
볼락이다. 열기나 우럭과 습성과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개체의 크기는 열기 정도다. 볼락은 통영, 마산, 삼천포 쪽에서 많이 나는 생선인데, 고급
어종으로 귀족 대접을 받는다. 볼락구이는 안 먹어본 사람은 그 고소한 맛을 모른다. 그러다보니 공급이 딸려 남해 지역에서 다 소비되고
수도권으로는 올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남해에서 주로 암초대나 어초 등지에서 잡히는데, 최근 수온 변화의 영향인지 동해 남부권에서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대개 음식 맛이 형편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가격도 그리 싸지 않으면서 왜 맛이 없을까?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 구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한국도로공사에서 가격 기준으로 입찰을 해서 운영권을 주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음식 맛과 서비스 기준으로 심사를 해서 운영권을 준다면 온 국민이 좀더 여행 때 즐거울 수 있을텐데. 그런데 영천휴게소의 6000원짜리 육개장 맛은 훌륭했다. 김치도 무슨 콘테스트에서 1등 했다는 국산 김치를 내 놓고 있었다. 이럴 때면 기분이 좋다.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가 생각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반대로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6000원짜리 육개장이 맛있어서 기분이 좋다. 맛없는 행담도 휴게소의 충무 깁밥은 잊어버리고, 맛있는 영천
휴게소의 육개장만 기억하기로 하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시인 김수영보다 더 오래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낚싯배에 오르니 선장에 반갑게 맞이해 준다. 몇 년 전 이 배, 대양호를 타고 열기를 가득 잡은 적이 있다. 물론 씨알이 좀 작기는 했다.
그 때 울산에서 왔다는 한 낚시꾼이 열기를 뼈 채로 회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나는 지금도 그 방법으로 뼈회(일본명 세꼬시)를 즐기고 있다.
한 15분을 북쪽으로 달려갔을까. 선장이 채비를 내리라고 한다. 검은 바다에 채비를 내린다. 입질이 없다. 다른 포인트로 간다. 역시 입질이 없다. 선장이 어제 파도가 너무 높아서 입질이 없는듯하다고 내항으로 옮기자고 한다. 배낚시에서 선장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낚시꾼은 선장의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다.
내항으로 들어선다. 사위가 조금은 밝아졌다. 그러면서 이렇게 육지와 가까운 내항에서 고기가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한다. 친구도 그런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웬걸, 바로 입질이 온다. 대구 낚시꾼이 한 마리를 걸어낸다. 통영 낚싯배들도 밤 볼락 낚시를 많이 하는데 그때 미끼는 청갯지렁이다. 사투리로 청개비라고 하는데 발광 성분이 있어 밤 볼락 낚시에는 특효 미끼로 사용된다. 바늘 여섯 개가 달린 채비에 지난번 낚시 갔다가 남은 청개비 염장한 것을 세 개, 중태기 새끼 세 개를 각각 단다. 채비를 내리니 바로 입질이 온다. 두 마리다. 그런데 모두 청개비를 물고 있다. 아직 바다가 어두우니까 인광이 있는 청개비가 먹힐 거라는 내 예상은 적중했다. 이럴 때 또 신난다.
포인트를 몇 차례 옮기면서 한두 마리씩 잡아낸다. 바닥에서 1미터에서 3미터 사이에 떠서 입질을 한다. 선장은 어탐기를 보면서 수시로 입질층을 안내한다. 역시 젊은 선장이 서비스 정신이 대단하다. 다음 포인트로 이동할 때는 몇 분 이동한다고 방송을 해 준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데, 긴 시간 이동하면 선실로 들어가 파도를 피하고, 짧은 시간 이동이면 채비를 정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입질이 온다. 올려보니 이번에는 중태기 새끼에만 입질이 와 있다. 날이 밝으니 볼락들의 선호 미끼가 달라진 것이다. 친구는 다섯 마리를 한꺼번에 걸어 낸다. 나는 두 마리다. 미끼를 모두 중태기로 바꾼다. 이번에는? 나에게도 묵중한 입질이 왔다. 볼락 입질이 아닌듯하다. 볼락이나 열기의 입질은 요란하게 초릿대가 떨리는 게 대부분인데, 훅 하면서 전체 낚싯대가 휘청하는 것이다. 대물이다. 천천히 릴을 감는다. 확실하게 고기가 저항한다. 도대체 뭘까? 하지만 나는 그 고기 얼굴을 보지 못했다. 5미터 정도를 남겨두고 고기가 탈출에 성공했던 것이다. 이럴 때면 아쉽다. 그 고기의 손맛이 있혀지지 않는다. 하기야 낚시의 프로도 그렇다. 해외 원정을 많이 다니면서 대물낚시를 하는 신동만이라는 프로가 멕시코에서 참치낚시를 하면서 참치를 걸고 한 시간여 실랑이를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떨구면서 한 멘트가 생각난다. ‘300파운드짜린데.’ 기실 잡았으면 200파운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200파운드라도 일 백 킬로그램이다. 이렇게 낚시꾼들은 떨군 고기에 미련을 두고 아쉬워한다. 그리고 그 고기는 아쉬움과 함께 낚시꾼의 머리속에서 점점 자란다. 한 십년 후에 신동만프로도 500파운드에 육박하는 참치를 떨구었다고 뻥을 칠 것이다.
그 때 다른 배가 다가온다. 선장은 그 배에게 포인트를 양보하자며 다시 외항으로 나간다. 30분 정도 북쪽으로 나간다. 서쪽으로 태백산맥의 등뼈가 보인다. 보경사를 품고 있는 내연산이 보인다. 칠포 앞바다 정도 되는 모양이다. 파도는 좀 잠잠해졌지만 입질이 없다. 자연초니 어초니 하는 곳을 여러 곳 뒤졌지만, 거의 입질이 없다. 열기 몇 마리가 전부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이 때는 먹어야 한다. 볼락 몇 마리를 꺼내 회를 뜬다. 낚시객이 네 명 뿐이라 모두 불러 회에 소주잔을 기울인다. 소주를 한 병밖에 가져오지 않았으니 턱없이 모자라지만, 아쉬운 게 좋다. 일부러 모자라게 가져온 것이다. 포항꾼 1명 대구꾼 1명, 서울꾼 2명 이렇게 네 명이서 정답게 싱싱한 볼락 회를 먹는다. 볼락 회는 찰지고 고소하다. 우럭과 볼락과 열기는 다 같은 과지만 그 맛은 각각 다르다. 회 식감은 오히려 열기가 낫지만, 볼락 특유의 찰진 맛도 일품이다.
다시 낚시. 여전히 입질이 없다. 선장은 다시 40분을 달려 내항으로 이동한다. 내항 쪽에 오히려 고기가 많다. 어탐기를 보던 선장은 고기가 5미터까지 떠 있다고 한다. 낚싯대를 한 3미터 들었을까. 입질이 온다. 이번에는 네 마리다. 그래 이제부터 좀 더 잡자고 했더니 선장이 이제 그만 들어가잔다. 자기만의 비포(비밀 포인트)에서 고기를 다 빼먹으면 그 다음부터 고기가 안 잡히는 날엔 손님들에게 대책이 없는 것이다. 아쉽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한정된 자원이니 선장 입장에서는 요령껏 잘 배분해서 고기를 잡아야 한다. 꾼들도 더 욕심내서는 안 된다.
씨알 좋은 고급어종 볼락을 25마리 정도 잡았으니 만족해야 한다. 항구로 들어오니 12시 30분이다. 돌아오면서 친구와 나는 다음 낚시 계획을
짠다. 제주 마라도의 벤자리 낚시도 좋고 6광구 앞바다의 홍감팽 낚시도 좋다, 어쩌구 하면서, 380킬로의 거리를 운전하여 서울로 돌아온다.
몸은 파김치가 되었지만, 정신은 명징하게 맑다.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 문학평론가, <나는 낚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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